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리의 인문학, 도서 "독서 주방"

글 입력 2019.10.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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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보통 우리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귀한 도움 같은 것에 이와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가장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그것이 우리의 몸에 보탬이 되어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음식을, 우리는 다시 요리와 음식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막힌 문장은 웨스틴조선호텔서울에서 30여년 간 근무한 요리사이자 파불루머 유재덕의 책 <독서 주방>에서 본 표현이다. 요리사 유재덕에게 'Pabulum(음식물, 영양물 등의 의미를 지니며 '마음의 양식'과 같은 표현에 활용되는 라틴어)' + '-er(영어로 사람을 뜻하는 어미)'로 파불루머(Pabulumer)라는 표현을 붙여준 그의 벗 김성신 평론가가 남긴 아주 날카로운 분석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요리는 동사화될 수 있는 명사지만, 음식은 그 품사가 명사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는 점을 보면 두 단어가 굉장히 차이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무미건조한 분석이 아니라 두 단어의 차이를 아름답게 표현해낸 김성신 평론가와 이를 담아낸 파불루머 유재덕의 글은 서론에서부터 이토록 시선을 잡아끄는 깊이가 있었다.

 

 


 

책 소개

 

27년차 호텔리어 셰프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책의 맛은 어떨까?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총주방장 유재덕, 그는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책을 펼쳐들었다.

 

희고 높은 모자와 흰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뜨겁고 날카로운 기기들을 이용해 누군가의 식사를 준비하는 호텔 주방은 베일에 싸여진 공간이다. 날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이 주어지지만 한결 같은 맛과 서비스를 위해 주방에서는 매일의 전쟁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외길을 걸어온 중년의 셰프는 주방일 틈틈이 책을 읽고 칼럼을 썼다. 셰프가 고른 책은 대부분 음식에 관한 책이다.

 

식탁 혁명을 불러온 고추의 모든 것을 다룬 <페퍼로드>부터 음식인문학의 고전 <음식문화의 수수께끼>까지 41편에는 저자의 경험과 어우러진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타고니아 이빨고기’가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고 판매량이 10배 늘었다든지, 요리의 맛은 식재료의 질에 달려 있을 뿐 요리사의 역할은 얼마 안 된다는 것 등등 미식의 안목을 키울만한 이야기다.

 


 

 

요리 그리고 음식. 매체로 인해 근 몇 년 사이에 우리에게 이만큼 가까워지게 된 소재가 없지 않을까 싶은 두 가지다. 유명 셰프들이 TV에 나와 요리를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고, TV나 유튜브 모두에 넘쳐나는 먹방 콘텐츠들은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많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이 요리와 음식을 아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요리와 음식에 대한 깊이는 더욱 얕아지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연 이것이 요리하는, 즉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될까?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라 보기는 어렵다. 소비하는 사람들의 패턴을 보면 음식의 깊이를 찾고 알아가기를 원한다기보다는 보이는 음식의 모습과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 즉 외형적인 것만을 소비하기 급급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소비 수요가 있어 이런 공급이 느는 것인지, 그런 공급들이 늘어났기에 소비가 더욱 가중되는 것인지 이제는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수많은 인스타용 맛집과 카페들이 이를 반증하지 않는가.

 

그래서 처음 이 책을 펼 때, 무의식 중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호텔의 주방에서 30년 넘게 일해온 사람이라면 물론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게 독서와 어떻게 연결지어질 지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미 얕아진 식습관 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무언가를 호텔 출신의 셰프에게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하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대중적인 음식보다는 좀 더 제한된 사람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구매력을 갖춘 제한된 소비자들에게만 제공되는 고급 요리 위주로 경력을 쌓았던 사람이다보니 애당초부터 대중 식문화를 내려다보는 입지였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가지고 저자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재덕의 글은 내 오만한 편견을 완전히 깨부쉈다. 그의 요리가 겨냥한 대상이 누구이냐가 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를 만드는 주체로 30년 넘는 시간을 분투해온 저자 유재덕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호텔에 사무직으로 입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직변경을 신청해 주방에 뛰어들었고, 용어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주방에서 부던히 노력하며 3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다. 그런 그는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차원에 안주하지 않았고 책을 읽어가며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독서를 통해 요리를 풍부하게 만들며 요리의 인문학적인 차원을 구하기 시작하는 그는 감히 내 좁은 편견으로 재단할 사람이 아니었다.

 

*

 

본문을 읽어나가며 문득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세상에 요리와 관련한 책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점이었다. 요리와 관련한 책을 본 것은 정말로 레시피가 적힌 책들을 본 기억밖에 없었다. 자취생을 위한 n가지 요리, n천원으로 장보기 같은 쉬운 레시피 위주의 책들만 봤던 것 같다. 이렇게 요리로 깊이를 찾아가는 수많은 책들이 있는지 왜 몰랐을까. 사실 내가 요리에 딱히 관심이 없고 취미도 없고 즐기는 편이 아니라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인풋이 적은 차원에서 음식을 해내는 게 항상 목표였다보니 요리에는 그다지 깊은 관심이 없었다. 독립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재덕의 글을 읽어가다보면, 그 쉽지 않은 요리를 해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저 고단하고 시간 아깝게 느껴지는 요리하는 행위가 사실은 국경을 넘어서도 어디서든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행위고 수많은 추억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행위라는 것을 그가 차근차근 짚어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음식을 나누고 즐기는 식탁이 화합의 장이 되는 모습까지도 자연스럽게 그려주었다. 바쁜 일상으로 대화가 단절되기도 하는 가족 간의 관계가 식탁 위의 요리로 인해 다시금 풀리기도 하는 모습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상 속의 편린인데, 저자는 이를 가지고 식탁이 인생 교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식과 요리 그리고 이를 나누는 자리까지 통틀어 다각도로 조명하는 유재덕은 정말 음식과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해보였다.

 

수많은 꼭지들 중에서 내 마음을 유독 사로잡았던 대목은 26번, '먹이'가 아닌 '음식'으로 깨닫는 세상이야기였다. 사람이 먹는 것은 음식으로, 동물이 먹는 것은 먹이로 나누어 표현하는 것이 관례지만 사실상 음식이 아닌 먹이를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정말 번개처럼 내 마음에 내리꽂히는 대목이었다. 전쟁과 재해, 기아, 빈곤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도, 철학도, 생활도 담을 수 없어 식문화를 챙길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감사하며 살지 못했는지도 깨달았다.

 

음식에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농축되어 있다. 유재덕이 말한 것처럼, 음식에는 한 사람의 인생 습관이 담겨있을 정도다. 음식 그 자체만 놓고 보아도 그 지역의 기후, 토양의 특성을 유추할 수 있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그 인생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음미하고 즐기는 것 자체가 사실 얼마나 큰 특권인지 우리는 쉽게 잊곤 한다. 당장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지금과 같은 식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유재덕은 음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환기시키고 있었다. 당장 오늘 내가 먹은 한 끼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 한 그릇에 셀 수 없는 수많은 노고가 얼마나 담겨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고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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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 현대카드

 

 

요리와 독서. 상관이 없어보이는 두 가지를 아주 세밀하게 엮어나가는 유재덕의 <독서 주방>을 읽어가다보니, 문득 우리나라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바로 도산공원 인근에 위치한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다. 이 공간이 세워질 때에도, 어떻게 도서관과 식사 공간을 결합할 생각을 했을까 하고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이 쿠킹라이브러리의 독특함은 분명 파불루머 유재덕이 독서와 요리를 결합하여 더 깊은 무언가를 찾아가기 시작했던 그 시작점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독서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채움이다. 내면을 더욱 깊게 만들고 거기에 무형의 무언가를 가득 채우는 행위다. 그리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채움이다. 입 안에 음식물을 넣고, 이를 씹어 삼키고,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 위장에서 소화액과 함께 분해되면서 몸속에 필요한 것들을 정제하여 신체를 견고하게 하는 채움이다. 그리고 채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이 된다. 그래서인지 <독서 주방>을 읽고 유독 저 공간이 다시금 생각났던 것 같다.

 

 

진정한 미식은 음식의 맛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맛을 보기 위해 달려간 시간의 밀도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충실하고 건강한 삶의 시간이야말로

탐식과 미식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다. 탐식이 그저 혀끝의 감각에만 충실한 것이라면, 미식은 내 삶의 시간으로 빚어내야 하는 공감각이다. 아예 차원이 다르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날카로웠던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 파불루머 유재덕이 가진 그 깊이의 밀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본문 234쪽에서 발췌한 이 단락은 그의 인생의 밀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 역시 지향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리를 접할 때 말초적인 탐식의 차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밀도가 요구되는 미식의 차원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 있어 내면 없이 외형만 키우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시간의 깊이와 밀도가 느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파불루머 유재덕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아주 큰 요소였던 '요리'라는 소재를 빌어 말하고 있지만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밀도와 깊이가 있는 삶을 위한 독서의 역설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당신의 육체와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을 한 번쯤 가슴에 품어본 사람이라면 <독서 주방>이 좋은 자극이 되어 줄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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