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국은 인생 이야기 - 연극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공연]

아주 보통의 여자 농구 연극
글 입력 2019.10.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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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사이다, 맛있어요?”


작품은 아주 가벼운 물음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별로 맛은 없고 산미만 강할 뿐인 보통의 음료였지만, 큰 공통점 없던 다섯 여자들을 한 데 모은 특별한 음료기도 하다. 열심히 땀을 흘린 뒤에 찾아오는 상쾌한 한 모금. 클린샷을 날린 뒤 웃으며 목을 축일 새콤한 음료. 이 농구팀의 구호, ‘우리는 무슨 사이다? 레몬 사이다!’처럼 이들의 사이는 청량한 여름을 닮았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2_c김희지.jpg

 

 

농구, 나아가 스포츠를 주제로 한 남성 서사는 꽤 많은 편이다.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현장을 무대에 담기에 무리가 있어, 공연예술 쪽보다는 만화나 영화에서 더 자주 등장한다. 농구나 야구에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스포츠 서사를 재미있게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그 서사들에서 주목하는 점이 스포츠 그 자체보다는 농구와 야구로 묶인 ‘사람들’의 유대와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남성의 의리와 우정은 과할 정도로 조명된 반면 여성들의 의리는 터부시되거나 서로를 향한 질투로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물론 여성 스포츠인이 남성 스포츠인보다 적기 때문에 장르 자체가 마이너한 탓도 있겠지만.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전 배역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의, ‘보통의’ 농구 연극이라는 타이틀답게 정석적인 루트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연극이 다른 스포츠 창작물과 구별되는 점은 여성의 이야기라는 데에 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농구로 모여 갈등도 빚고 우정도 쌓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어쩌면 조금 흔한 스토리라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극은 특별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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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농’자도 몰랐던 게임 제작자 연정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재영의 제안으로 농구팀에 합류한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인 팀이었다. 실력도 제각각, 스타일도 제각각, 배경이나 나이도 제각각인 팀원들이 모여 농구 시민리그 참가를 목표로 연습을 시작한다. 게임 시나리오도 안 풀리는데 농구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연정은 어느 새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가 연정이었다. 실패에 무뎌져 어린 날의 꿈과 포부는 다 한때의 열정이라 웃어넘기고, 이제는 내 앞에 주어진 언덕만 어찌저찌 넘으면 중간은 가겠지, 하며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 연정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아 ‘내가 이렇지 뭐’하며 자괴감의 늪에 빠지고 만다. 이런 캐릭터, 어쩐지 익숙하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연정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연정은 너, 나, 우리와 비슷한 캐릭터다. 실패하기 무서워서 도전하기 꺼려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았다. 한 번 시작하면 어떻게든 해내긴 하겠지만 그 시작이 참으로 어렵다. 게임의 엔딩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 역시 낯설지가 않다. 내가 하고픈 대로 하자니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하고, 임팩트 있게 쓰자니 어쩐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사실 ‘임팩트’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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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연극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골을 넣었는지 넣지 못했는지, 연정이 결말을 완성했는지 완성하지 못했는지 등 깔끔한 완결을 보여주지 않고 암전으로 마무리한다는 것까지 삶과 흡사하다. 삶은 아주 중요한 순간마다 답을 주지 않으니 말이다. 순간순간마다 답도 없는 문제에 골몰하며 나름의 해답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너무나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을 뚫어주는 찰나의 즐거움으로 삶을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레몬 사이다처럼.


레몬 사이다팀은 승리를 거머쥐었을까. 아무렴 어떤가. 연정은 골대를 향해 공을 던졌고, 팀원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판단은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승리했다고 믿고 싶다. 경기 막바지에 부담감을 이기고 힘껏 공을 던진 연정도, 그리고 그를 믿고 끝없이 응원해준 팀원들도 ‘레몬 사이다’의 단맛을 느낄 때도 되었지 않나.

 

 

시놉시스

 

"같이 농구 할래요?"

 

작업 중인 게임 시나리오의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한 문장도 쓸 수 없게 된 연정. 공원 자판기에서 제일 인기 없는 음료 레몬 사이다를 한 캔 뽑아 마시는데, 농구공을 든 재영이 나타난다. 농구 시민리그 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으로 연미, 환희, 혜준을 만나는 연정은 잠시 모든 걸 잊고 농구에 푹 빠진다. 살아온 환경도, 대회 참가 이유도 제각각인 다섯 명은 과연 팀이 될 수 있을까? 연정은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까?

 

 

공연 개요

 

장소 :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일시 : 2019. 10. 15(화) - 10. 20(일) / 평일 8시, 주말 4시 

기획 : 나희경

극작 : 심정민

연출 : 설유진

출연 : 강다현, 기푸름, 라소영, 박마리솔, 정수미

스태프 : 드라마터그 성효선, 조명디자인 신동선, 의상디자인 강기정, 음향/영상 목소

제작 : 플레이어F, 페미씨어터

후원 : 서울문화재단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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