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있는 예술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글 입력 2019.08.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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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예술을 하면 예술가 개인의 영역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라기보단 거리를 두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그 예술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즐겼던 모든 콘텐츠에 ‘내’가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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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로 향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올라가는 길에 프로그램 홍보를 하는 인디스트들을 만났다. 날씨만큼이나 밝은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에 나까지 신이 났다. 문화비축기지엔 창이 없어서 안을 볼 수가 없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면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의자를 놓았을까. 아니면 일어서서 보는 걸까?


정답은 바닥에 앉아서 보는 거였다.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로 푹신한 곳에 앉아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스크린 옆에 있는 노트북을 통해 상영된다.


대학생 때 단편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인원은 세 명. 글 쓸 줄 알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내가 시나리오 작가와 음향 감독을 맡았다. 캠코더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친구가 촬영을, 어제 막 프리미어를 배운 친구가 편집을 맡았다. 연기는 나와 편집하는 친구가 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스크린 속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재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꽤 고생했다. 촬영하다 쫓겨나기 일쑤였고, 편집하다 싸우기도 했다. 완성본이 나왔을 땐 이제야 끝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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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본 영화는 <물에서 온 편지>와 <치킨 행성에 불시착한 이홍도 대원은 현재에 만족한다>였다. 상반된 분위기와 내용의 영화였다.


<물에서 온 편지>는 조치원에 관한 기록. 물이 많은 지역인 조치원은 비가 오면 자주 물이 넘쳐 범람하곤 했는데, 아직 그 홍수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많다. 물은 투명하다. 갑자기 몸집을 불려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잠잠하고 반짝이기도 한다. 물과 관련된 기억을 주민들의 손편지로 볼 수 있었다. 영화에는 감독님이 직접 녹음한 조치원의 물소리가 함께 들렸는데, 이 소리가 극장 안을 채워 마치 내가 물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치킨 행성에 불시착한 이홍도 대원은 현재에 만족한다>. 참 긴 이름이다. 제목처럼 영화도 재미있었다. 퇴직하면 치킨집을 차리는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것 같았다. 리쌍의 노래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아기라는 생명체> 공연은 신기하게 엄마와 아기, 갓난아기가 주연이다. 육아도 하고 연극도 하고. 반쯤 열린 공간이었는데 넓은 공간을 배우의 에너지로 채웠다. 서기 3028년, 인간은 더는 생식을 하지 않고 완성된 형태로 태어난다. 단테라는 안드로이드가 베아트리체라는 아기 인형을 줍고, 다음 날 살아있는 인간 아이가 단테의 집에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육신으로 표상되는 아기 인형을 안드로이드를 관리하는 닥터 그애에게 넘겨버렸기 때문. 극본가이자 연출가이자 주연인 이한솔 님은 갑작스러운 임신, 임신하고 겪는 일들을 ‘안드로이드’로 풀어냈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벽들, 예를 들면 커리어의 단절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보면서 가장 공감이 많이 되고 몰입했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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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의 전시>는 내 안의 우울함에 집중한다. 단칸방 크기의 작은 공간을 우울을 표현했다. 귀를 만진다든지, 입술을 깨문다든지 불안할 때 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영상, 그리고 눅눅한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한 영상 이렇게 두 개가 쉴 틈 없이 틀어져 나온다.


무당집의 새끼줄처럼 우울한 내면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우울의 제단 같기도 하다. 내면을 실제로 보는 듯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몰입하게 한다. 작은 공간에서 오는 큰 압도감을 느꼈다. <미안의 전시>는 sorry가 될수도 inside myself가 될 수도 있다. 너무 우울해서 내게 미안한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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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공연을 하나 더 보려고 했는데, 입장 시간을 놓쳐 보지 못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다 설비동을 찾았다. 이곳에는 관객이 만드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미래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람드리 도화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형태다. 이곳에 앉아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기도 바람을 즐기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문화비축기지는 창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밝다. 산책하기도 좋고 주말임에도 한산해서 좋았다. 전시와 공연,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쓰는 리뷰도 페스티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을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치유한다. 내 안의 불안감, 출산에 대한 걱정,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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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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