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다. 다락방 미술관 [도서]

생애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장
글 입력 2019.09.0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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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다. 생애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적어도 <다락방 미술관> 안에서의 예술가들은 행복한 말로를 보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대다수는 죽은 뒤에야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았다. 그토록 갈구하고 염원했던, 자신의 작품을 '뒤늦게서야' 인정받았다는 데서 위안 삼아야 하나? 몇십에서 몇백 년 지난 우리가 찬양할 테니 안심하고 푹 주무시라고? 예술가와 예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도서였다.

우리는 종종 예술가를 들어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하곤 한다. 저렇게 위대했고 찬란한 예술가들도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은 경우는 손에 꼽는다고. 물론 그 인정이라는 것도 우리가 재단하는 거며, 당시 화가가 자신의 예술에 만족했다면 거기서 우리는 왈가왈부하는 게 매우 의미 없다. 그래도 인간은 재단하기 참 좋아하고 이미 행복이라는 비가시적인 가치도 수치화해버리는 작태에서, 그 무의미한 논쟁은 끝이 없을 테다.

가장 안타까운 건 우리는 그들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감탄하며 찬양하는데 그들은 그런 우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붓질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고 울리게 했는지, 얼마만큼의 예술적 가치를 지녔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후대의 사람들이 떠들고 추앙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사실 그렇게 된 건, 예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 탓이 크다. 일단 예술은 기본적으로 유력계층만이 향유하는 분야다. 인류사 전반에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직전까지 지식을 배운다는 것 자체는 평민에게 허락된 분야가 아니었다. 게다가 예술은 극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문화였다.

지식인층에서도 미술을 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 당연하다. 미술재료는 당시에 매우 값비쌌고 작품에 온전히 헌신하면서 다른 생업에 종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가문의 후원을 받거나 작품을 팔아 미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본래 꽤 부유했거나. 후자 말고는 타인의 인정은 예술가들에게 필수였던 셈이다.

당연히 그 인정도 상류층한테 받아야 했다. 타인을 평가하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당시 누가 그들을 평가하고 인정하겠는가? 미술에 해박하면서, 영향력을 지닌 상류층이다. 바꿔 말하면 기득권층, 무척이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그들에게 인정받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게다가 화가 고유의 화풍만 죽 주장한다면 인정받기 어려웠을 테다.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사조에 편승하거나 그 흐름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정받아 격찬 받는 화가로 오르는 길은 그냥 산 넘어 산이었을 듯.

현대에서도 그런 경향이 남아있는데 그때에는 얼마나 심했을까? 물론 현대에는 과거보다는 훨씬 그런 느낌이 덜하지만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당장 예술은 어렵고 심오한 거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당연히 진입장벽이 크게 느껴지고.

다락방 미술관이 책 소개 저자의 말부터 날 관통했던 이유다. 비전공자지만 미술의 매력을 흠뻑 빠진 나다. 그림은 소수 지식인이나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가슴 뛰었다. 작가도 비전공자인 점에 심히 공감 갔다. 큐비즘, 야수파, 인상주의, 리얼리즘과 같은 아리송한 단어 없이 재미있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그림 이야기, 사람 냄새가 나는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다락방 미술관>이라는 내게 훌쩍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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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은 27명의 작가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2부에서는 근대미술, 3부에서는 현대미술, 4부에서는 독창적인 기법의 현대미술을 다룬다. 구성은 대표작 묘사 이후 작가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한 작가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미술관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깔끔했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매모호하고 어려운 말없이 풀어쓴 느낌이다. 한 번에 죽 읽을 수 있었다. 작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실었고 성공했다. 27명의 화가가 각각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이었다. 화가의 인생을 중심으로, 기법이나 화풍 같은 걸 장황하게 떠들지 않고 화가와 대표작 딱 간결하게 강조했다.

여기서 제목이 더 와닿았다. 다락방을 찾아보듯, 내가 몰랐던 작가들을 들려줬다. 골동품점에서 찾은 값진 보물 같았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있었을까? 작가 문하연은 구태여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들의 작품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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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나혜석이었다. 나혜석은 여권에 대해, 특히 정조에 대해 의문을 품고 분노했던 화가다. 정조란 그저 취미라며, 남성은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왜 여성에게만 요구하는지 그시대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여성은 인형이 아니라고, 여성도 사람이라고 울부짖었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세상에 전면 승부했다.

그는 "남자는 칼자루를 쥔 셈이요, 여자는 칼날을 쥔 셈이니 남자 하는 데 따라 여자에게만 상처를 줄 뿐이지. 고약한 제도야."(256p)라고 말했다. 당시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만나도 그게 이상할 게 없이 오히려 호탕하고 능력 있는 남자 취급을 받았을 때, 나혜석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최린과 사랑에 빠졌고 세상에 조롱당했다. 사랑했지만 최린은 자신에게 해가 될까 나혜석을 밀어냈고 남편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이혼 전부터 다른 여자와 동거했다. 추락하는 혜석과 달리, 세상은 둘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다.

이는 불륜이며 지탄받아야 할 문제가 맞다. 그러나 당시 남자는 왜 첩을 두는 게 이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능력 있는 남자 취급을 받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왜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고 무거운 책임을 얹느냐의 문제다. 나혜석은 일찍이 깨닫고 모순을 꼬집고 외쳤다.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울부짖었으나 오히려 칼날에 살점이 베여 뚝뚝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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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자화상>


그래서, 나혜석의 그림에는 칼날과 울부짖음이 담겨있다. 그녀의 생애를 읽고 그림이 다시 보였다. 야수파적인 표현주의 기법이 구사된 <자화상>. 공허한 눈동자, 우울한 표정, 광대 아래로 흐르는 어두운 그림자(249p). 야수파 특유의 거칠고 굵은 필촉은 대담하고 억척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자화상"을 야수파 표현주의 기법을 구사해 그렸다는 점에서 그 내면의 야수같이 거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추측해본다. 여성으로 획정 지어진 게 아니라 인간 본래의 모습, 결국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면의 욕구가 표현된 것이라 여기면 비약일까?

그는 말로써 시와 소설로써, 그림으로써 세상에 일갈했지만 결국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사회적 냉대에 지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미술 아카데미와 전시에 실패한다. 와중에 열두 살 큰아들이 폐렴에 걸려 사망하고 화실에 불이 나 그림도 거의 소실된다.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파킨슨병에 심한 수전증까지 와,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김우영과 최린이 친일로 호의호식하고 있을 때, 요양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관보에 무연고 시신을 찾아가라는 광고가 실렸다. 그 나이 53세였다. (262p)


*


27개의 생과 탁월한 작품은 날 울렸다. 작품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특히 서글펐다. 인생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다고 호기롭게 써내렸지만, 그 이면에는 찬란한 유산을 남겨준 예술가들이 좀 더 행복한 말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예술가들은 영혼 한 조각씩 떼서 작품을 만든다고 하는데 작품 앞에 마주 서서 공감한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닿지 않겠느냐,라고 던지는 궤변도 가끔 낭만 있지 않을까?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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