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왜 거짓을 말하는가 [도서]

볼프강 라인하르트의 <거짓말하는 사회>를 읽고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
글 입력 2019.10.2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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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는 영진이는 최근에 중간고사에서 마킹 실수도 하고 기숙사 룸메이트랑 말싸움도 해서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상태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얼굴에 생긴 트러블은 기분을 더 안 좋게 만든다. 학교에 있으면 계속 우울해져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집에 가는 길, 영진이는 동네 아주머니와 마주친다.)

 

“어머! 영진이 아니니?”

“네! 아주머니, 안녕하셨어요?”

“그래,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 기숙사 생활은 힘들지 않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익숙해져서 편해요.”

“그렇구나. 얼마 전에 중간고사였지? 시험은 잘 봤니?”

“네, 그럭저럭 봤어요.”

“하긴, 네가 중학교 때 좀 잘했니. 고등학교 가서도 잘하고 있겠지. 너 바쁠 텐데 내가 붙잡고 있어서 미안. 나중에 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위 지문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다. 그리고 거짓말투성이인 대화다. 영진이는 룸메이트와 싸워 기숙사 생활이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다. 하지만 영진이는 기숙사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편하다’고 답한다. 그리고 중간고사에서 마킹 실수를 하면서 아쉬운 결과를 얻었지만, 중간고사 잘 봤냐는 질문에는 ‘그럭저럭 잘 봤다’는 대답을 하고, 얼굴에 생긴 트러블로 속상해하면서도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라는 말에는 ‘감사합니다’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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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이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볼프강 라인하르트의 <거짓말 하는 사회>는 이 질문에 대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다른 이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위 지문에서 만약 아주머니가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라고 말했을 때 영진이가 “좋아 보인다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요즘 얼마나 힘든데요... 얼굴 푸석해진 거 안 보이세요? 왜 아주머니께서는 제 얼굴 상태를 마음대로 판단하세요?”라고 반응을 한다면, 둘의 대화는 더 진행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영진이와 아주머니 사이의 관계는 어색해져, 나중에 마주쳐도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원활한 인간관계 및 사회생활’을 위해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거짓말 하는 사회>에 의하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200번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이 숫자는 순수한 거짓말만 센 숫자이고, 우회적으로 말을 했거나, 의도적으로 침묵을 유지하거나, 사실을 일부만 말하는 ‘부분적 거짓말’은 너무 많이 해서 셀 수도 없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등의 우리가 많이 하는 말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평소에 별생각 없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을 건네고, 실제로 죄송한 마음이 없을 때도 상황의 모면을 위해 “죄송합니다”를 ‘남발’한다. 이렇게 습관처럼 하는 말들의 진실성을 따져보면,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러한 ‘거짓말하는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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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우리는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이에 크게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지만, 이와 동시에 거짓말에 대해 극단적일 정도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통해 거짓말은 나쁘다는 사실과 나쁘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는 당위를 교육받았으며,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거짓말이 만연한 거짓말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서, 과연 거짓말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인지, 거짓말이 없는 사회가 지금 우리의 사회보다 좋은 사회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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