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이겨내는 순간, 연극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글 입력 2019.10.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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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어떻게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다들 그렇게 용기와 끈기로 똘똘 뭉쳐있는지, 위험한 곳이라도 가야한다면 가고, 포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질 않는다. 나라면 벌써 저만치에서 포기하고 그럭저럭 살았을텐데 주인공들이란 좀체 그런 법이 없다.


우리 모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데, 정말 그렇기는 한 걸까? 이런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한 걸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를 예견하는 사람, 하면서도 그만둘 것을 늘 유력한 선택지로 마음 한 켠에 품고있는 사람. 주인공을 수식하기엔 형편 없어 보이는 문장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는 연정은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게임 속 이야기를 만드는 그는 누구보다도 주인공의 이야기를 이해해야하는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게임 스토리가 언제나 부유하고 있다. 저격총을 든 주인공. 목표가 탄 흰색 차량이 접근한다. 쏠까? 말까?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데, 그러질 못한다. 도대체 왜? 묻는다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그 다음엔? 그게 연정이 만드는 게임이고, 연정의 삶이다. 레몬 사이다도 그렇다.


자판기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음료인 레몬 사이다는, 마셔보면 ‘왜 인기가 없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는 평을 받는 그런 음료다. 그런 레몬 사이다가, 마시다 보면 꽤 중독성 있는 음료가 되었다가, 마침내 그들의 등 뒤에 당당하게 적힌 팀의 이름이 된다는 건 정말 운명같은 일이 아닐까?

 

벤치에 앉아 레몬사이다를 마시던 연정은 ‘농구 같이할래요?’ 라는 말에 환희와 연미, 재경과 혜주를 만난다. 한 팀을 이루려면 다섯명이 필요한데, 딱 한명이 모자란 참에 그들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연정이었던 탓이다. 운명같은 만남이다. 고삼 둘, 대학생 하나, 직장인 하나, 그리고 프리랜서 하나. 다섯명의 서로 다른 인생들이 서로 다른 마음 가짐으로 한 팀이 되었다. 혜주는 말한다. 팀이 된다는 건 목표가 같다는 거다. 그리고 그 목표란? 이기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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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프로를 지향했으나 부상 후 다시 시작하지 않고 지리교육과로 진학한 환희는 인생에 세이브 포인트가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냐는 연정의 질문에 세이브 존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어느날은 후회하고 어느날은 후회하지 않아도, 자신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고 다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갔을 뿐이라고. 그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에서 연정은 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는 했다. 언제나 클라이맥스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그는 그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면 정말로 끔찍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나는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건 농구 경기와 같다. 코트 위에 서서, 경기가 시작되면 도망칠 수 없다. 어영부영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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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목표로 했던 시민대회의 승패는 알 수 없다. 연정의 시원한 클린샷, 그 멋진 한 방으로 극은 끝이 났을 뿐이다. 하지만 졌어도 상관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 라는 말은 진부하고 순진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다는 것이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졌는가를 달리 생각해 본다면 그들은 졌지만 잘 싸운 것이 아니다. 연정은 이겼다. 시작도 전에,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안될 거라 머뭇거리던 자신을 이겨냈다. 최선을 다해서 이겼다. 재경과 혜주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환희 역시 다시 즐겁게 농구를 했으니, 모두가 이긴 셈이다.


다섯 명의 서로 다른 성격의 여성이 한 팀이 된다는 것. 하나의 목적을 가진다는 것, 서로를 믿고 움직인다는 것, 마침내 그 사이에서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자신의 벽을 넘는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는 무대 위를 바라본다는 것,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순간이다. 언제나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그 뜨거움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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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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