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훼손된 인간성에 대하여 - "인간실격" [도서]

글 입력 2019.09.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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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매년 여러 분야, 여러 국가의 출판사들이 각자의 특색있는 부스를 설치하여 코엑스 A, B 홀을 가득 메우게 된다. 점자도서부터 해서 요리책, 학습지, 동화 등 다양한 도서들이 전시돼있으며 곳곳에 마련된 무대에는 책과 관련된 유명인을 초청해 강연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은 민음사, 문학동네 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 출판사들의 부스이다. 이들의 부스는 규모도 크거니와 독특한 구조 때문에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크기변환]민음사 부스.jpg
 

가장 충격적인 것은 민음사의 부스였는데, 소설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떼어내 천장에 붙인 모습으로 부스를 꾸몄다. (문학동네는 아직 시중에 출간되지 않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한정판 디자인을 전시하며 눈길을 끌었으나 민음사의 창의력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부스의 관람객들은 한 소설의 책장들 아래로 걸어다니며 거대하게 인쇄된 소설의 내용을 읽을 수도 있고, 거대한 책장 아래서 민음사의 다른 책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관객들의 머리 위를 수놓고 있던 소설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올해 민음사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민음사의 컨셉으로 잡은 책이 바로 『인간실격』이었던 것이다. 한 해의 반이 지난 시점에 출판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민음사가 선택한 작품, 『인간실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자살의 의미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지만, 인간의 가식적인 면들을 접하며 인간의 내면에 대해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거처를 옮겨 가정의 구속에서 멀어지면서 요조는 일탈을 시작한다. 요조는 화실을 다니다가 호리키라는 친구를 만나 본격적으로 술과 담배, 매춘, 좌익활동 등을 일삼기 시작한다. 요조는 카페의 여급 쓰네코와 사귀게 되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은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쓰네코만 사망하고 요조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인간실격』에 나타나는 자살 모티프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는 실제로 5번의 자살시도 끝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연인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 살아남은 이야기 역시 작가가 카페 호스티스와 함꼐 자살을 시도한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연인의 불륜에 인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사망에 이르게 된 것 역시 당시 동거하던 여성과 자살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작품 내에서 자살이 의미하는 것, 작가가 자살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궁금해진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상황은 삶과 인간성의 충돌이다. 요조가 온전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대인관계와 지속적인 금전적 수입이 유지돼야하는데, 두 가지 모두 세상의 가식적인 면과 타협을 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두려운 공간이고 요조는 도전정신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이어왔다. 결국 요조는 세계의 무게에 서서히 눌릴 수밖에 없고, 세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지만 요조는 세상의 가식과 타협할 줄 모르는 인간이고, 그래서 요조의 인간성은 스스로를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삶과 요조의 인간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요조는 자살을 통해 삶을 포기하면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유지하길 선택하는 것이다.

일본의 근현대 문학작품들에서 자살 모티프는 흔히 관찰할 수 있는 모티프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영향을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도 인물들의 자살이 흔하게 나타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인물들의 자살이 흔히 나타나며, 공통적으로 너무 순수한 인물들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인의 작품에서 자살이라는 행위에 대해 의미있는 평가를 내린다.


스구히코 삼촌은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어.” 마사히코가 말했다. “그만한 용기도 실행력도 없었지. 하지만 그뒤에 면도칼을 갈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나름의 매듭을 지을 수 있었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삼촌이 결코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삼촌에게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中


스구히코 삼촌가 상관의 명령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처럼, 요조는 세상의 요구를 이겨낼 수 없었다. 물론 『기사단장 죽이기』에 나오는 스구히코 삼촌에 비해 요조는 더 나약한 인물일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요조는 혼자 자살할 용기조차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하였다. 이 작품에서 요조가 자살을 시도하는 이 장면은 나약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인간성을 지켜가는 방식을 보여주어 『인간실격』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들어 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2. 세상에 대한 인식 변화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작품의 후반부 호리키와의 대화에서 요조는 흥미로운 발상을 해낸다. 호리키가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려는 근거로 ‘세상’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요조는 도대체 세상의 실체가 뭐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요조는 줄곧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았고 일탈을 하면서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이 장면을 기점으로 요조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역시 행동이나 선택의 잣대로써 세상이라는 기준을 종종 도입한다. 취업시장에 등장하는 스펙이라는 기준은 그 인력시장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잣대일 것이고, 대학교 새내기에게는 ‘학점, 동아리 연애’가 성공적인 대학생활의 기준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생활한다고 해서 (스스로 그러한 가치를 내장시켜 그러한 것들을 최고의 가치라고 믿으며 살아가지 않는 이상)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이렇게 사는 게 그래서 도대체 (내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좋은 건지 생각해보려고하면 그 대상은 정말로 없다. 내 친구가 좋아할 것도 아니고, 내 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성적도 좋고 동아리 활동도 잘하고 남자친구도 있어요~~ 자랑하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좋아할 것도 아닐 것이다. 반대로 세상의 기준에 내가 부합하지 못한다는 걸 누군가가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24시간 쫓아다니며 본인이 나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위 인용된 『인간실격』의 한 부분에서 표현하고 있듯, 세상이 나를 싫어한다는 말은 실체가 없으며 다만 어떠한 개인 혹은 집단이 나를 싫어한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할 뿐이다. 이런 인식이 가치있는 것은, 내가 상대해야하는 대상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실제로 대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개인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에게 “세상은 용납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때, “네가 날 용납하지 못하는 거겠지”라고 받아칠 수 있게 된다. 세상은 어디서나 나를 덮칠 수 있는 거대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의 개인이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그를 굳이 상대하지 않고 나를 용납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가면 되는 것이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요조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경제력은 부족하고 행실 역시 방탕해진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행적의 윤리성, 도덕성을 떼어놓고 보았을 때,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세상 속의 요조는 엉망인 모습이지만, 적어도 세상을 의식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 역시 자신의 의지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작품은 끝까지 암울하며 슬프고 요조는 끝까지 실격된 인간으로서 남지만, 적어도 실격된 자신의 삶을 자신이 끌고가고 있기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사실 인간 사회에 두려움을 품고 있으며, 타인 앞에서 스스로를 익살스럽게 꾸며내는 사람은 단지 요조만이 아니며, 많은 독자들이 『인간실격』을 읽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렸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민음사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인간실격』을 가져와 전시한 것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요조化되고 있는 현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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