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가 바라보는 소수자
글 입력 2019.10.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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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하반신이 불구인 한 여자, 조제와 가벼운 연애를 즐기던 청년, 츠네오의 이야기이다. 장애를 가진 손녀를 부끄러워하는 할머니와 사는 조제에게는 그녀의 집 그리고 할머니가 주워 오시는 버려진 책들이 세상의 전부이다. 외부와의 연결이라고는 이른 새벽 유모차에 숨어서 하는 산책이 전부인 조제. 활발한 대학생이자 도박장에서 일을 하는 청년인 츠네오. 정반대인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여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고, 츠네오 또한 조제를 통해 자신이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여느 연애가 그러하듯, 둘은 연애도 끝을 맞이하게 된다.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 흔한 로맨스 영화의 서사와 같은 구조를 따라가지만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은 이 구조에서 오지 않는다.


2002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오아시스>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같이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들의 사랑의 시작은 ‘성폭력’이다. 남성(종두)이 여성(공주)에게 성욕을 느껴 ‘겁탈’하게 되고, 그 이후 공주가 종두에게 연락을 하고 사랑을 느껴 둘의 연애가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공주라는 인물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주변의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반인륜적 행태인 강간을 하려했던 대상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장애인이 성에 대해 무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서사이다. 또한, 2006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에서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재벌가 상속자 여성인 민과, 비장애 남성 줄리앙의 연애담을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민은 영화의 서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비장애인 남성)에게 계속해서 좌지우지되며 무능한 어린아이와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녀가 위험에 처할 때 마다 등장하는 줄리앙은 민의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하여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고 운명적으로 만들어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 두 영화는 모두 남성적 시선을 바탕으로 장애인 여성에게 부여되는 수동적 섹슈얼리티를 견고히 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이 인간의 인식의 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러한 서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그릇된 성관념과 인식을 심어주는지 알 수 있다.

 

이 두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예술 작품들에서 장애인 인물과 비장애인 인물의 사랑과 연애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태반이며, 장애인 인물의 수동적 성향과, 비장애인 인물의 희생을 부각하고는 한다. 이처럼, 장애를 가진 인물의 사랑과 성을 다루는 것은 항상 정해진 스테레오 타입이나 클리셰가 존재하길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벗어나서 다루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며 금기시 되기도 한다. 실제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원작인 책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서는 장애인의 연애와 성관계를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조심스러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일 뿐, 그들의 사랑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사랑, 이별 그리고 성장


 

조제와 츠네오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어 사랑을 하고, 다른 연인들과 같이 이별한다. 모든 것이 새로운 연애 초기와, 시간이 흐를수록 권태로운 연애의 마지막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에서 조제(사실은 쿠미코다)는 프랑수아 사강의 책의 주인공인 ‘조제’를 동경하여 자신을 조제라고 불러 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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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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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경한 것은 만남과 이별에 초연한 태도이다. 조제는 츠네오와의 만남에서도 사랑과 이별에 대해서 초연하려 한다. 그들의 이별에는 눈물을 짜내는 신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헤어진 두 남녀가 있으며,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조제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외출을 하며, 깔끔한 방 안에서 여느 때와 같이 요리를 하는 장면으로 담담하게 끝이 난다. 이처럼, 방 안에 갇혀 살던 조제는 스스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조제와 장애인 인물의 아이덴티티


 

조제라는 인물은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조제는 츠네오에게 의존적이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는 츠네오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 세상을 마주할 때에는 츠네오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그 이후 그녀의 행보는 절대 의존적이지 않았다.(우리는 도움을 받는 것과 의존적인 것을 구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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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서슴 없으며, 다른 영화가 그려내는 장애인 여성들과 같이 영화의 서사에 묻어가는 인물이 아닌,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이 영화의 다른 등장인물들은 조제의 장애를 조제의 존재보다 크게 바라본다. 조제의 할머니는 그녀의 존재를 부끄러워하여 그녀를 숨기는 데에 급급하며, 츠네오와 몰래 외출하고 돌아온 날에는 ‘몸도 불편한 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그녀를 책망한다. 또한, 복지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여대생 카나에 또한, 조제에게 자신의 애인인 츠네오를 빼앗기자 ‘장애인 주제에 내 애인을 빼앗다니.’ 라며, 감춰두었던 차별적인 시선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 외에도, 츠네오의 동생은 ‘장애인이랑 처음 말해봐!’ 라고 발언하는 등, 이 영화의 다른 인물들은 장애인을 ‘숨어야 할 존재’, ‘수동적인 존재’, 혹은 ‘신기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조제를 대하는 츠네오의 태도는 그렇지 않다. 조제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도움을 주지만, 누구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종속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만남을 이어간다.

 

 

 

조제와 장애인 여성의 섹슈얼리티


 

조제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며 동시에 다른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섹슈얼리티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앞서 소개한 다른 영화들이나,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인 ‘성에 무지한 장애인 여성’ 이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상대와 성관계를 하는 인물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률 중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중 ‘제 29조 성에서의 차별금지’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성 차별을 금지한다. 즉, 다른 비장애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며,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권리를 흔히 망각하곤 하는 우리에게 영화는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며 신선한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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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츠네오와 조제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조제가 먼저 츠네오에게 성관계를 제안한다. 또한, 츠네오와의 대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기 위해 너를 만났다.’ 라는 대사를 통해 그녀가 성에 무지한 인물도 아니며, 성적 행위에 대해 소극적인 인물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캐릭터부터 서사까지 장애를 특별한 시선으로 다루지 않으며,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걸 느끼도록 한다. 하지만 조제의 장애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서술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조제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호랑이’와 ‘물고기’는 각각 그들의 연애의 초반과 후반에 등장하는 동물들로 비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연애 초반에, 조제는 츠네오와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에 간다. 조제는 호랑이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 며 츠네오의 손을 잡는다. 호랑이는 조제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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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타의에 의해 평생 세상에서 배제된 채 살아왔다. 할머니가 이끄는 유모차 속에서 칼을 들고 두려움에 떨며 산책하던 조제는 사랑을 통해 가장 무서운 것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연애 후반, 그들은 츠네오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다가 방향을 틀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조제는 츠네오에게 물고기를 보러 가자고 조르고, 그들은 물고기가 그려진 온천 여관에서 머무르게 된다. 밤이 되자 방 안은 조명으로 만들어진 물고기로 가득 차고, 조제의 상상이 만든 물고기 환영이 나타나며 조제는 독백을 시작한다.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곳은 빛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중략)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난 두번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언젠가 너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아.‘

 

조제가 보고 싶어했던 물고기는 조제 자기 자신을 뜻하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차별적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여 ‘해저 깊은 곳’ 에 살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난 이후로 그 곳에 벗어나게 된다. 츠네오를 만나기 전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이별 후에도 그 기억을 품고 잘 살아갈 자신의 모습을 조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학에서는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있을 때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손상으로 인해 사회적 차별이나 제약을 받을 때 비로소 진짜 장애가 생긴다고 한다. 즉, 장애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근, 소수자의 인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혐오 발언이나 고용차별 등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한 시선으로 보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장애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도와줘야 할 존재로 인식하곤 한다. 하나의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 그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차별을 철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 또한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수자’라는 개념은 단순히 수량적 규모의 개념이 아니다. 소수자는 한 사회 내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소유한 우세한 지배 집단이 있을 때 존재한다. 결국, 현대 사회의 소수자들이 소수자가 아니게 되기 위해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처럼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주목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언젠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느끼지 않을 시기가 오길 바란다.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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