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의 비극 : 뉴 필로소퍼 vol.7

집을 소유할 수 있을까? 소유하면 행복할까?
글 입력 2019.08.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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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문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이 땅을 차지하고 있고, 이 사회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누구의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불평등의 존재는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빈곤을 겪는 사람들에 의해 드러난다. 지하철 역사에서 마주하는 노숙인의 모습, 계속되는 폭염에 온열 질환으로 숨진 사람들의 소식만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말한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깨끗하게 지워져 가는 듯하다. 도시에서는 공공장소에 기거하는 노숙인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쫓고('News from nowhere - 여기 말고 어디든 다른 데로 가라'), 사람들은 매해 보도되는 죽음, 그 참혹한 숫자를 감각하는 일에 무뎌져 간다.


그 속에서, 나날이 절망적인 속에서도 사유는 계속된다. 답이 없는 질문일지라도, 금방 잊힐 목소리일지라도 누군가는 생각하고 말하고 쓴다.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꿈꾸었던 과거의 철학자들이 그랬듯 계속해서 회의하고 사유한다. 그것이 이 현실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양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돌파구를 찾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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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철학하는 잡지 <뉴 필로소퍼(New Philosopher)>의 일곱 번째 호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에는 그 사유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다양한 전문 분야를 가진 필자들은 칼럼 안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존 로크, 칼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을 현시대로 소환하기도 하고, 소유에 있어서 인간과 동물의 습성을 비교하여 '인간성'을 탐구한다. 또 토지 제도가 개인의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보기도 한다. 일상에서 출발한 단상부터 부의 분배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진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논한다.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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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토지 제도를 혁신하고, 소유 구조를 바꾸는 일에 기여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일단 더 늦기 전에 집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내 집을 소유하고, 금전적인 문제에 쫓기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집을 살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소유'의 전장에 뛰어든다.


집을 갖고자 하는 욕구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에 나만의 공간을 꿈꾼다. 집을 소유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 명의 필자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이 생각에 제동을 건다. 첫 번째는 점점 변화하는 삶의 방식 속에서 집의 개념 또한 달라지고 있다는 것('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또 우리가 집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사실상 착각에 불과하다는 점('당신은 집주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소유가 진정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철학자의 개집')이다.




집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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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를 쓴 작가 플로라 S. 마이클스는 우리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봤을 때, 과거에는 집이 가족, 이웃들과 교류하는 유대감과 안정감의 원천이었다면, 지금은 시장에서 가치 있는 요소들로만 판단되는, 경제적 차원의 자기표현에 가깝다고 본다. 더불어, 과도한 업무량과 잦은 이직 생활은 집이라는 공간을 그저 잠시 쉬는 장소, 임시 거처의 개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일수록 많은 직장인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거처로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서 산다. 교외 지역이나 지방에 본가를 둔 경우, 도시에서의 '집'은 사실상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빌리는 형태로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그 속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는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위한 일일까. 또 어떤 공간을 잠시 빌려 사는 것과 자기 소유의 공간을 갖는 것 사이의 차이는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집을 소유했다는 착각



이 질문은 정신과 전문의인 롭 셀저의 글과도 이어진다. 그는 《당신은 집주인이 아니다》에서 주택 소유권의 허상을 지적한다.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그 집을 소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집은 사실상 은행 소유이며 "그들의 삶이 '금융 상품'에 저당 잡혀" 있다. 결국 재산이 인간을 소유하는 지경에 이르고, 나아가 정서적인 영역까지도 재산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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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셀저의 글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내 집 마련'의 꿈은 사실상 거의 이룰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시간과 노력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집을 갖기 위한 노력은 결국 소유권에 포함된 은행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로 귀결된다. 이렇듯 집을 소유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오히려 집에 대한 소유권이 보잘것없어 보이도록 만드는 듯하다.




덜 멍청해지는 방법



철학자이자 작가 데이먼 영은 《철학자의 개집》이라는 글을 통해 소유에 대한 통찰을 이어간다. 제목에서 '개집'은 필자의 집을 가리킨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필자의 할머니는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게으른 '식충이'이고, 경쟁에서 밀려나 소유하지 못하고 빌려 사는 허름하고 작은 집은 '개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집을 빌려 쓰는 것은 덜 멍청해지는 방법"이다. 마르크스는 "수단으로 대하는 삶은 결국 사유재산, 노동, 자본화의 삶으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필자는 마르크스의 사유에서 우리가 가진 소유권 개념의 허점을 발견한다. 우리는 마치 좋은 집, 많은 재산을 가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재산은 인간을 보다 편협한 존재로 만든다. 재산의 소유 여부로 사람을 판단(집주인/세입자)하고 우열을 가리게 됨에 따라 물질 소유에 대한 집착은 나날이 커진다. 결국 소유가 인식을 지배하면서 "재산은 인간의 가능성을 왜곡"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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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발생한 비극일까



<뉴 필로소퍼 vol.7>에는 주제와 연관된 고전 작품의 일부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중 토지에 대한 우화가 담긴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발췌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홈은 바시키르족 촌장의 제안에 따라 하루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천 루블에 사기로 한다. 파홈은 계약을 이행하기 전날, 악몽을 꾼다. 그 꿈에서 촌장으로, 장사꾼으로, 농부로 보였던 이는 알고 보니 악마였고, 깔깔대며 웃는 악마 앞에 파홈 자신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섬뜩한 꿈을 꿨지만 파홈은 예정대로 바시키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땅을 확보하기 위한 길을 떠난다. 파홈은 제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고, 온 힘을 다해 언덕으로 내달려 간신히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는 도착과 동시에 피를 토하며 죽는다.



파홈의 죽음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토지를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고자 했던 파홈, 그런 욕망을 자극하는 조건을 내건 촌장, 그리고 그것이 이행되도록 방관한 바시키르 사람들. 누구의 잘못이라고 확언하기 어렵다. 이는 어쩌면 사적 재산으로서의 토지 개념이 갖는 본질적 결함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결국 파홈의 꿈속에 등장한 악마의 존재는 인간의 생명력을 퇴색시키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파홈의 하인은 삽을 집어 들고 파홈을 뉠 만큼 깊이 땅을 판 다음 그를 묻었다. 파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1.8미터가 그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p.149)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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