[ART insight] 작은 나의 고백 그리고 유재하

나의 고백
글 입력 2019.10.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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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자기중심적이다. 아니, ‘늘’보다는 ‘대부분’으로 정정한다. 세상에 100%의 확률은 없으니까. 고로 인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어로 운을 띄워 봤지만 이 말이 꼭 이기적임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속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배려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와 이기적임 같은 이분법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초능력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평생 스스로의 내면에 관해서만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관해서는 끊임없는 추측의 연속이다.

 

추측과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특정한 상황의 특정한 감정과 그 크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예시는 나 자신의 내적 감정이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상대의 감정을 나의 지난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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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과 내면 따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때 내가 이런 시스템을 너무나 완벽하게(?) 이용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많은 상황을 나의 감정에 맞추어서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가장 꺼려하던 유형의 사람은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내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남들 앞에서’ 우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나도 울곤 했다.

 

그러나 나는 늘 집이나 안 보이는 곳에서 울었다. 굳이 남들 앞에서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고 늘 의연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남들 앞에서 우는 이들을 보면 약점 잡힐 일만 하나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티비에 나와서 너무 힘들었다며 하소연하는 사람을 보아도 자존심도 없고 동정에 호소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나의 이런 오만함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막을 내렸다. 때는 2017년, 근 2년간 크고 작은 인생의 대격변을 겪게 한 사건들을 견뎌내기는 너무 벅찼던 것일까, 나는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갔다. 처음엔 그냥 좀 오래 기분이 안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내가 해오던 일들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이 울컥하기 시작하더니 그 정도는 점점 심해져 밤에 자려고 누우면 울지 않고 잠드는 날이 거의 없어졌고 지하철에서도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에 앞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중간에 내리기 일쑤였다.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우는 것이 일이었고 비상계단, 공원 벤치, 지하철 화장실 등 장소를 생각할 틈도 없이 슬픔이 몰려왔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들키지 않기 위해 핸드폰 하는 척을 하거나 고개를 돌려 어떻게든 흐르지 않게 애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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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나에게 1분에 한번씩 한숨을 쉰다며 장난스런 말들을 할 때면 웃곤 했지만 점점 웃는 것도 힘겹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가 잘 될 리 없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해보려는 마음에 울면서도 억지로 책을 펴 읽어나가곤 했지만 당연하게도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인지 설상가상 몸도 망가져갔다. 처음엔 강의실이나 지하철 같은 밀폐된 곳에서 시작되던 두근거림과 답답함은 점점 뻗어나가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날 덮쳐오기 시작했다. 불안해서 심장이 뛰는 건지, 심장이 뛰어서 불안한 건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시작되면 숨이 폐까지 들어가지 않는 듯한 답답함이 으레 뒤따랐고 심해지는 날에는 온몸이 저리고 오그라들어 의자에 앉아 진정시키고 다시 길을 나서곤 했다.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을 막을 수도, 막을 생각도 없었다. 자연스레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뒤따라 왔다. 이전에 나는 지난 일에 미련과 후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난 이미 최선을 다했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성향이 무색해지게 나는 하루 종일 옛날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고 물론 그 중 좋은 것은 거의 없었다. 안 좋았던 기억들을 하루 종일 곱씹고 그때의 감정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계속 상기시켰다. 마치 나 스스로가 나의 행복을 막는 듯 했고, 그럼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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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나는 우울이란 감정의 안개가 내 눈을 가리고 있어 내가 올바른 사고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눈을 가리던 행복의 허상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현실을 마주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 노래 한 곡을 만났다. 유재하의 <지난 날>이었다.

 

 

 

 

사실 이 곡을 정말 ‘처음’ 만난 건 아마 중학교 때쯤 이었다. 안타깝게 죽은 비운의 천재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의 이 가수의 노래는 그 시대를 지나오지 않은 나에게도 척 듣기에 매력적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좋은 멜로디에 좋은 목소리를 즐기며 노래를 들었고 가사에는 딱히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지난 추억이 있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노래들을 들으며 시간이 지나 잊고 있다가 우연히 다시 듣게 된 노래는 첫 소절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지난 옛 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일까

 

 

마치 지금의 내 상황을 알고 쓰여진 듯한 가사에 놀란 것도 잠시, 홀린 듯 노래의 가사를 찾아 읽으며 다시 들어보았다. 그러자 예전에는 알 지 못했던 가사 한 줄 한 줄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끝 없는 슬픔은 평생 끝나지 않을 것이며 행복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듯 했고, 노래의 가사는 내가 과거의 행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더욱 못 박아버리듯이 생각되었다. ‘다시 못 올 지난 날’이라, 정말로 나의 모든 행복은 과거에 묻혀버렸구나- 점점 누적되어 날 여기까지 몰고 온 일들도 정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어찌됐던 지금의 나는 어두웠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들은 이 노래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는 ‘지난 날’이 되어버린 힘들었던 그 때를 떠올리게 하며 이제서야 정말로 왜 명곡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힘든 시기에 행복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떠올리는 류의 가사가 아닌 행복했던 시절과 힘들었던 시절이 모두 다 지나간 후 비로소 세상의 의미를 알게 된 안정된 이의 담담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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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아직도 다시 돌아갈까 두렵다. 감정의 조금이라도 파동이 생기면 혹시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그리고 감히 뒤돌아보니 좋았던 기억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렇게 가볍게 말하기엔 너무 끔찍하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 날들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덕분인지 나는 과거의 오만함을 버리고 다른 이들의 힘듦을 마음을 다해 알아주게 되었다. 힘듦의 크기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왈칵 눈물부터 쏟아내던 친구는 자존심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사람이 힘들다 하는 것도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슬픔에는 꼭 비극적인 이유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다른 이를 위해 눈물을 쏟아낼 수도 있어졌다.

 

요즘도 길을 걸으며 이 노래를 듣는다. 마치 과거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일까. 힘들어하던 나에게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고, 공부가 잘되건 아니건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는 듯 하던 간에 다 의미가 있으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얼마나 힘들던 그 악몽 같던 나날들뿐만 아니라 행복했던 날들도 결국엔 ‘지난 날’이 되어 저 멀리 사라져갈 테니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조금만 의연하게 떠나 보내라고, 늘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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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기까지 많이 고민하고 고민했다. 반 정도 적고 난 후에도 다른 주제로 바꿀까 망설였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드러내놓고 말한 적도 적은 적도 없었기에 두려움이 급습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나를 위해 조금 더 용기 내어 적어보기로 결정했다.

 

행복과 슬픔은 절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돋보이듯 슬픈 날들은 앞으로의 행복을 더욱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둘은 앞으로의 인생에도 끝없이 번갈아 가며 나타날 테고 슬픔이 찾아올 때마다 난 또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 대신 그때가 오면 한번 깨달았던 이 마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지난 날>을 들으며.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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