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더라도 - 영화 "연인" [영화]

원작 소설 『연인』과 나란히 보기
글 입력 2019.10.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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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분야에 있어서, 서로 다른 장르 간의 리메이크는 흔히 일어난다. 리메이크라 원작의 감동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이며,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가 되기도 한다. 한편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어설프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가는 원작의 디테일을 훼손해 감상자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며, 현대 대중예술 속에서는 검증된 작품을 이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전략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 《연인》 역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영화는 소설의 사건과 묘사들을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주인공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프랑스 여고생이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대에 베트남에 거주하던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사기꾼들로 인해 재산을 잃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큰아들은 마약에 손을 댄다. 주인공과 남동생은 어머니와 큰오빠의 폭력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주인공은 메콩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32살 중국인 재벌 2세를 만나 관계를 맺으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결국 남자는 다른 재력가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고 여자는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며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들의 사랑이 전개되고 끝맺는 과정은 슬프고 안타깝다. 학교의 여자기숙사에서 지내던 주인공은 열 살 이상 많은 남자가 계속 학교 앞으로 찾아오자 학교에서 창녀로 소문나게 된다. 어머니와 오빠 역시 주인공이 중국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질책하고 집안에는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매일 밤 남자와 함께 ‘독신남의 방’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다. 괴로움으로 점철된 각자의 삶을 뒤로하고 온전히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늘 인식하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 소설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이전에 기고한 오피니언 url을 첨부한다([Opinion] 사랑스러운 고통,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남은 연인에 대하여 [도서]). 본 글에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과 장 자크 아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서로 다른 특징들과 감상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둘의 차이와 그로 인한 효과는 문학과 영상예술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문학적 묘사는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드러나는 표현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즉각적이고 명확한 이미지로서 감상자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징적인 소재나 행동들을 화면에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연인》 속의 대표적인 두 장면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크기변환]마지막.jpg

 

 

먼저 주인공이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라타 마지막으로 부두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장면이고, 이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정략결혼을 마친 뒤의 일이다. 배가 천천히 부두를 뜨는데, 저 멀리 남자의 검은색 세단이 보인다. 처음 둘이 만났을 때 남자가 타고 있던 자가용인 동시에, 매일 학교 앞에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던 대상이다. 누추한 베트남의 거리풍경과 대조되어 광택이 나는 시커먼 자동차다. 이 대상은 주인공이 베트남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의 시야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 특유의 빈번한 시선 전환 탓에 차가 서있고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 주인공의 눈에 보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이 모든 것이 드러난다. 해당 장면에서는 소녀가 남자의 차를 보았지만, 그 안에 남자가 있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영화의 내래이션(내래이션은 노인이 된 주인공이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말해주는 이야기이다.)을 통해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라고만 말하고 있다. 이 장면은 소설 특유의 추상성과 모호성을 영화에서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단이라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노출시키고,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감각과 사고의 주체를 세심하게 정하여 감상자가 감동할 수 있는 장면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는 영화(영상예술)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편집으로, 원작 소설에서보다 해당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크기변환]폭력.jpg

 

 

다음은 남자가 주인공에게 화를 내고 뺨을 때린 장면이다. 남자는 주인공의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 근사한 식사를 대접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체도 안하고 오빠와 동생은 비싼 음식을 게걸스레 먹기만 한다. 주인공 역시 가족들과 함께 남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인공의 가족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나서 남자와 주인공은 ‘독신남의 방’으로 돌아오는데, 남자가 돌연 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쏘아본다. 처음으로 둘의 관계에서 폭력이 일어난 것이다.

 

이 장면은 소설에 존재하지 않던 사건을 영화에 새롭게 집어넣은 경우에 해당한다. 소설에서는 식사 후에 ‘독신남의 방’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남자는 울면서 주인공에게 자신이 혹시 잘못한 게 있는지 묻고, 주인공이 아니라고 원래 가족들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대답해준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남자는 줄곧 소심한 성격으로 보여지고 있어 갑자기 뺨을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 것은 감상자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이는 남자가 소심한 사람이긴 하지만, 주인공의 가족들과의 자리에서 남자가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소설과 같은 방식을 표현하면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 장면의 짧은 시간 안에 남자의 충격을 감상자에게 전달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영화의 장면에 폭력을 도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영화 나름의 명확한 이미지를 위해 소설에 없던 장면을 삽입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한편 이러한 특징 때문에 영화에서의 인물들의 성격이 소설과는 달라 보이는 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소설에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무기력감 때문이다. 둘을 둘러싼 환경(남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지 못하고, 주인공은 신경쇠약의 어머니에게 시달린다는 사실)에서부터 둘의 관계가 어긋나지만, 근본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각자의 환경 속에서 너무 지쳐온 나머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져야겠다는 인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가정이 불안정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남자는 소심하여 아버지의 뜻을 거역해본 적이 없다. 이 둘이 그리는 사랑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동시에 유일한 마음의 안식이지만,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를 배양해본 적 없기에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들의 관계에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프랑스로 떠난 후 남자가 배필과 결혼하지만, 영화에서는 아예 결혼식 장면을 삽입하여 둘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못박아 버린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독신남의 방’으로 찾아가 먼저 기다리기도 하는 등, 둘이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장면들을 삽입하여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한다. 결국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각 인물이 무기력하다는 인상이 훨씬 적어 근본적인 분위기에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


영화 《연인》과 소설 『연인』은 같은 듯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스스로의 장르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주저앉은 삶과 광적인 사랑을 각 장르의 한계 속에서 최대한으로 표현하여 두 작품은 영화계와 문학계에서 극찬을 받았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삶의 무게를 감각적인 문체로 느끼고 싶다면 소설을, 파격적인 영상으로 마주하고 싶다면 영화를 접하기를 추천한다. 에로티시즘 영화 특성상 ‘예술과 외설의 경계’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잔함 앞에서 저런 꼬리표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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