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멜로 서스펜스 "왕복서간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글 입력 2019.10.09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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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연극 <왕복서간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이하 <왕복서간>)이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개막했다. 올해 4월 초연을 거쳐 재연으로 돌아왔다. 이 연극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스타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소설은 서간문으로 되어있는데, 별도의 대화나 사전 설명 없이 멀리 떨어진 두 연인 준이치와 마리코의 편지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연은 이러한 서간문 소설을 극으로 승화시켰다.

 

 

SYNOPSIS

 

중학교 동창이자 지금은 오래된 연인 사이인 준이치와 마리코. 어느 날 갑자기 준이치는 2년간 남태평양의 오지 섬나라로 자원 봉사활동을 떠나게 되고,
그를 막을 수 없었던 마리코는 홀로 일본에 남아 오직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던 준이치에게 십오 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마리코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십오 년 전 그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준이치와 마리코는 그 동안 서로에게 숨겨왔던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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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서스펜스


 

객석을 들어서자마자 주변부만 다소 하얗게 칠해진 <왕복서간>의 무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무대는 어떤 공간들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준이치와 마리코, 두 캐릭터가 편지를 읽고 쓰는 두 곳을 양 옆으로 두고, 그 주변의 공간들을 두 사람이 묻어왔던 15년 전 과거로 메워 놨다. 주로 중심부를 맴돌던 현재의 준이치 마리코와 대조되게, 과거의 두 사람은 온 무대를 누비는 동선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만을 바라보며 15년간 과거를 잊고자 했던 두 사람의 현 상황과 제법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한편, 일본 특유의 서정성을 고스란히 살린 무대이기도 했다. 소재 자체도 무척이나 로맨틱하다. 무려 15년간 서로의 곁을 지켜온 두 사람이 먼 거리의 연애를 하게 되며, 서로에게 계속 편지를 쓴다. 배송기간은 무려 20일이다. 그러니까, 상대의 답장을 받으려면 무려 40일을 기다려야 한다. 원한다면 1초 만에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 텍스트를 보낼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이런 소재와 상황은 어떤 ‘감수성’을 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극은 분명히 서스펜스다. 15년 전 사건의 단서와 기억의 조각들은 편지를 통해 그대로 나열된다. 관객들은 그 단서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연애를 의심하고, 걱정하게 된다. 그 속에선 로맨틱보단 강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비로소 두 연인의 사랑이 보다 깊게 확인되며 ‘멜로 서스펜스’를 완성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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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지가 음성이 되다



원작소설에선 길고 긴 한 사람의 편지가 끝나고 나면, 상대의 답장이 다시 길고 길게 이어진다. 한숨에 읽지 않으면 무엇에 대한 답장인지 헷갈릴 수도 있을 만큼 한 통의 편지는 한 번에 여러 가지 것을 묻고 여러 가지 것을 답한다. 이 편지들이 무대를 오른다 했을 때, 가장 걱정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길고긴 서간들은 어떻게 음성이 될까.


극은 이미 이 지점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었던 것 마냥, 빠른 템포를 필요로 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각색했다. 40일의 텀을 가지고 있는 두 편의 편지를 하나의 대화로 편집한 것이다. 앞서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반전되게, 빠른 해명과 설명이 필요한 장면이었기에 조리 있는 각색이 꼭 필요 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러웠다. 글편지가 그야말로 음성이 된 것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지루함이 분명 어느 부분즈음에는 존재했었다. 준이치와 마리코는 긴 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체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건넨다. 고조되는 지점을 제외하고는 조금 루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가끔 튀어나오는 아역들은 재연에 충실하게 사용되어 그 사용이 다소 부실했다. 물론 두 주인공이 과거를 줄줄 읊는 것보다는 훨씬 입체적인 방법이었겠지만, 극적 재미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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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한 여성들



작품의 시놉시스나 소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왕복서간>은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등장하고 언급되는 모든 여성들은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가해자를 탓하지 못하고 자신 혹은 제3자를 책망한다. 결코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는 사건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가츠키 엄마를 향한 험담).


그런데 이 모든 구현이, 그리고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 그것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려했단 의도였다고 해도 매우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이 작품이 15년동안 품어온 준이치의 비밀과 사랑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된다. 마리코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당찬 캐릭터였음에고 불구하고, 준이치라는 캐릭터가 그런 마리코에게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태도도 한 몫했다.


불편한 감상 속에서도, <왕복서간>을 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소설이 연극이 되는 경우야 셀 수 없이 많지만, 편지 형식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이 연극이 된 경우는 아주 희귀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소재 속에서 서스펜스를 느끼는 경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장르와 형식이 뒤틀리고 섞여 탄생한 무언가를 만나는 건, 언제나 새롭고 궁금하다.


강지혜 배우의 연기도 후회할 수 없는 까닭 중 하나다. 마리코와 준이치는 퇴장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러닝타임동안 계속 무대에 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무대 위에 남겨져있는 시간에도 마리코의 감정은 편지를 읽고 과거를 회상하며 더 다양해진다. 섬세하고 다정한 감정선이 참 따라가기 좋았다.


연극 <왕복서간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은 다가오는 11월 4일까지 이어진다.

 

 


 

 

왕복서간往復書簡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공연장소 :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공연기간
2019년 09월27일(금) ~ 2019년 11월 04일(월)

 

공연일시
월,수,목,금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공휴일 오후 2시, 6시

(화 공연없음)

 

좌석등급 및 가격

R석 55,000원 / S 석 44,000원

 

관람 시간 : 10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 연령 : 만 13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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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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