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느냐 존재하느냐, 그 고뇌에 대한 짧은 사견 [사람]

글 입력 2019.09.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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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시 마주한, 나의 웃음 포인트



퇴근 후, 언제나 그랬듯이 침대에 누워 유투브를 보고 있었다. 이 영상 저 영상 마음 가는 데로 멍하니 보고 있는데 십 년도 더 지난 무한도전 영상이 추천 목록에 떠 있었다. 인기가 많았지만 오래되어 찾기 힘든 예능 및 드라마를 방송국에서 자신들 유투브 계정에 올리는 게 요즘 추세라더니, 하면서 화면을 무심히 터치하던 찰나, 십 년도 더 되었지만 내 마음속 상위를 차지하는 에피소드, 그것도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만큼 손끝에 힘을 실어 재빠르게 화면을 터치했다.


영상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영어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방영분 중 일부였다. 영어 마을에서 멤버들은 각자 영어 이름도 지어보고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도 가지는데 그 후 영어 연극을 하는 부분이 5분 가량의 영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연극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각자 다른 극을 선보이는데 다른 팀의 멤버가 한국어 대사를 말하면 바로 무대 위에서 대사를 영어로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유재석과 박명수, 그리고 하하가 한 팀으로 맡은 연극은 "이수일과 심순애". 가난한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젊은 연인이 부잣집 남자 김중배가 심순애에게 구애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이야기이다.


김중배가 심순애에게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길 강요하고 심순애는 이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무대에서는 조금, 때로는 많이 엉터리인 영어와 콩글리시가 난무했다. 이윽고 박명수, 아니 김중배는 웬만한 열쇠고리보다 더 큰 반지를 드라마틱 하게 꺼내며 의기양양해했고 하하, 아니 심순애는 반지를 본 후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때, 심순애의 깊은 내적 갈등이 담긴 독백을 옆에서 읊는다. "사랑을 따르자니 수일에게는 황금이 없고, 돈을 따르자니 김중배에게는 애정이 없다." 아, 이 대사를 영어로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하하, 아니 심순애가 말한 영어 대사는 십 년이 더 흐른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활짝 웃게 하는 나만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가 되었다.


"To be or not to be, is your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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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3일 방영했던 무한도전 "영어 마을" 편




사느냐, 죽느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사느냐, 죽느냐는 당신의 문제입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의 독백을 인용하다니.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사실 영어에서 be 동사가 “존재”의 의미도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나의 연인으로서 존재하려 하느냐 아닌가 여부는 당신의 문제지 나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십여 년 전에 그저 재밌다고만 여겼던 장면은 다시 보니 꽤나 순발력 있는 외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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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개봉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너무나 유명한 이 문장은 동생에 의해 독살당하고 왕좌와 아내를 빼앗겨 유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와 복수를 부탁하는 아버지를 만난 후, 진정 복수를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햄릿이 독백을 시작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번역이 오역이다 또는 초월 번역이라는 논란은 계속 이어져 왔다.

 

햄릿의 다른 국내 번역본에서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존재냐 비존재냐, 그것이 문제다”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것과 다른 번역을 시도한 경우도 있으며 또 그 번역에 대한 상이한 의견이 자리하고 있다. 리버풀 대학의 필립 에드워드 교수는 햄릿의 이 독백은 자살을 고민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언급했다. 자신이 닥친 상황을 계속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인가에 대한 햄릿의 고뇌가 담겼다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바로 그 것이 문제라고 되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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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마냥 재밌게 보았던 십 년도 넘은 시간이 지난 예능 속 장면을 이렇게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이런저런 해석을 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나는 삶의 지속 여부나 주어진 어려움을 두고 도피하느냐 정도의 중압감은 아니겠지만 내 나름의 “사느냐 죽느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를 되뇌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햄릿이 감내해야 했던 정도의 시련이 나에게 닥칠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내가 일상의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어려움과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한탄하듯이 그 유명한 독백을 읊조릴 것이다.


그런 순간에 나는 내 자신이 “그건 너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야!” 하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지만 꽤 괜찮았던 초월 번역의 장면을 떠올리며 마음 한편에 살짝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출 수 있기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행운도 만나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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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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