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나이가 어때서 上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글 입력 2019.10.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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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OMS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라는 뮤지컬이 공연된 적 있었다. 타인과 교류 하지 않고 사는 엠마가 로봇 스톤을 만나 천천히 변화하는 내용이었다. 공연 내내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중년 여성인 엠마가 무대에 혼자 나와 노래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낯설었다. 전문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꽤 오랜 시간 뮤지컬을 봐오면서 여성 중년 캐릭터가 단독으로 이렇게 길게 나오는 공연을 보지 못했던 탓이다. 극 후반부 엠마는 자신을 가둔 집에서 벗어나 세상을 산책하고, 낯선 소년에게도 말을 걸며 성장한다. 이 역시 어색했다. 남녀 구분 없이 노년 캐릭터가 성장하는 공연이 또 뭐가 있었는지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노년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극이 진행되는 게 낯선 자신이 신기하고 씁쓸했다.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 노년 여성 캐릭터가 주연인 작품을 말하라 하면 여전히 망설이게 된다. 짧은 기억 속을 뒤져보니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이후 마찬가지로 작년에 보았던 “허스토리”가 마지막 같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The Favorite”도 있다. 말하고 나니 분명 제법 존재하는데 찾지 못해놓고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투덜거리는 대신 내가 찾아낸 작품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 “Poms”와 “Late Night”다. 그 중에도 먼저 다룰 영화는 진부하지만 사랑스러운 “Pom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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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줄 가족이 없는 마샤는 암에 걸려 노인 주택 지구로 이사를 한다. 어릴 적 간절히 원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이 맞는 사람과 치어리딩 클럽을 만든다. 한 번도 치어리딩을 해본 적 없는 노년의 사람들과 같이 연습하고, 무대에도 선다. 암과 꿈. 두 단어만 보아도 이미 결말이 보일 것처럼 뻔한 내용이다. 실제로 반전이나 특별한 내용 없이 이미 오랫동안 보아온 클리셰를 반복한다. 캐릭터 성격이나 성향도 익숙하다. 냉소적인 면이 있는 주인공과 괴짜지만 정이 많은 주인공의 단짝. 아마 사람들은 이 간단한 줄거리만 보고서도 그럴듯한 새 시나리오 한 편을 작성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화보다 더 독창적이고 신선할 수도 있다. 기대하고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그런 영화. 그런데도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죽기 전까진 안 된대요. 그럼 연습 시간에 봐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여성 노년 캐릭터가 가정 내 위치에서의 일탈한다는 점이다.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앨리스는 남편의 말에 순종적이다. 남편은 온 집안을 골프 모양 가구로 꾸밀 정도로 골프를 좋아하고 실제로 자주 치러 나가지만, 앨리스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반대하며 집에만 있도록 강요한다. 오랫동안 치어리더를 하고 싶었음에도 남편은 그가 죽기 전까진 안 된다며 반대한다. 며칠 뒤 아주 우연히 남편의 장례식이 열린다. 장례식에서 앨리스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공연 날 보자고 속삭인다.

 

헬렌이 치어리딩을 한다는 사실을 알자 그의 아들은 몹시 화를 낸다. 치어리딩은 어릴 때 발랑 까진 놈들이나 하는 것이며 늙은 치어리더를 누가 좋다고 보냐는 것이다. 거기다 헬렌이 다쳤다는 타당한 이유도 있다.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 정도 그럴듯하나 헬렌의 사랑을 꺾지는 못한다. 헬렌이 사랑하는 건 치어리딩만이 아니라 함께한 클럽의 친구, 추억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썬 스프링스의 무법자 치어리딩 클럽은 아들의 시선을 끈 뒤에 헬렌을 몰래 빼간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어서 버스에서 나오라며 분개하지만 헬렌은 중지를 치켜올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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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가정에서 여성의 위치는 인자하고 자상한 어머니, 배려심 깊고 내조를 잘하는 아내였다. 본래 인자하고 자상하며 배려심 깊고 내조를 잘하는 사람은 별문제 없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인자하고 자상하며 배려심 깊고 내조를 하느라, 혹은 그러도록 자신을 몰아세우느라 정작 본인의 삶은 제대로 살지 못한다. 주민등록증이 나온 지 50년은 되었음에도 남편의 불허와 아들의 반대로 원하는 일을 포기하는 앨리스와 헬렌이 이런 평범한 기혼 여성이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던 남편을 죽인 아내. 이유가 무엇일까. 최대한 빨리 답하라고 한다면, 반 정도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거나, 남편의 돈을 노렸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가정을 팽개친 어머니의 이유 또한 새 사랑에 눈 멀었거나 일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매체에서 보아온 ‘막장’ 드라마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헬렌과 앨리스는 다르다. 오직 못 이룬 꿈을 위해서 가정을 벗어나 앨리스, 헬렌으로 살기로 한다.

 

이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범죄는 나쁘지만, 어느 영화나 그렇듯 주인공 버프가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유쾌하게 넘긴다. 자연히 관객도 그들을 나쁘다고 말하기 애매해진다. 어느 영화에서나 악당을 죽이는 영웅의 행보를 범죄로 치지 않잖은가.

 

 


우린 한 팀이잖아. 똑같아.

 

무대가 무대인 만큼 90%의 캐릭터가 노인이나 그럼에도 주요한 두 명의 청소년이 나온다. 노인 주택 지구에서 몰래 사는 셸리의 손자 벤과 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치어리딩 팀 클로이다. 약간의 소동 끝에 썬 스프링즈 치어리딩 클럽은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딩하게 되고, 이를 촬영한 영상이 인터넷에 퍼진다. 누구도 왕년에 제대로 치어리더로 활동한 적 없는 치어리딩 클럽은 당연하게도 볼품없었고, 영상을 본 사람들 모두가 그를 비웃는다.

 

아, 딱 보니 알겠다. 고약한 10대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구나. 맞긴 맞는데, 아니다. 마샤와 셰릴은 영상을 찍은 사람이 클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찾아간다. 뻔뻔하게 나오거나 화를 낼 줄 알았던 클로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찍은 것은 맞지만 올릴 생각은 없었으며 놀림감으로 만들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고. 오히려 따지기 위해 찾아간 마샤와 셰릴이 당황해서 달래준다. 그들은 썬 스프링즈 치어리딩 클럽의 감독이 되어달라고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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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가 감독이 되어 좋은 부분은 나이에 대한 어떤 부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나이에 무슨 치어리딩이냐며 핀잔을 주고 포기하라고 말하던 것과 달리, 클로이는 최선을 다해 코치한다. 클럽 일원은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을 이용해 섣불리 아는 척을 하거나 클로이를 낮잡아보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성실히 연습하고, 남는 시간에는 헬스장에 가 약해진 몸을 열심히 훈련한다. 신체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 종목이지만, 누가하든 힘든 운동이라면 노화 때문에 아프고 힘들다고 못 할 이유는 없다. 이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늘어놓는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사람이 만나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다. 마음이 맞는 썬 스프링즈 비공식 클럽 일원은 겉모습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진정한 친구가 된다. 지은 죄가 있어 불편해하던 클로이는 이내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클럽 일원을 알아가고 이해한다. 고등학교 치어리딩 팀보다 더 중시하다 잘리기까지 한다. 클럽 일원이 미안해하자 이렇게 말한다. 내 발로 나간 거예요. 워낙 할 일이 많으니까. 게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덟 명의 할머니가 생겼잖아요. 조금 뻔한 전개지만, 미소가 지어진다.


 

 

누굴 응원하는 건가요? 나요.


 

“Poms”에는 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없다. 고등학교 치어리딩 팀이나 대회의 많은 참가자는 클럽과의 수준 차이를 보여주지만 라이벌이라기엔 비중이 작다. 치어리딩 팀은 다른 사람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연습하고 무대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즐겁게 클럽 활동을 한다. 나아가 치어리더와 나이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

 

치어리딩은 누군가에게 힘을 북돋고 응원하기 위해 추는 춤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만 접근할 때 응원을 할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화려한 기교나 정확하게 맞는 군무가 없다고 힘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 주택 지구 거주자가 치어리딩을 하기 위해 넘을 산은 노화나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많다. 늙은이가 하는 치어리딩을 대체 누가 보겠느냐고 깎아내리는 사람이나 비웃는 관중을 무시해야 한다. 또 치어리딩 대회 포스터에 16세 이상 외의 나이 제한이 없음에도 썬 스프링즈 비공식 클럽 참가를 막는다. 젊고 예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치어리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마샤가 클럽 일원을 거울 앞에 세운다. 절대 눈을 감거나 돌리지 말고 스스로를 마주 보라고 한 후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클럽 멤버는 쑥스러워하며 대답한다. 머리카락, 손, 눈 등 다양하다. 말하는 표정이 밝다. 연습 내내 그렇다. 팔다리가 삐걱대고 손은 위로 올라가지 않으며 각종 병이 그들을 괴롭히지만, 흥겹고 밝은 장면이 쭉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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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무대에 설 시간이 다가온다. 관중은 신경 쓰지 마요. 밖에 나가면 우리밖에 없어요. 할 수 있어요. 클로이가 말하고 이어서 마샤는 말한다. 사실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우리가 자신을 바보로 만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 외에 저와 무대에 같이 오를 만한 사람은 없어요. 사랑해요. 모두요. 아마 지금 무서울 거예요. 저도 무서우니까. 그래도 가끔은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 보고 지옥이나 가라고 말해야 해요.

 

무대에 오른 클럽 멤버는 어딘지 어색하고 다른 팀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치어리딩하는 내내 표정이 밝다.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던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듯이. 그들은 모두가 반대하는 일을 해낸 대가로 즐거움을 얻었고, 사랑하는 친구를 사귀었으며, 그들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 이때의 영상도 인터넷에 올라간다. 이번에는 반응이 다르다. 남녀노소 출 수 있는 쉬운 동작에 전 세계 사람들이 춤을 따라 춘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치어리딩을 누가 보겠냐는 말에 충분히 답변하고, 자신을 응원하는 것도 성공했으니 클럽 활동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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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이젠 좀 쉬셔야죠, 말하는 나이가 되어 자신을 응원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득 인기 유튜버 박막례 씨가 생각난다. 이대로 죽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고 뭐든 할 수 있다던. 박막례 씨는 무서워 보이던 것도 막상 도전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썬 스프링즈 치어리딩 클럽이 그렇다. 처음에는 그들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시한부 인생이라,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주변에서 말려서 몇 번이고 이대로 끝나나 싶던 클럽이 기어코 내로라하는 팀만 참가하는 대회에까지 선다. 이대론 죽을 수 없다는 듯이.


영화는 화면 속 인물을 사랑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보고 있는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같이 생각하게 돕고 신체적 제한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다며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행복한 그들을 보며 행복해진다.


다시 한번 묻는다. 설정, 반전이라곤 없는 스토리,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평범하다면 평범한 “Poms”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얼추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냥 내가 사랑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렇기에 이 평범한 영화는 내게로 와 이름을 가진 꽃이 된다. 아무래도 그들의 응원이 성공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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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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