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생의 본능,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공연예술]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글 입력 2019.08.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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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동에 위치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라고. 3년 전,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작품의 초연을 보게 되었다. 필자는 그때 열광했던 관객으로 2018년 재연과 2019년 삼연까지 빠짐없이 챙겨 보았다. 전 회차를 반복적으로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은 아니었지만,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비교적 높은 관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관람했던 또래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초연 이후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을 뿐 아니라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번 세 번째 공연은 티켓 오픈 이틀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기리라. “아니,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이야?”라고. 만약 당신도 죽고 싶지 않다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작품을 원한다면 의심할 여지는 없다. 당장 서울역 뒤편에 자리 잡은 국립극단을 찾아가 보시라. <죽고 싶지 않아>가 죽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2019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공식 트레일러



현실에 기반한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2011년 5월에 문을 연 뒤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주로 청소년 관객층에 대한 연구와 청소년극 제작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곳의 레퍼토리 작품 중 하나가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이다.

사실 청소년들을 객석에 앉히는 일이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하면 유튜브로 모든 걸 찾아볼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관심 분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굳이 극장까지 찾아오는 ‘경험’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연극을 만드는 어른들이 ‘소통’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 그들을 이해하길 원한다면 당장 책상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 눈에 비치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의 정석을 그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결국 탁상공론만을 통해 구현 가능한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립극단의 작업은 신뢰할 수 있다. 작품마다 주제에 부합하는 워크숍을 주최한 뒤, 결과물을 프로그램북에 성실히 실어 왔기 때문이다.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도 2015년 ‘청소년예술가탐색전’에서 진행된 류장현 안무가와 청소년들과의 창작실험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올해도 배우 및 움직임 워크숍, 청소년 인터뷰 등 예술교육 활동의 여정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현실에 기반한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게 피부로 와닿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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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공연 사진



그 자체로 살아있는 너와 나


<죽고 싶지 않아>는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댄스 씨어터 형식의 공연으로, 작품의 주된 언어는 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무용이라기보다는 거침없는 막춤에 가깝다. 막춤이 작품이 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는 류장현 연출의 매력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1명의 배우는 청소년이 되어 끊임없이 생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추는 춤은 진실하다. 그래서일까. 극이 진행될수록 굳어버린 표정과 굳어버린 심장을 건드린다.

작품을 관람하는 내내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예컨대 한 장면 내내 배우는 관절을 꺾으며 속사포처럼 청소년의 뇌 신경과 손의 중요성을 쏟아낸다. 산만하고 부주의한 모습은 판단, 조절, 예측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50%가 사라지기 때문이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단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좀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렵고,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지만 창작 활동에 대한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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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공연 사진


저마다의 복잡한 우주를 품고 있으며 획일적인 기준으로 판단되거나 억압될 수 없다고 외친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학교생활, 혹독한 입시 경쟁까지. 이 모든 것이 부품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우리를 똑같은 어른으로 만드는 건 아닐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등 떠밀리듯 어른 흉내를 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편, 무대 위 배우들이 ‘너’를 외면하면서 등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너’는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에 맞춰서 춤을 춘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춤을 출 때, 곁에 남아있던 또 다른 ‘너’가 박수를 쳐준다.

어쩌면 삶이라는 건 나의 ‘언어’를 지켜봐 줄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은 아닐까. 언젠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음악이 커지고 몸짓이 격렬해질수록 정체 모를 울림이 가슴 깊숙이 퍼져 나갔다.


Did you think I’d crumble
(내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나요?)
Did you think I’d lay down and die
(내가 쓰러져 죽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Oh no, not I
(아니, 난 아니에요)
I will survive
(난 살아 남을 거예요)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사랑하는 법을 아는 한)
I know I’ll stay alive
(내가 살아있을 거란 걸 알아요)
I’ve got all my life to live
(내겐 주어진 삶이 있고)
I’ve got all my love to give
(내겐 나누어줄 사랑이 있어요)
And I’ll survive
(그래서 난 살아남을 거예요)
I will survive
(살아남을 거예요)

– I will Survive, Gloria Gaynor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생의 본능


<죽고 싶지 않아>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무대 위로 관객들이 초대된다는 것이다. 극 중간에 오른쪽 벽면이 열리면, 배우들은 거대한 비석을 들고 객석으로 들어온다. 터질 듯한 음악이 끝날 때까지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다가, 관객들을 한 명씩 이끌고 무대 앞으로 나간다.

필자도 천천히 무대를 밟았다. 벽면에 낙서 된 문구를 보고, 백스테이지를 걸으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윽고 비석이 무대에 가운데에 모이면 관객들은 죽은 사람처럼 누웠다. 그리고 배우들에게 둘러싸여 한차례 제의를 치른다. 그렇게 죽고 싶기만 했던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관객들은 배우들과 어깨동무를 한다. 그렇게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둥글게 돌다가 장면의 끝맺음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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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마당에 놓인 비석들


한편, 초연과 재연을 봤던 관객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아마 궁금해서 직접 검색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커튼콜 장면에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애니메이션 '리오2'의 OST 'Beautiful Creatures'에 맞춰 춤추는 커튼콜 장면은 <죽고 싶지 않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랄발광’의 카타르시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춤을 안 추고는 못 배길만큼 신이 난다.

거의 모든 관객이 무대로 나가 춤을 추는 공연을 본 적이 있는가? 이 공연이 그렇다. 필자도 배우들과 손을 잡고 무대를 뛰어다녔다. 정말 신나게 놀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은 채,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흔들고 손을 쭉 뻗었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계속해서 뛰었다. 살고 싶은 만큼, 살아있고 싶은 만큼 춤을 췄다. 뜨거운 조명 아래서 흠뻑 땀을 내며 생의 에너지를 느낀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철부지 어린아이였을 때의 나로 돌아가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리오2> OST 'Beautiful Creatures'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최근 들어 행복하지 않다고 확신하며 살아왔다. 생활 패턴은 서서히 무너졌고, 해가 뜰 때까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체중은 10킬로 가까이 빠지면서 마땅히 인간이라면 품을 만한 욕구들이 모두 사라졌다. 겉으로는 살아있지만, 산송장과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서 거짓말처럼 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식탁을 잘 차리고 싶었고, 세상을 담아낸 책과 공연을 보고 싶었고,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더욱 보내고 싶었다. 내 안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싶었고, 주의 깊게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가끔은 나 자신을 버리고 내던짐으로써,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나를 드러내놓고 싶었다. 어울릴 법한 스타일을 찾고 싶었고,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공연을 보고 나서 살아 있고 싶었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격렬하게 살아 있고 싶다는 욕망이 찾아왔고, 그들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생의 본능을 일깨웠다. 같이 살아 있자고 말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외쳐본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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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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