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음에 다시 만나, 푸 - 안녕, 푸 展

너를 만나 반가워, 푸展
글 입력 2019.09.09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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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마지막 날, 쨍한 햇빛이 있는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별로 없는 정거장에서 내려 소풍 나온 사람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매표소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푸에 대해 설명하는 누군가의 설명을 스쳐 들었다. “푸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예요”. 푸가 파란색을 좋다고 했던가, 푸의 노오란색과 빨간 티셔츠를 생각하며 노란 매표로소로 향했다. 매표소 근처에는 노란 바나나 우유로 장난치는 아이들로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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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받고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입장객을 반기는 푸와 친구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우산과 파란 풍선이 둥실 떠있었다. 보기 드문 원색으로 가득한 입구였다. 찾아보니 지나가던 누군가의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푸와 파란색은 제법 잘 어울렸다.


우리가 아는 푸는 디즈니에서 나왔지만 푸는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동화책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When We Were Very Young’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로빈은 밀른의 아들이고, 푸와 친구들은 로빈이 가지고 있는 인형들이다.


푸의 집과 피글렛의 집, 벌이 있는 나무와 모험을 떠나게 되는 북극까지 어린 아이의 상상 속 같은 장소들은 실제로 로빈이 놀던 곳을 바탕으로 밀른과 쉐퍼드가 섬세하게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이렇게 실제에 기반한 동화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상상은 다른 것보다 쉽게 공감을 이끌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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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벽면 가득한 푸 관련 물품들이었다. 1930년대 테디토이 컴퍼니에서 제작한 인형부터 악보, 스핀오프, 디즈니, 최근의 캐스키드슨 콜라보까지 푸의 역사를 아기자기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다음 전시 공간은 보다 푸 다웠다. 하얀색과 하늘색의 줄무늬 벽지와 빨간 커튼, 그리고 작은 침대는 로빈의 방을 연상케 했다. 그곳에서 작품은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밝은 색감에 생기가 느껴지는 빨간색 때문인지, 로빈의 방을 구경하는 듯한 구조 때문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전시실이 푸에 대한 하나의 문화공간 같았다. 따로 포토스팟이 있지만, 관람객은 원하는 푸의 모먼트와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전시’의 성격은 약했지만, 푸가 주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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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푸를 만나는 동시에 푸처럼 행동해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체험 공간을 두었다. 나무통 안에 들어가면 벌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오르고 나면 미끄럼틀 같은 경사진 내리막이 나왔다. 부모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은 작은 문에 들어갔다 나오며 꺄르르 웃었다.

이야기 속의 푸, 평면에 갇힌 푸가 아니었다. 푸가 친구들과 어떻게 막대기 놀이를 했을지, 피글렛이 자기 보다 한참 큰 문을 어떻게 드나들었을지, 높은 곳에 달린 벌집 근처의 벌이 윙윙대는 소리를 듣는 나무 밑의 푸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로빈과 푸와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춘 구성이었다. 전시장에 발을 깊이 들일수록 관람객, 제3자의 위치에서 간접 체험을 하는 위치로 바뀌어나갔다.


곰돌이 푸: 항상 친구들을 배려하는 곰돌이
크리스토퍼 로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제일 좋아하는 소년
피글렛: 소심하고 겁 많은 돼지
이요르: 항상 우울한 나귀
티거: 자신감 충만한 말썽쟁이 호랑이
아울: 허세 뒤에 무지함을 숨기고 있는 부엉이
캉가: ‘루’가 걱정인 엄마 캉가루
래빗: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동대장 토끼
: 호기심 많은 아기 캉가루


전시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관람객이 푸와 친구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탓에 등장인물 소개가 늦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일수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터라, 구성에 아쉬움을 느꼈다.

푸의 배경과 설정 소개와 함께 캐릭터 소개를 했더라면 전시 초반에 푸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가지고 그 위에 감상을 쌓아올렸을텐데, 캐릭터 소개가 뒤늦게 등장하니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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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전시에서 제일 의미있다고 생각한 섹션은 푸의 삽화가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를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밀른의 글을 삽화로 표현하고, 인물에 생기를 부여하고, 분위기와 날씨를 그려내는 방법 등을 소개했다.

푸의 탄생비화보다 푸가 어떻게 그려졌는 지가 궁금하였기에 나는 여기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체험공간이 없고 글이 많기 때문인지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는데 나는 여기서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설정들이 시각적으로 재탄생하게 된 과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특히 문자로 존재하던 푸가 그림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과 소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푸의 인쇄과정 및 커버 디자인의 탄색 과정까지 알게 되니 푸 삽화에 대한 전체적인 과정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푸가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사랑받아 왔는지, 다양한 커버의 책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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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어른에게는 다소 심심한 맛이었다. 어른의 마음으로 굿즈에 월급을 탕진하려 했는데 전시가 건전해서 의지를 잃었다. 디즈니의 푸가 아닌 원작에 집중한 만큼 얼마 전 DDP에서 있었던 디즈니처럼 관람객의 지갑을 털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동심을 이상하게 채우려고 한 것 같아 짧게나마 반성했다.

 

내가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맛’음료에는 향이 아닌 원물이 들어가야 한다. 어릴 적 자극적인 맛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요즘의 맛들은 건강한 맛을 낸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푸는 바나나맛 우유 같았다.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바나나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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