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의 예술축제 "2019 프린지 페스티벌"

글 입력 2019.08.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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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문화비축기지에 들렸다. 바로 이곳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


프린지 페스티벌. 자유로운 문화의 거리 홍대에서 시작됐지만 긴 시간을 지나 월드컵 경기장을 거쳐 결국 이곳까지 당도했다. 서울의 기나긴 역사가 집약된 장소에서 열리는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성인이 되면 꼭 구경해봐야지 했던 페스티벌에 드디어 왔다. 그래서 더 두근거렸다.

일정표를 보니 세시부터 시작해 밤 열시까지 하루 종일 기지 곳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대기중. 남녀노소 편히 즐길 수 있는 마술쇼뿐 아니라 독특한 주제의 일인극, 실험적인 구성의 현대 무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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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주변의 부스에서 발견한 굿즈. 말만 예술 축제가 아닌지 옷이나 가방 같은 잡화류부터 뱃지나 키링 같은 악세사리까지 모든 굿즈가 예뻤다. 아마 알기론 포스터 작업 등 디자인에 신신이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멋있다.

기지 곳곳에는 편히 앉고 누워 쉴 만한 나무 그늘이 있었다. 조그만 그늘 아래 캠핑 체어를 펴고 오늘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살펴봤다. 프로그램 북에 동선과 시간대를 꼼꼼히 체크하며 보고싶은 공연을 곱씹으니 벌써부터 축제를 절반은 즐긴 것 같다.

그리고 묵직한 캠핑 체어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두고 왔어야 했는데. 가이드 북에 앉을 만한 의자나 방석을 들고 다니면 좋다고 써있어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건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충분히 의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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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관람한 공연은 이한솔님의 <아기라는 생명체>. 일인극으로 진행된 공연은 무려 주인공이 진짜 아기였다. 배우님의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가였는데, 연극 내내 어찌나 사랑스럽게 웃던지.

연극은 인간이 멸종한 가상의 미래 세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오직 로봇만이 사는 세계이기에 아기라는 생명체는 더욱 희귀한 것.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한 로봇에게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고, 그 아이는 로봇이 한번도 보지 못한 순수한 매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엄마가 어디있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계속 움직였던 아가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존재 자체로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다. 연극에는 숨겨진 상징성과 반전의 결말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뛰어 넘어 내 마음에 새겨진건 바로 그 하나였다. 말 그대로, 아기라는 생명체. 아기라는 생명체의 사랑스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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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연까지 잠시 시간이 비어 주변을 거닐다 발견한 프린지살롱. 다양한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일반 결제 방식이 아닌 프린지 후원쿠폰을 통해 구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만원을 충전하고 해가 저물때까지 쭉 사용했다. 생각보다 해가 뜨거워서 시원한 달다구리 음료와 맛있는 샌드위치같은 것들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쿠폰이 하나 남길래 스티커를 구매했다. 무려 2016년자 스티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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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마주한 매직서커스. 앵무새와 교감하고 불막대로 마구 저글링을 한다. 이어지는 아찔한 상황에 움찔움찔 놀라면서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클래식은 영원한 법이다. 길가던 모든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서커스 무대는 원초적인 짜릿함과 즐거움을 안겨줬다. 가족과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발을 구르는데, 그 장면만 봐도 기분이 좋을 정도로 전염성 높은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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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사실 기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저녁 즈음 볼만한 공연은 다 보고 이제 집에 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왠걸. 하루종일 기지를 싸돌아다닌 두 다리는 평소에는 아프다고 찡찡대더니 오늘만큼은 아주 튼튼하게 잘 움직였다. 어딜 가든 마음을 울리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넘쳐 흘렀고 이는 몸을 가득 채운 에너지가 되어 날 더 신나게 만든 것인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짠 하고 나타난다. 한적한 문화비축기지에서 겪은 마법같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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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모든 공연중에 제일 인상깊었던, 샥티댄스무브먼트의 공연. 유명한 힌두 대서사시 속 여주인공 시타의 관점에서 신화를 비틀어낸 독특한 공연이었다. 여성과 사회 소수자의 이야기를 춤으로 재해석해서 보여준 것이다.

사람의 선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오랜만에 깨달았다. 손짓 하나, 발짓 하나가 그리는 선이 너무도 고왔다. 유연하게 물결치는 듯한 마법같은 인체의 움직임. 시험받고 죽음을 맞이했으나 당당하게 부활하여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타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내적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모습이 가히 경이롭기까지 했다.

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소리와 그 가운데 바람처럼 움직이는 무용가들의 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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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무용을 감상하고 나오니 바로 앞 무대에서 펼쳐진 <보라언니의 기분좋아지는 라디오>로 감성을 돋우고, 흥겨운 팝재즈를 연주하는 윤익형과 이루예주 팀의 공연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특히 윤익형과 이루예주 팀은 정말 마지막을 풍성하게 장식해줬다. 귀에 익숙한 여러 동요부터 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신나는 재즈 사운드로 소화한 이들은, 그들만의 비글미에 넘치는 에너지를 얹어 사랑스러운 오늘의 폐막을 이끌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등지고 기지의 언덕을 내려오면서 프린지의 하루를 곱씹었다. 예술은 팔 닿는 거리에 있었고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모두가 예술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근질거렸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다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잘하든 아니든, 인정받든 아니든 그런 외부의 잣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것, 내 소중한 무언가, 때로는 본인의 삶 그 자체를 나누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며, 세상에 외치길 원했다.


예술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버린 행사. 내겐 그게 바로 프린지 페스티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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