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안합니다. [도서]

글 입력 2019.10.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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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마디마다 주름이 패어 있다. 나이 들 때마다 주름 자국이 분명해진다. 주름 개수도 늘어난다. 점점 주먹을 쥐거나 움켜잡는 순간이 많게 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너는 내가 상처 줄 때마다 주먹을 쥐었다. 울 때마다 꽉 움켜쥘 수 있게 팔을 빌려달라고 했다. 네 손가락 마디 주름의 개수는 상처 받고 아팠던 횟수였다. 나는 그걸 몰랐다. 너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 손가락 마디에 주름이 있다. 그게 다 마음 아릴 때마다 주먹 쥐어서 생긴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지금도 그런 인간일 테다.


입대하고 1년이 지났을 때 부사수 후임병이 들어왔다. 긴장하고 떨고 종일 눈치 보는 보통의 이등병이었다. 적당히 놀리고 적당히 괴롭히고 적당히 훈계했다. 이등병이 군대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임병의 역할이란 게 그런 것이었다. 위계에 굴종하는 인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선임병인 나는 너에게 장난치고 괴롭히고 훈계할 수 있지만, 후임병인 너는 그럴 수 없다. 입대 시기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거기 동참하지 못하여 반발하거나 우왕좌왕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는 낙인찍혔다. 우리는 그렇게 낙인찍힌 이들을 ‘관심병사’, ‘그린캠프’, ‘병신 새끼’ 따위의 단어로 호명하며 뒤에서 조롱했다.


부사수 후임병은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난에 반응하고 웃고, 떠들고, 지적받아 혼나면 고개 떨구며 ‘네’ 했다. 그때 후임병은 포대장을 호출해 상담했다. 도무지 여기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립돼 있는 것 같고 영원히 고립될 것 같다. 힘에 부치고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에게 장담할 수 없어 더 힘에 부친다. 그는 그렇게 울먹거렸다고 했다.


후임병은 일병쯤 돼 조기 전역했다. 그가 전역한 당일 나를 비롯한 선임병들은 모여서 후임병을 재단했다. 그 새끼는 유약한 새끼다, 남자 새끼도 못된다. 대체 이 정도의 고통에도 호응하지 못하면 밖에 나가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데. 누구는 힘든 시기가 없었던 줄 아는지. 우리는 그때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각자가 어떻게 ‘털리며’ 지금에 이르렀는지 과시하듯 이야기했다. 과거보다 훨씬 나은 환경의 군대고, 성질 없는 선임들이라며 자꾸 과거를 소환했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는 인간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등병 때 나는 화장실 변기에서 울거나 자면서 울었다. 자발적 의사란 것이 성립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고등학교 3개쯤 붙어 있는 곳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막막했다. 선임들의 눈초리는 행동에 제약을 가게 하고 어떻게 행동하건 그건 아니라고 일러주는 곳에서 나는 말수가 줄고 소극적이게 됐다. 불호령과 탄식이 싫었다. 일러준 것도 못하는 멍청한 새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좁은 세계에서 이등병은 맘대로 물고 뜯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흡연장에서 선임들은 후임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누가 더 A급이고, 누가 더 폐급이고. 그들은 후임병들에게 등급을 매겼다. 흡연장 근처에 가기 싫었다. 그들이 담배 피우며 나를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듣고 싶지 않았다. 종일 거기에 연연하기 싫었다.

 

'위계'를 그때부터 감각했다. 표현, 행동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나를 억압할 수 있는 것. 위계나 권력은 공기다. 존재만으로 행사되는 에너지다. 나는 위계의 밑바닥이었고 나보다 더 높은 위계의 인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내가 높은 서열에 진입했을 때 이등병 때 감각한 것들을 다 잊었다. 서열을 권위이자 정의로 여겼다. 높은 이의 말에 복종하고 후임병에게 함부로 말했다. 모두 그렇게 하니까 나도 따르면 그만이다. 일부러 의문을 누락했다. 나는 전역한 후임병을 욕했다. 미친 새끼. 누군들 각자의 이등병이 있는데 지만 유난이야.


<내 이름은 군대>를 쓴 이상문 씨는 차근차근 기록한다. 훈련소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감각한 문제의식과 부조리를 소상히 썼다. 그는 남들 하는 만큼의 보통의 군인이 되려 노력하지만 도무지 이건 아니라는 자각이 들면 용기 내 발언한다. “유치원생과 하는 건 어떠냐”는 혐오 발화에 그만해달라고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위안이 될 만큼 군대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자기 심상을 솔직하게 토로했는데 그에겐 ‘유난한 새끼’와 ‘관심병사’라는 인장이 첨부된다.


거기서 그는 단지 유희 거리로 치부하면 그만인 언어에 세세히 반응하는 ‘윤리적인 척하는 놈’이 됐다. 이해할 수 없는 명목으로 내 자유를 구속해서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외쳤지만 그 고통의 성분을 헤아리는 시도는 없다. 이상문 씨는 관심병사로 분류돼 자살하고 사고 칠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검문당한다. 그는 배제되고 낙인찍히고 동정과 경멸이 뒤섞인 시선을 감당한다. 그는 겨우 버틴다. 자살할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때도 있지만 지금의 고통이 두려운 것만큼 죽음도 두렵다. 그는 고작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군대는 개인을 지운다. 병사는 지시받은 임무를 수행하여 제 몫을 할 때 비로소 인정받는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과 성취에 대한 인정이 아니다. 이 집단이 유지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부속품으로써의 임무에 충실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체계가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인은 부품이 돼야 한다. 개인은 소모품이라서 2년 지나면 다른 이로 대체된다.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 군대다. 같은 옷과 같은 말투, 같은 복장을 장착해야 한다. 시간과 행동을 통제당한다. 비슷한 규격의 일상이 모여 흐름이 되는데 거기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는 것 자체가 금기된다. 근무시간에 3분이라도 늦으면 군인 본분을 망각했다며 선임과 지휘관과 간부들에게 3일을 시달린다.


이상문 씨는 동성애자다. 털이 많거나 땀이 많거나 외향적, 내향적 성격의 개인이 있는 것처럼 이상문 씨를 구성하는 정체성 중에 동성애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은폐해야 그나마 지금만큼의 처우를 받을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군은 2017년 5월 동성애자인 A대위에게 징역을 선고했다. 군 내부에서 성적 강제행위를 동반한 게 아니었다. 바깥에서 동성 성관계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는 이유였다. 군은 동성애를 죄악이라 규정했다. 그때부터 이상문 씨는 샤워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벗은 남성들이 밀집돼 있고 혹여나 이상한 기색이 드러나 자기 정체성이 발각될까 봐 그는 냄새날 때까지 씻지 않았다. 더럽고 냄새나는 병사가 동성애자 군인보다 훨씬 그 안에서 더 나은 취급을 받았다.


군은 개성을 통제한다. 그것은 개인의 삶 또한 통제하겠다는 의식의 발로다. 군대 내의 최고 서열은 중년 남성이고 중년 남성이 정의한 ‘정상적’ 삶의 규범에 모든 병사를 뭉뚱그린다. 그들이 정의한 ‘정상’만이 정상이다. 이상문 씨를 비롯한 동성애자 군인은 군대 내에서 비정상이고 비주류고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다.


이상문 씨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는지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 다만 짐작 정도 할 수 있다. 거기서 받은 고통과 상처는 주름으로 정착하고 살갗에 달라붙어 간헐적으로 여파를 자아낼 거다. 어떤 고통은 자기 마음에서 영원히 회자되고 그래서 그가 이 책을 쓴 것 같다. 잊을 수 없어서. 또 잊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처음 든 감정은 미안함이다. 나 역시 그의 고통에 일조했을 거다. 조롱하고 모욕하고 유난스럽고 제정신 아닌 인간이라 규정하면서 그를 배격하는데 가담했을 거다. 나는 나와 다른 이들을 무관하다며 경계 짓는 인간이니까.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기어이 기록으로 남겨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내 이름은 군대>는 정미소에서 출간한 책이다. 정미소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던 김민섭 씨가 세운 출판사다. 김민섭 씨는 구석에서 웅크려 있는 이에게 목소리 내라고 격려하는 인간인 듯싶다. 그의 활동 역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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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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