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것이 온당한지 - 미스 플라이트 [도서]

글 입력 2019.09.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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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 오가는 광경을 외면한 적 있다. ‘오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발화자의 일방적 폭언을 다른 한 쪽이 겁에 질려 수신하는 모양이었다. 폭언의 수위가 격렬해져 나는 자리를 떴다. 내게 피해가 오는 게 싫었다. 그 때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몫의 책임이 분담될 것 같았다. 이곳은 나와 무관한 장소고, 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뇌면서 달아났다.


나와 무관한 인간들의 싸움에 개입하여 내 일상에 변수를 만들기 싫었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만큼 내 일상의 안전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뒤를 돌아볼 만큼의 폭언이었지만 그 상황의 구체적 맥락을 나는 알지 못했다. 잘못의 대가를 치르는 것일 수 있고 다툼이나 싸움 같은 부류의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무엇보다 내 삶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건 다 변명이다.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그런 식으로 대응했던가. 내가 받는 명백한 피해에도 나는 목소리 내지 않았다. 관계 지속을 위해. 용기 내는 것만큼 남의 눈도 싫어서. 한번 참으면 그 상황은 모면되고, 가해자와 언성 높이며 잘잘못을 가름하는 일은 훨씬 많은 양의 체력과 시간을 담보하기에. 일일이 그런 명목을 만들어서 모든 일을 넘겼지만 실은 그냥 무서웠던 거다. 내가 낸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있음을 가정하고 그것들이 나를 겨냥하여 좀먹을까봐. 나는 무엇에든 책임지기 싫었다. 비겁했다.


노조에 가담하여 시스템을 지적하던 유나는 회사에게 눈엣가시다. 회사는 유나와 노조 간부가 불륜 관계라는 루머를 유포하고 사사로운 일을 구실 삼아 반성문을 쓰도록 종용했다. 유나를 고립시키려는 전락이다.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면 인간은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하여 알아서 기는데 유나는 자살한다. 회사는 화환을 보내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예의를 치르는 듯 보이지만 경계를 명확히 한다. 유나의 자살과 회사 사이엔 어떤 인과도 성립하지 않음을 못 박는다.


정근은 십 수년간 단절됐던 혈연을 영정사진으로 대면한다. 분노, 유감, 그런 것보다 자기감정을 알 수 없다는 데의 당혹이 커 보인다. 정근은 유나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대령까지 달았던 정근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지만 위계나 서열에 익숙하다. 부대 내 권력의 정점으로 군림하던 것처럼 가정에서 역시 권력관계를 적용하려 든다.


관습으로 치부되던 방산비리가 윤 소령에 의해 폭로된다. 내부고발자에게 겨냥되는 낙인과 위해를 감당할 수 없던 윤 소령은 자살한다. 유나는 정근을 본격적으로 증오하기 시작한다. 해당 부대의 책임자는 정근이었고 방산비리를 묵인하던 것도 정근이었다. 그는 윤 소령의 자살은 자발적 선택이었다며 죽음에 어떤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 유나는 다르다. 당신은 비겁하고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성립돼야 무관하지 않은 건가. 유나의 눈자위엔 경멸이 있다.


정근은 그걸 참을 수 없다. 유나의 머리채를 잡고 배를 걷어찬다. 네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외로웠다고, 날 지지해줄 수 없었냐고 되뇌지만 거기 어떤 구석에 서열의 전복을 참을 수 없던 마음도 있었다.


<미스 플라이트>는 정해진 순번이나 양 없이 각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서술된다. 그들 모두는 유나의 궤적과 마음을 추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유나의 자살에 회사가 개입한 정황을 추정해도 여론을 환기하는데 신중하다. 거대 기업을 상대해야 한다는 데의 두려움보다 순서가 잘못됐다고 느껴서다. 그들에겐 유나를 아는 게 먼저다. 죽음 뒤에야 상처의 성분을 파악하려는 이들에겐 미안함이 있다. 너를 알지 못했다는 것. 그들은 자책하고 반성한다. 알았다면 상처를 짐작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방관하지는 않았을까. 되돌아가 진작 네 상처를 짐작했다 해도 나는 너를 지지하며 같이 목소리 낼 수 있었을까. 대상을 찾아 책임을 묻는 건 그 다음이다. 그들이 유나의 죽음에 책임지는 방식은 자기반성이다.


정근은 다르다. 유나와 정근의 관계는 <미스 플라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정근은 변명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방산비리가 묵인되던 역사는 길었고 자신 역시 그게 부조리함을 알았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정근은 그것이 폭로됨으로 인해 군에 균열이 일어남을 원하지 않았다. 청산돼야할 폐단이어도 어쨌거나 높은 계급에게서 하달된 거라면 따라야 한다. 그게 정근이 학습한 군의 규범이었다. 그런데 윤 소령은 기어이 균열을 일으킨다. 균열의 여파가 자신에게도 오리라고 감지하지 못한 건지. 그것 보다 윤소령은 책임지려는 인간이다. 고통에 둔감해진다면 수치심 없는 인간이 돼 버린다. 인지했기에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때때로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존이나 처세, 두려움을 극복한다.


그리고 유나는 일기를 썼다. 일기는 명백히 아빠를 독자로 설정한 것이었다. 증오와 경멸의 대상에게 일기를 썼다. 왜 그랬을까.


유나가 일기를 쓴 까닭은 그럼에도 변화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당연한 윤리나 양심을 실천하는 것도 이만큼 어렵다. 고립과 배제로 이어짐을 각오했지만 각오하는 것과 실상을 대면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일기는 아빠가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발로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그 가치가 집단 질서보다 낮은 위계에 있게 되면 그름은 옳음이 된다. 유나는 정근이 자신을 통해 반성했으면 좋겠다. 무관하다며 선 그었던 윤 소령의 마음까지 헤아렸으면 좋겠다.


정근이 유나의 궤적을 추적하는 이유를 부성의 발휘라 해석 할 수 없다. 유나는 정근을 알았지만 정근은 유나를 몰랐다. 나를 경멸하던 유나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죽음 뒤에서야 이해하려는 시도다. 혹은 경멸의 이유를 그제야 파악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때 정근은 자기가 옳다고 믿었다. 악습 역시 집단에서 통용되는 규범이고 그 규범을 따르는 게 정근의 양심이자 윤리였다. 그러나 분명 계산도 있었다. 그 규범을 따름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일치할 거란 의식 또한 정근의 마음에 있었다.


칸트는 행동의 선악을 가름하는 기준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스스로 옳다고 믿은 행동이라면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옳은 행동이다. 그러나 칸트는 확신범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확신범은 테러를 수행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 칸트의 논리대로라면 확신범 역시 ‘옳은 인간’이 된다. 칸트는 틀렸다. 내부의 규범을 초월한 절대적 도덕이 분명 있다. 그렇게 보면 정근은 확신범과 유사하다. 정근은 윤소령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은 옳다고 믿었다. 억울해 했다. 소설은 유나의 궤적을 따르며 자기 확신에 무뎌져 가는 정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끝난다. 또 다시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가 정한 규범에 충실할지, 아니면 성찰하고 반성하여 변화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이 온당한지. 박민정 작가는 그렇게 자문하며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온당하지 않다면 거기에 책임지는 인간이 없어서 일거다. 책임지는 인간이 되기 위해선 자기 양심에서 치러지는 판결의 재판관이 명확한 인간이어야 할 테다. 너는 거기 얼마나 가담했는가. 계산하고 이익을 따지는 시도가 있지는 않았는가. 정말 옳았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규명하는 일 역시 개인의 마음에 달렸다.


이것이 온당한지 자문하는 능력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시도할 때 획득된다. 내가 옳다고 믿어 수행한 것들이 너를 상처 입히진 않았는가. 내 양심의 재판관은 명확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 참작해줬다. 나는 그런식으로 부조리와 불합리에 굴복하는 스스로를 기만했다.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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