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주하지 않는 연주, 존 케이지 "4분 33초" [공연예술]

4분 33초라는 우연성의 음악
글 입력 2019.09.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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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29일, 뉴욕주 우드스탁 숲속 매버릭(Maverick) 콘서트홀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부푼 기대를 안은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으며 한 연주자가 등장했다. 이윽고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할 채비를 마쳤다. 긴장한 듯 어깨를 푸는 연주자의 모습에 웅성거리던 소리는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연주하기는커녕 건반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저 33초, 2분 40초 그리고 1분 20초를 지날 때마다 음표 하나 없는 깨끗한 악보만 넘길 뿐이었다. 4분 33초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그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에게는 황당한 해프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위음악 공연으로 잘 알려진 바 있다. 그동안 음을 쪼개고 붙이는 등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반대로 아무 소리도 연주하지 않았으니 관객들은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이 공연에 매우 적대적이거나 옹호적인 양극화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 작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4분 33초의 시작


작품의 작곡가인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는 미국의 현대 음악가이다. 작곡 외에도 음악 이론가, 작가, 철학자 등으로 활동을 하며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피아노의 현 사이에 볼트, 나사, 털실, 지우개, 포트 등을 끼워 넣어 독특한 사운드를 얻는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했던 <4분 33초>(1952)는 존 케이지를 최고의 전위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주자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를 통해 선보인 후, 1972년에는 보스턴 하버드 광장에서 직접 공연하였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했다.

한편 작품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악장의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가 없으며, 음악의 길이에 대한 지시도 없다. 오직 ‘TACET(조용히)’이라는 악상만 쓰여 있다. 따라서 작품의 초연 때는 무작위로 시간을 결정하여 1악장을 33초, 2악장을 2분 40초, 3악장을 1분 20초씩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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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존 케이지는 이 곡에 침묵 같은 건 없다고 설명했다. 첫 공연이 끝난 뒤 “1악장에서는 콘서트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2악장 때는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렸으며, 3악장 때는 청중이 웅성대면서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곡 전체가 온갖 흥미로운 소리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존 케이지가 이러한 음악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1950년경 그는 우연히 하버드 대학교의 무향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방은 무수한 유리섬유 쐐기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당연히 침묵을 예상했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된다. 하나는 피가 순환하는 낮은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몸속의 소음이 들려주는 높은 음이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특히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정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곡을 만들게 한 것이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미국 미네아폴리스 오필드 연구소의 무향실은 배경 잡음이 -9.4dB로 측정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라는 기록을 얻었다. (중략) 무향실은 인상적인 침묵을 지닌다. 두 가지 비정상적인 감각을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외부 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이 곳에서 감각이 고장 난다. 방문객들은 분명 눈으로 실내를 보지만 이 공간이 있다고 나타내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한다.

- 트레버 콕스, 『지상 최고의 사운드』, 세종서적(2019), 256쪽.




우연성의 음악


필자는 학창시절 수업을 통해 <4분 33초> 연주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영상 속의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 심호흡한 뒤에 악보를 펼쳤다. 그러고 나서 피아노 위에 놓인 타이머를 누른 뒤 연주 시간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았다. 이때 관객은 기침하기도 하고, 옆 사람과 속삭이기도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 모든 소리가 ‘4분 33초’ 동안의 음악이 되었다. 동시에 강의실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볼펜을 내려놓는 소리, 공책을 넘기는 소리,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연주를 감상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감각에 집중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연주자가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은 환경의 소리를 발견하게 한다. 특히 연주할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낼 테니 감상자들은 <4분 33초>가 어떤 곡이 될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이 ‘불확실한 우연’이 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창작하기 위해 음을 선택하지 않고, 그 대신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음을 선택하는 임의성과 우연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음악이 ‘우연성 음악’ 혹은 ‘불확정성 음악’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서구의 전통적 음악 기준과 단절하고 침묵과 여백이라는 새로운 음을 창조하는 실험을 계속하였다. 서양 음악 전통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연성의 음악은 작품의 기본적인 취지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합리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미완성의 작품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합리적인 완성도를 떠나서 어쩌면 존 케이지가 선사한 건 <4분 33초>라는 곡 자체가 아니라 침묵의 시간에 몰입하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여백의 경험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서 일상 속의 하모니는 음악이 되고, 삶의 우연성은 예술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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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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