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이니치의 삶에서 모두에게 묻다, "혼마라비해?" [공연]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희생당한 개인들, 자이니치
글 입력 2019.09.2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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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한 움큼이랑
한 줌이랑 뭐가 달라?”


“같은 뜻이야!”


“그럼 이 시에

한 움큼이라고 써 있어도

한 줌으로 내가 막 바꿔도 돼?”


“…바꿔!”



한국어 공부를 하는 우진의 물음에 현규는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현규의 아버지 광식은 시에 사용된 단어는 멋대로 바꾸면 안 된다고 대답한다. 완성되고 나서부터 임의로 바꿔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시, 그리고 그 시를 이루는 단어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이니치의 국적에 주목하는 연극 <혼마라비해?> 속 대사들이기에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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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영주는 극중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리고 영주가 일본 극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오사카에 방문해 가까워진 지숙, 지숙의 하숙집 식구들인 광식과 현규, 우진은 자이니치다.


그들은 일본에서 살고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일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광식의 하숙집은 마치 작은 한국과 같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 문화에 서툰 우진은 이곳에서 광식에게 한국어를, 우진에게 한국사를 배운다. 영주는 자신도 잘 모르는 한국사를 줄줄 꿰고 있는 현규를 보며 내심 머쓱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주가 아무리 그들을 동지로 느낀다 한들 그들은 일본과 한국 사이 어딘가의 지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혐한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된 조선학교, 자이니치 학생이 지나가다 저고리를 찢긴 사건 등의 사회적인 차별과 소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응원했던 영주마저도 그들에게 편견 어린 태도로 대했던 것이야말로 그들이 철저히 타자화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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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그들을 타자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하숙집 거실에 걸려 있었던 김 부자의 초상이었을 것이다. 영주는 그 사진들을 보고 지숙과 하숙집 식구들이 간첩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그들이 조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조선학교와 북한식 사고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이 자녀들에게 조선말과 조선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교였다. 그리고 이 학교는 1957년부터 북한에서 보내고 있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북한식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자이니치들로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조선학교뿐이었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조선학교 학생들은 북한식 사고와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제도적 차별을 받았고 고교무상화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우진은 일본 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영주가 대본 작업과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3년 만에 겨우 하숙집 사람들과 재회했을 때, 우진은 오랜만에 보는 영주와 현규가 반가운 나머지 일본어로 수다를 떤다. 그리고 이를 본 광식은 불같이 화를 낸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켜온 한국말과 문화인데,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 시기 가수로 일본에서 성공한 현규는 TV 방송에서 독도는 어느 땅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현규는 순식간에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동포 가수’에서 ‘매국노, 친일파 가수’로 전락한다. 그리고 현규가 SNS에 사과문을 올리자 일본에서 또한 비난여론이 들끓게 된다. 결국 현규는 내외적인 갈등 끝에 일본 국적을 선택하게 된다.


겨우내 지켜온 조선인의 핏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울부짖는 광식,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결국 현실과 타협하며 일본인으로 귀화한 현규. 그들은 어떤 상황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극 초반에서 ‘한 움큼’과 ‘한 줌’을 두고 엇갈렸던 반응과 오버랩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들 중에서, 우리는 ‘국적’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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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제도적, 정치적인 거대한 파도 안에서 휩쓸리고 희생당한 개인들의 삶은 흔히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간 우리들과 같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 현규와 지숙은 라트비아로 떠난다. 라트비아는 동양인이 유독 없기로 잘 알려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남한, 남한과 일본, 북한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 어지럽게 얽힌 이해관계에 염증이 난 그들이 향한 라트비아는 그들의 국적과 혈통, 역사와 사상에 대해 전혀 연연하지 않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우진이 안부를 묻자 지숙은 “혼마라비해!”라고 답한다. ‘혼마’는 일본 간사이 지방 방언으로 ‘진짜’를, ‘라비’는 라트비아어로 ‘좋다’를 뜻한다. 그리고 연극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좋아?’라고 말이다.


그리고 단편적인 조각들로만 그들을 바라보고 판단했던 나는 흔쾌히 ‘혼마라비해!’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를 깨닫고 진심으로 사과하려 했던 영주처럼,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만 있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그 시작이 되어 준 <혼마라비해?>, 재일교포의 삶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감상한다면 더욱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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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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