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 다락방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19.09.02 06: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예술가들의 사생활은 많은 이에게 있어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공적 영역에서 감정이나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직업이라서 그런지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적 배경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고 관심이 가게 된다. 혹은 시대를 가로질러 온 천재들과의 공통점을 찾아 보다 사적으로라도 친밀하게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발적으로 세상과 오롯이 구분 지어진 그들에게 건네는 공감 섞인 위로일지도.

그러다 보니 미술관에서는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인생사를 전시에 켜켜이 꼽아놓아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전시의 맥락을 잡아주는 도구로 기능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작가의 삶은 전시를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궁금해졌다. 작가의 작품이 아닌 삶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없을까. 평생 예술에 몸을 담고 본인이 예술이 되길 자처한 사람들의 발자취라면 그 자체도 충분히 예술이라 이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519-다락방 미술관_표지입체(대).jpg
 

문하연 저의 《다락방 미술관》은 미술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스물여덟 명의 예술가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 다락방과 미술관, 언뜻 들으면 상반된 느낌의 공간이다. 정교하게 조작된 온습도와 밝기로 최대한 쾌적하게 조성된 미술관과 달리 다락방은 왠지 어두침침하고 공기도 잘 안 통할 것 같은 갇힌 공간의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더욱 가까운 친구와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은 위인처럼 기록된 예술가들을 순식간에 독자의 친구로 만들어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은 삶의 소통이 이뤄지는 다락방으로 초대한다.

이 책은 15세기~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부터 시작해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사조 순으로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위대한 작품들의 백스테이지를 비춘다. 이들이 속한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약동하는 삶들은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이고 친근하다. 다양한 사조, 또 그 안에서도 다양한 표현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작품세계는 하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적이지만 그들을 사람으로서 일대일로 대면하는 책의 접근 방식은 단단히 세워져 있던 마음의 벽을 허문다.
 

KakaoTalk_20190902_054941452.jpg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마주한 전후의 차이를 기록하고 싶어 원래 알고 있던 예술가의 경우에 그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메모했다. 사진 속 메모는 렘브란트의 삶을 알기 전 적은 것이다. 보다시피 그의 미술사적 업적이 내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빛의 화가’인 그의 삶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과 가난으로 어둠 속에 침잠해야 했던 과정을 마주한 후엔, 마지막 자화상에서 어둠으로부터 겨우 꺼내진 그의 형상이 처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 렘브란트라는 작가는 빛의 화가가 아닌, 오히려 어둠에서 빛을 꺼낸 어둠의 화가로 기억될 것 같다.

책에서 소개된 또 하나의 작가인 케테 슈미트 콜비츠는 학교에서 중국의 미술사를 배울 때 처음 접했던 화가이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쟁 장면 등을 주제로 삼으며 사회적 전선에서 싸우는 서민들을 대변한 그의 판화는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배운 바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 적은 메모 역시 그의 업적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 렘브란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전쟁> 시리즈가 아들의 전사 이후 고귀한 희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임을 알게 된 이후, 이전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이 그림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치도 막지 못한 그의 강인한 묘사의 원동력을 알고 나니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더욱 강렬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Pimg73300613325722.jpg
케테 슈미트 콜비츠 <전쟁>


이처럼 미술사적 업적이나 대표작만을 알고 있다가 책을 통해 작가의 삶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사생활이 유명한 작가를 다룬 부분에서도 이전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새로 갖게 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예술가들의 민낯을 마주할 때마저도 어느 정도 기대되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고흐가 거듭되는 불행 속에서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죽어서야 인정받는 비극의 아이콘으로, 피카소가 기존의 화법과 유리된 조각조각 날카로운 그림만을 그리는 괴짜의 이미지로 떠올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틀린 사실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평면적이다. 책은 고흐의 사랑과 이별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했다는 자극적인 결과로만 알려진 그의 심리적 불안의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다. 또한 피카소의 입체적 그림이 기존의 화법을 무시한 것이 아닌 그것을 모두 섭렵한 끝에 일궈진 결과물이라는 사실도, 생전 처음 보는 피카소의 고전적인 종교화와 함께 알 수 있었다.

피카소가 사회에 가졌던 관심에 관해 기술한 부분에서는 그를 세상과 유리된 괴짜로만 표현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Collections-permanentes-du-Musee-dIxelles-Claude-Marchal-Brussels-2017.jpg


이들의 이야기에는 깔끔한 해피엔딩도, 통쾌한 권선징악도, 흥미로운 복선과 반전도 없다. 딱 떨어지는 것 없이 뒤죽박죽 엉켜 이리저리 뒤틀리는 그들의 인생은 보기에 썩 유쾌하지 않고 그래서 마음 깊이 와닿는다. 보통의 인생이 그렇기 때문이다. 보통의 날들을 보통 사람들처럼 힘겹게 끌어갔을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간 후 그 끝에 맺힌 작품을 보면, 큰 획이 하나 더 새겨진 그림을 보는 듯한 새로움이 느껴진다.


“인간이, 또 삶이 진정 위대해지는 지점, 그 순간을 목도하는 일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 되었다.”

- 프롤로그 중


각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면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거나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하나씩 소개된다. 홀연히 와서 치열하게 살다 간 이들의 작품이 오래도록 새겨지고 있는 곳을 보고 있으면 뭉클해진다. 그곳에서 그들의 위대함을 올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갤 끄덕일 수 있는 다락방을 들리는 것도 좋겠다. 그곳에서는 캔버스가 아닌 삶에 새긴 획을 긋고 또 쓸어내리며 또 다른 그림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전문필진.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