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너만의 태풍
지난 8월, 연휴의 끝에 가족들과 간 바닷가에서 엉엉 우는 아이를 보았다. 튜브에 들어간 채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괜찮다가도, 아빠가 한 걸음이라도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면 자지러질 듯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제외한 주변은 축제 같은 분위기여서 그 울음은 더욱 보잘것없어졌다. 그러나 아이의 세상은 안타깝게도 와르르 무너지는 중이었겠지.
저 아이가 왜 꼭 나 같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두려워하라 명한 적 없으나 나는 늘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언갈 심하게 두려워하고있다는 사실 자체를 직시하게 된 것이.
#092. 영화 하나, 조커
어떤 사람이 영화 <조커>(2019)를 보고,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해야 할 이유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모두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친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몇 달 전,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 많이 걸렸었다. 그리고 일기에 적었다. 그가 내게 조금 더 다정할 수는 없었을까, 이 시간을 한때의 열병처럼 여기게 될 날이 언젠간 올까, 라고. 그땐 꽤 고통스러웠고 나름의 절망을 똑똑히 체감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백을 들은 그날, 열병은 끝났다. 뭐, 그 사람이 날 위해 <조커>를 본 건 아니었겠지만.
#093. 다정한 사람
붐비는 지하철에서 바로 내 앞의 빈자리를 두 번이나 빼앗긴 날이었다. 처음엔 경황이 없었고 두 번째엔, 조금 화가 났다. 앉자마자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중년보다는 나이가 더 들어 보이지만 꽤 말끔한 차림. 차분히 베이스를 두드렸을 것 같은 얼굴에 각을 잡고 그린 날카로운 눈썹, 손목에는 꽤 무거워 보이는 시계, 목에는 반짝이는 금목걸이, 베이지색 원피스, 그의 분위기를 닮은 무릎위의 다소곳한 작은 핸드백, 머리 위엔 단정한 초록색 두건까지.
부자인 것 같으신데 택시를 타시지. 그런 생각을 하곤 곧바로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 다정하지 못한 사람이야.
내리려 할 때 그가 갑자기 눈을 뜨며 양보해줘서 고마워요, 꽤 큰 목소리로 한마디를 했다. 아니요, 저는 양보한 적이 없는데요. 꺼내지 못한 말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094. 영화 둘, 82년생 김지영
“그래서 나. 이제 어떻게 하면 돼?”
김지영이 오직 자기만의 싸움을 하는 중이라며 울분을 터뜨릴 때야 비로소 전달된, ‘너는 아프다’는 사실. 시대와 사람으로부터 의미있는 분석이 나올 영화이지만, 뭉뚱그려 이 영화를 표현하라면 이 사실이 기이한 핵심이라는 감상을 남기고 싶다. 네가 아픈 걸 알고는 있냐고, 누군가 알아주기는 하냐고.
#095. 네가 없어.
“솔직히 말할게요.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더 무너질 수 있어요. 00씨 중심에는 ‘나’가 없거든요.”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 사람들은 내게 ‘너는 네 갈 길 잘 찾아서 간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돌아봐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은 내 인생이었기에 나는 주체적이거나 혹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확신은 스러지는 중이었다. 조금씩 직감하고 있었지만, 딱히 절망적이지도 않았던 이유는 뭔가 바뀐 것 같은데 그 변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기도, 알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그런 거야, 설명하면 누군가는 잘 들어주었으나 그래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들도, 나도 이해에 이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어쩌면 더 반가웠을 어떤 이의 말. 너, 아픈사람이라고.
“언제는, 아주 정신이 맑은 아침에. 삶을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는데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그냥 펑펑 울었어요.”
마치 숨길 수 없는 뒷모습을 들킨 것만 같으면서 속이 시원했다. 정확한 시선에 힘을 얻어 나도 조금 고백을 했다. 어느 날 느낀 고립감은 마치, 한때 보석처럼 빛나던 어느 아이돌이 한순간 삶을 포기하게 만든 그 위력에 다가간 것만 같았다고도.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는 그와 다른 게 없지 않은가, 생각했다고.
#096. 조커와 김지영
그러니 두 영화가 내게 던진 메시지는 어찌보면 아주 극단적이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쭉 미쳐버리거나, 미쳤다가 회복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거나, 다시 되찾거나.
조커가 여전히 황홀하게 느껴지는 건 나라는 사람의 건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겠고, 김지영을 응원하게 되는 건 아마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 것이다. 아예 미쳐버리지 않도록 누군가 내 삶에 자꾸만 나타난다는 건 다행인지, 축복인지.
#097. 태풍이 지나가나.
“00씨는 글과 말의 필요성을 점점 몰라 간다고 하셨죠. 그건 꽤 오랫동안 제 가슴에서 저를 아프게 했어요.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 같았거든요. 물론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 알아요. 다시 처음의 것이 필요해지고, 감정도 계절처럼 돌고 돈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아직 답장을 하지 않은 편지에 그러나 이미 결론은 내려졌다고 여기에 먼저 쓴다. 글과 말의 필요성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결국 함께 가야 할 것 같다고. 누군가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아프게도 하지만,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해한다. 아직 이 정도밖에는 아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