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선시대에 젠더퀴어가 있었다면? 동성혼을 했다면? 흥미로운 고전의 세계 - 방한림전 [도서]

글 입력 2019.08.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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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통’이라거나 ‘고전’이라는 말이 붙으면 일단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내용을 정확히 몰라도 저런 단어들이 붙으면 어쩐지 지루하고 어쩐지 어려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거부감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수험생 시절 모의고사 시험지의 고전시가와 고전소설 파트에서 곤란함을 느끼던 기억은 선명하다. 뜻을 알 수 없는 한자어들은 고사하고, 문체도 현대어와 매우 달라 읽다가 자꾸 걸리곤 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다 읽어봐도 문제까지 풀기엔 이해가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제일 좋아하고, 잘하던 과목이 국어였는데도 ‘고전’은 늘 그렇게 나에게 당황스러움만 안겨주었다. 현대소설에 대한 애정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이후에도 ‘고전’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졸업학점을 채우려면 반드시 들어야 했는데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또 내 앞에 우르르 쏟아질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이미 대충의 내용을 알고 있는 토끼전, 장화전, 흥부전 같은 이야기들을 다시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미 현대소설에 익숙해진 내가 가부장적, 유교적 사상이 가득한 고전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고전 관련 수업을 듣다 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고전 소설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들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도 그 당시의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을 전한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 즉 이본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읽다 보니 마냥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옛 문체도 맛깔나게 느껴졌다.


*

 

오늘은 그 고전소설 중에서도,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고전 ‘방한림전’에 대해서 가볍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방한림전은 19세기 말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추측되는 고전소설로, 대명 시절 북경 유화촌에서 태어난 방관주의 이야기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남성처럼 과거에 입시에 문무 양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한림학사가 된다. 더불어 동성인 영해빙과 결혼하기도 하고 하늘이 내려준 아들을 점지하여 대를 잇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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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소재는 ‘남장’이다. 물론 ‘홍계월전’이나 ‘이춘풍전’처럼 다른 고전소설에서도 남장이라는 소재를 찾아볼 수 있지만, 이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려거나 남편의 무능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졌으며, 이후에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되찾는 등 한시적인 경우가 주를 이룬다.


물론 방관주 역시 자신을 남아처럼 대하던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입신양명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높은 벼슬에 오른 후에도 여성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며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남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여타의 고전 소설들 속에서의 ‘남장’과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현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방관주의 성 정체성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재구성해 볼 여지도 있다. 물론 텍스트에서 방관주는 자신을 ‘여자’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젠더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으므로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어도 자신을 ‘여성’으로 칭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를 ‘트렌스젠더’였다고 규정하기에는 역부족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남성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자신도 타인에게 남성으로 받아들여지며 사회적으로 그 성별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이분법적인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젠더퀴어’이진 않았을까 하는 해석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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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주가 형성한 가족 역시 매우 흥미롭다. 먼저 그의 아내 영해빙은 관주가 여성임을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한다. 이는 영해빙이 평소 결혼을 ‘남성에게 제약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남성에게 종속되어 평생을 살아갈 바에는 여성과 결혼하더라도 평생을 지기로 동등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행복한 결혼생활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관주도 이런 영해빙의 뜻을 존중하고 지기로써 연을 맺는다. 둘의 관계를 사랑이나 성애의 관점에서는 볼 수 없으나,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매우 성숙하고 선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둘이 하늘이 내려준 아들 낙성을 거두어 기르고 손주와 며느리까지 본 것 역시 이 둘의 독특한 관계를 현대적으로 다시 한번 해석해 볼 수 있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쓰인 시기를 고려했을 때, 방관주의 가족은 ‘남장한 여자 주인공’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을 고려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방관주가 일반 남성처럼 혼인하고 아들을 통해 재생산하는 과정은, 즉 소위 말해 ‘정상적’인 가정을 형성한 과정은 독자들이 주인공의 단점-이라고 느껴지는 신체적 성별-을 무마시키고 방관주를 훌륭한 인물, 즉 고전소설 주인공의 위상에 올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방관주의 결혼과 양육의 모습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생겨나고 있는 현대에서 하나의 모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훌륭한 ‘대안 가족’의 모습이다. 더불어 남성에게 족속되는 결혼이 싫어 방관주와의 결혼을 택한 영해빙은 ‘비혼’이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여러 방면으로 분석 및 현대적으로 재구성이 가능한 인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처럼 고전에는 기존의 부당한 억압이나 차별, 답답한 질서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많다. 오랜 시간을 지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서사의 힘도 강하다. 그 때문에 이와 같은 고전 작품을 향유하고 재구성해 봤을 때, 기존의 텍스트를 넘어서는 다양한 담론과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나처럼 지금까지 ‘고전’이 마냥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져 마냥 거부감을 느꼈다면,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이 ‘방한림전’부터 읽어보는 건 어떨까.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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