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무지함에 대한 단상 [사람]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마주함
글 입력 2019.08.3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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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에 대해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 내 글쓰기의 주된 계기는 이것이었다. 도무지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나의 언어로 소화하고 싶다는 마음에 글을 썼다. 그러고는 낙담했다.


나의 글을 읽고 그 내용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그들의 관심과 애정에 기대어 글을 계속 써나가도 될 것이라는 아주 옅은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이내 강렬한 부끄러움이 찾아온다.


뭔가를 시작하는 단계에 선 사람은 꽤 자주, 어쩌면 너무 자주 부끄럽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익숙지 않은 무언가를 해나가면서 느끼는 자신의 미숙함과 무지함이 잘못인 것 같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탓하기에 이른다.


부끄러움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까지는부끄러워해야 하고, 어디까지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 기준은 자주 외부를 향한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보다 잘 알지 못한다면, 자신 있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누군가만큼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인 것 같이 느껴진다. 잘 알지 못한 채 말하고, 쓰는 자신이 견디기 어려워진다.


실은 무지 자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모르는 것이 있고,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면, 혹은 보고도 방치하거나 부정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부끄러움의 기준은 내 안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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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함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성장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매 순간의 초라함을 견뎌내느냐, 견뎌내지 못하느냐에 따라 변화의 폭이 달라질 것임을 안다. 내 손에 쥘 수 없는 거대한 세계를 앞에 두고 조급해하지 않을 때 한 발 앞으로 갈 수 있음을 안다.


길고 긴 탐구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턱에 자리한 초라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진흙탕을 밟아야 통과할 수 있는 관문 앞에서 깨끗한 발을 한 채 계속해서 때를 기다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 '때'를 기다리며 내 옆으로 지나가는 시간들을 가만히 떠나보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의 무지함을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넘어설수 없는 시간적 한계와 더없이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 사이를 오가며,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 누구도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


언제쯤이면 아주 조금의 확신을 손에 쥔 채 무언가를 마주하고, 읽어내고,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계속되는 고민과 나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두고 우선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흙탕물을 튀겨가며 발걸음을 옮겨 보고자 한다.

  


... 그러나 더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다.


온갖 것을 다 자기에게로 불러 가는 저 바다가 나를 부른다. 이제 나는 배에 올라야 한다.


머물러 있다는 것, 그것은 비록 밤새도록 시간이 타오를지라도 곧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고, 굳어 버리는 것이며, 틀에 묶이는 것이므로.


- 칼릴 지브란 시집 『예언자』에 수록된 시 <배가 오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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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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