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잃어가는 동안 얻는 것에 대해 - 프린지페스티벌 [공연]

독립예술, 어렵다
글 입력 2019.08.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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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경기장에서 문화비축기지로



2019 프린지 페스티벌이 개최된 장소는 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는 마포 문화비축기지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며, 석유를 보관할 장소의 필요성을 느꼈던 한국은 5년 뒤인 1978년 매봉산 인근에 석유비축기지를 세우게 되었다. 아파트 5층 높이의 탱크 5개가 들어서, 당시 서울 시민들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했다. 그러나 이후 2002년에 한일 월드컵 개최를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며, 인근 500m 이내에 있는 석유비축기지가 위험시설로 분류되었고, 곧 시설을 폐쇄하게 된다. 그리고 무려 41년간 1급 보안시설로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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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을 통해 폐쇄된 석유비축기지는 문화비축기지로 탈바꿈했고,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석유를 비축해두었던 T1, T2와 같은 군사적 용어를 가졌던 장소는 각각의 개성을 가진 문화 공간이 되었고, 각 장소의 부품을 떼어내어 새롭게 T6인 커뮤니티 센터도 생겼다. 내부의 투명한 모습을 간직한 T1은 파빌리온, 외부와 연계된 T2는 야외공연이 이루어지는 공연장, 탱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T3는 탱크 원형, 그 옆에 있는 T4는 복합문화공간, T5는 이야기 관으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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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의미보다는 상업과 관광의 의미로 성격이 바뀌어버린 홍대에서 시작된 프린지 페스티벌은 결국 이번 2019년도부터 문화비축기지로 옮겨오게 되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문화비축기지를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아트인사이트의 문화 초대를 받기 전에는 사실 페스티벌이 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디저트 페어나 금손페스티벌 같은 경우, 일정한 날짜에 같은 장소에서 머무르며 구매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이었고, 가수들의 콘서트 같은 경우에는 가수의 무대에 마찬가지로 팬들이 찾아가서 같은 공간에서 변함없이 가수를 지켜보는 측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를 받았던 자라섬의 두 개의 무대에서 원하는 가수의 공연을 선택하며 역동적인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알았고, 이번 프린지페스티벌에서도 6개의 공연장 중 자기가 원하는 공연을 원하는 시간대에 찾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날이라 많은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독립예술을 보여주는 프린지페스티벌의 정신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공원에서/매직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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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T2에서 관람했던 박현우, 이희민 씨의 “공원에서” 매직 서커스는 기본적인 저글링과 앵무새 묘기, 등등 약간은 서투른 점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마저도 의도된 공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준 높은 묘기를 선보였고, 관람객의 호응을 잘 끌어냈다.


 


디탄츠/카더라 _ 유언비어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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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T6에서 진행된 디탄츠의 <카더라>를 관람했다. ‘소문’보다 가볍지만 무시하지는 못할 ‘카더라’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당신일 수도 있음을 알린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공유하지만 그 과정에서 ‘카더라’를 만들어낸다.


말이 들어가는 이야기가 담긴 공연이었다면 어쩌면 좀 더 깊이 공감했을지도 모를 주제 ‘카더라’를 가지고, 김동원, 이다혜 씨는 말 한마디 없는 춤으로 연기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른 사람들은 또 누군가가 잘못 이야기한 자신의 이미지에 상처받고, 화를 어디에도 표출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춤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부감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는 건 정말 힘든 경험이다. 벽을 보고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또 다른 배우는 그 뒤에서 또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이 극적으로 진행되는 공연을 아름답게만, 예술로서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금이야 이렇게 글로 풀어서 해석하지만, 공연을 관람하던 당시에는 저녁으로 먹은 것이 체할 정도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카더라, 라는 소리가 당연히 연상될 수밖에 없는 주제를 소리 없이 구현한다는 것은 정말 대담한 시도이고, 소리 없는 몸짓에서 소문의 괴로움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2 모멘트 / 초코파이 정 - 역동적 동선을 따라간 긴장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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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관람했던 것은 T4에서 진행된 2 모멘트의 초코파이 정 공연이었다. 최전방에서 지뢰를 밟을까 주의 깊게 근무하던 안 병장과 엄 이병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지뢰를 밟아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그저 연극을 사랑하는 직장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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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는 별개로 정말 많은 모기에게 다섯 군데 이상을 물어뜯겼는데, 어쩌면 그런 촉각적인 고통이 함께한다는 것이 초코파이 정 공연의 최전방을 좀 더 실감 나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T4의 공연은 군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람객이 같이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했는데, 덕분에 공연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T4의 공간을 같이 이해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공연이었다.


 


에바 집단 / 별의 조각 - 난해한 퍼포먼스에 대한 솔직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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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T5에서 에바 집단의 별의 조각 공연을 관람했다. 사전 정보 없이 공연만 관람해서 나중에 공연 제목을 찾을 때 한참 걸릴 정도로 난해했던 퍼포먼스였다.


무대는 왼쪽에 해바라기꽃 하나와 어지럽게 놓인 회색 의자 들, 무대 오른쪽 뒤편에 놓인 사다리와 사다리 위에 놓인 의자 하나로 구성된다. 한 남자가 양복에 검은 반바지, 반팔티에 넥타이, 그리고 장화를 신고 등장한다. 땀을 흘릴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니며 의자를 정렬하고, 의자를 돌고, 앉았다가 일어섰다를 반복하다 사다리 앞에 쓰러진다.


얼굴에 베일을 쓰고,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여자가 등장해서 물뿌리개로 해바라기에 물을 주다가, 의자에 다가가 하나씩 물을 주기 시작한다. 쓰러져있던 남자는 물을 맞지 않기 위해 피해 돌아다닌다. 둘은 쫒고 쫒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화해하고 같은 장소를 맴돌다가, 의자를 순서대로 정렬하고 로봇처럼 돌아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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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남자는 감정에 휩쓸리는 인간처럼 보이며, 여자는 다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에 가깝다. 입은 옷의 차이도 남자는 조화롭지 않은 옷이지만, 여자는 회사원의 완벽한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까지 공연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별의 조각 소개문을 보면 내가 본 것이 정말 사실일까 봐 의구심을 갖게 된다. 별의 조각 소개문은 다음과 같다.


“소련의 우주기지에서 한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우주선의 동반자 ‘라이카’는 영리하고 온순한 강아지였다. 우주선이 안정적으로 대기권에 진입하고, 훈련에 지친 ‘라이카’는 답답한 우주선을 탈출하게 되는데…”


솔직하게, 아직도 그 퍼포먼스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 장소와 시간이 일치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본 공연이 별의 조각일 거라 확신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일상에서,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도 쉽게 만나보지 못할 공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프린지 페스티벌, 독립예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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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소 걱정되었던 것은 매번 그러한 열정을 보기 위해 나의 시간을 투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만한 역동성을 가진 퍼포먼스를 본다는 것은 나에게서 에너지를 그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변에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향성보다는 외향성을 가진 사람이라 주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어가지만,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가 있으면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에 극도로 외향적인 사람은 피하는 편이다. 눈앞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볼수록 나는 더 지쳐가게 된다. 얻는 것은 있을지 모르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상당해서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상관없을 관계이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을 관람했던 날 심하게 체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새로운 무언가를 더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안정적인 굴레에만 위치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생각이다. 그 정도로 불안해하며 잃을 만큼 내가 가진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생각하다 보면, 하루의 피로를 참작하고서라도 뭔가를 더 나에게 새로 주입하고 싶어진다. 아마 그래서 늘 시간에 쫒기고, 나에게 쫒기면서도 또 새롭게 쫒길만한 무언가를 자꾸만 찾아 나서는 것 아닐까.


프린지페스티벌은 어쩌면 내가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를 대신 말해주었던 것 같다. 너무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다가왔지만, 결국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힘들어했고, 그러면서도 더 알고 싶었다. 그런 감정들이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던, 산에 사는 모기가 남긴 자국은 오래 간다는 것만큼이나 강렬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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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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