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 피해자가 될 수 없는 빌런, 영화 "조커"

끝까지 어둡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
글 입력 2019.10.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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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개봉 전, 조커의 예고편이 거의 처음 상영됐을 때부터 이 영화는 꼭 보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의외였기 때문이다. 영화 her의 테오도르 역으로 이미 국내에서 감성 있고 깊이 있는 연기로 유명한 그가 조커라니? 기존의 조커 이미지와 어울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기존의 조커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새로운 조커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새로운 조커의 탄생이라 해서 이 영화가 화려한 액션과 엔터테인먼트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 영화 <버닝>이나 <기생충> 처럼 철저하게 깊은 사회적 비극과 그 비극이 만든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 방식으로 해석해 낸 영화임을 알고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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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는 절대 빌런 조커가 탄생하게 된 이유, 좀 더 정확하게 ‘아서 플렉’이라는 사회적 약자이자 순수한 인간성을 가진 인물이 어떤 트리거로 각성하고 조커가 되는지 시종일관 깊고 어둡고 묵직하게 담아낸다. 줄거리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면 더 할 것이 없는데,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조커라는 인물이 가진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내면으로부터 시작해 내면으로 끝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는 집요하게 그의 내면을 돌이켜보며, 왜 아서 플렉이란 인물은 조커가 되었는지부터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회적 약자지만 어떻게든 웃음을 만들며 간신히 무시와 가난을 버티며 살아가는 그를 살인자로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사회의 무시, 그리고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제 삶의 고통의 원인인 장애와 그 모든 비극이 자신이 믿었던 부모의 학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된 그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적인 역할을 완전히 놓아버린다.


사회가 규정한 약자라는 위치, 그리고 누군가를 웃기는 코미디언이 싶다고 스스로 정한 역할, 또 언제나 ‘해피’해야한다는 엄마의 가르침 등 한 인물을 규정짓는 것을 놓아 버리는 모습에서 사실은 누구나 그런 규정이 있고, 그것을 언제든지 놓아버릴 수 있을 만한 이유가 가득한 이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서 플렉의 내면이 깊이 이해되었던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모든 규정을 놓아버린 한 인물이 어떻게 다시 자신을 새롭게 규정짓는지 보여준다. 그것도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로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스스로 믿으며 만족스럽기 그지없어 춤까지 추는 악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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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감독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

참고로 이 감독은 영화 <행아웃> 시리즈와

<스타이즈 본>을 제작한 감독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 영화가 전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조커라는 아주 매력적으로 소비되는 악당을 특별하게 감독 입맛에 맞게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누구나 조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만 그 조커의 모습이 다를 뿐이기에 누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누구도 존중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자신을 어떻게 규정짓는지는 본인의 자유지만, 그것이 죄가 아니라면, 절대 타인이 무시하고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이를, 사회의 무시와 차별을 지독히도 받은 한 인간이 사회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신들린 연기력과 연출로 생생하게 전한다.


그러나 조커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폭동을 이어가게 한 촉발제 이자 원동력임에도 정치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은 그가 일그러진 영웅이 아닌 절대 빌런이 되기에 힘을 실어준다.


오로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사회적 약자 ‘아서’가 세상의 지지를 받고 우상이 되어버린 ‘조커’가 되어 짜릿할 뿐인 그의 내면은 춤을 추는 모습에서 제대로 표출된다. 그는 오로지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낀다. 우아하고 느긋하게 추는 그의 춤에 느껴지는 해방감은 그래서 섬뜩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조커는 그에게 사회적 최약층이자, 정신증을 갖게 한 장본인인 자신의 엄마와 똑같은 가해자가 되었다. 바로 증오의 대상인 토마스 웨인의 아들 브루스 웨인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만난 취객들을 살인한 조커의 행동이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치고, 또 총을 건네고도 조커를 모함한 코미디 극단의 동료를 죽인 것도 그 동료의 과거 행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쳐도, 조커는 오로지 증오의 대상을 벌하기 위해 그 아들의 앞에서 섬뜩하게 마술을 부리고,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언제든 죽일 궁리를 한다.


그러다 조커가 미친 사회의 영향으로 폭도들은 후에 배트맨이 될 브루스 웨인의 부모이자, 조커의 증오 대상이자, 사회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인물을 그 아들의 눈 앞에서 죽였다. 이것은 눈물겨운 복수극의 끝이 아니라, 대물림되는 유전자처럼 악의 고리가 이어지는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조커는 피해자가 아니라 영원한 빌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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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브루스 웨인)

 

 

그래서,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행보가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단순히 번쩍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슈퍼맨의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상처를 두고도 어떻게 표출해내는가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복수로 끝난 조커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선한 행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놓고 볼 때 그의 행위가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인간 근본적인 문제로 봐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모든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사회적 약자의 모두가 범죄를 자격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화제성 측면에서도 엄청나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주변에서도 이미 조커 이야기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N 회차 상영을 시작하겠다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한동안 쭉 깊이 회자할 것이고, 후에 이를 뛰어넘는 또 다른 조커가 탄생하기 전까진 독보적인 조커 캐릭터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염려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 그 어떤 개인의 상처도 우발적 범죄를 타당하게 만들 수는 없고 모든 악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즉, 환경이 사람을 만들더라도, 모든 결과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점은 단순 모방범죄의 우려가 아닌, 한 개인의 자아가 무너지는 상황, 그리고 그것이 사회로부터 촉발되었을 때 그 결과는 살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표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서’가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너무나도 처절하고 이해되게 만들었다. 현실의 ‘아서’가 가족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는 조커의 모든 행동을 마치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이고 끊이지 않던 그의 웃음이 더는 그의 정신장애에서 비롯된 웃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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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소름끼치는 이 영화가 15세 관람으로 둬도 괜찮은 걸까 싶다. 가위로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부분이나 조커의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여성비하 개그와 성적 개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로서 무시당하고, 피폐해져 저지르는 그의 행동이 당위성 있게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개봉한 영화 <미드 90>이 19세이며, 이 영화가 15세인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염려스러운 걸 보니, 어지간히도 이 영화가 엄청나게 몰입감 있고, 정말 이 모든 것이 ‘진짜’ 같이 느껴질 만큼 잘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아킨 피닉스가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 연기에 대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진짜라는 느낌을 주길 원한다. 픽션 세계에서 일어나는 픽션 이야기지만, 진짜라고 느껴지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이 ‘조커’라는 빌런 캐릭터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커’라는 예명을 가진 남자 ‘아서 플렉’의 다큐멘터리로 바라볼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역사 속에 존재한 것만 같은 희대의 살인마 ‘조커’를 이 영화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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