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일상에 철학 한 줌,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vol.7 -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 [도서]

글 입력 2019.08.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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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철학하다.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잡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곤 한다. 그리 길지 않은 글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잡지들의 글을 보며 늘 한 수 배운다.


한 잡지사에서 에디터의 역할에 대해 개괄적으로 배운 적이 있었다. 뚜렷한 색깔과 명확한 신념을 가진 그 잡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뒤론 모든 잡지마다 이 잡지 브랜드는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 있나? 유심히 보게 된다.


<NewPhilosopher(이하 뉴필로소퍼)>는 SNS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잡지였다. 이름부터 시선을 끄는 이 잡지는 7호를 맞이한 계간지로 이번 호의 주제는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다.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집에 대한 소유와 의미에 대한 생각이 강해진 이때,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한 재미있는 출판물이었다. 서울에 살며 늘 알맞은 노동에 의해서도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집의 가치에 대해 의문점을 품곤 했었다. 그런 경험이 이번 뉴필로소퍼를 좀 더 흥미롭게 보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뉴필로소퍼는 “일상을 철학하다”라는 명확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잡지이다. 그리고 이 신념을 알기 전에 독자의 입장에서 잡지를 읽으면서도 그것이 느껴졌다. 부동산과 집, 소유에 대한 일상적인 현상들을 <철학>과 <철학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풀이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서 접하는 다른 잡지와 달리 글이 마치 토론을 지켜보는 듯했다.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잡지를 읽어보며 결국 우리네 삶을 철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구나 하는 감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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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소유 문제를 읽어준 잡지의 시선



부동산에 관하여 논하였기 때문에 사유 재산과 인간의 소유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다. 부와 토지의 재분배에 대한 생각들도 읽을 수 있다. 특히 ‘토마 피케티’의 <조용한 혁명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쓰인 인터뷰가 눈에 띈다.



젊은 세대가 집을 장만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젊은 세대는 근로소득밖에 없기 때문에, 집을 사기가 대단히 어렵다. 오늘날 근로소득만으로 파리나 런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주택을 소유하기가 30~40년 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만약 근로소득만으로 집을 사려고 한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득이 굉장히 많아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돈이 많다면, 훨씬 쉽다. 그러므로 집을 사는 문제에서 상속재산과 근로소득의 상대적 중요성은 전후 세대와 지금 세대에게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p52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 재산을 평생 유지하는 일은 사회에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안다. 그러므로 매년 재산의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영구적 토지개혁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영구적인 혁명이다. 하지만 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조용한 혁명인 셈이다. p63



예전 시대와 현시대를 비교하자면 근로소득의 상대적 중요성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에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노동을 착실히 하여 저축을 하더라도, 치솟는 집 가격으로 인해 온전히 자기 재산으로 집을 가지기는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이라는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노동을 하고, 삶을 희생하지만 결국 예전보다 못한 환경에서 살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글이 다른 섹션에서 실려 있었다.



상당수는 대출받아 집을 구매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나와 내 아내도 마찬가지여서 할머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와 아내는 내 집 마련 비율이 감소하는 거시적 흐름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은행 광고에 나오는 커플처럼 집을 구입하여 기뻐하는 일은 우리 부부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집을 빌리고 자주 옮겨 다닌다. 가격에 떠밀려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변두리에서 또 변두리로 이동한다. 게다가 이제는 부유한 세입자들, 즉 집을 사지는 못해도 마음껏 빌려 쓸 만큼 여유 자금을 가진 세입자들과 경쟁한다. 내 할머니가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강조한 것은 지당하다. 하지만 아무리 절제하고 절약한들 우리는 할머니의 붉은 벽돌집, 수국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침실이 세 개 딸린 그런 집을 보상으로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우리의 두 칸짜리 집과 작은 안뜰은 ‘개집’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개집에 살기 위해 세후 가계소득의 약 절반을 지출한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모아 일찍 집을 장만하라는 할머니의 성공 공식은 슬프게도 시대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p40



땅값과 집값이 지금보다 낮았고 불안정한 직장으로도 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던 과거에 집을 샀던 필자의 할머니는, 지금 세대가 살아가는 집을 보고 ‘개집’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웃기지만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앞선 글의 토마 피케티는 일정 수준이 넘는 부를 축적한 자들의 재산 환원이 필요하고 그것이 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비추어 ‘조용한 혁명’이라고 칭했다.


사실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긴 하였다. 하지만 실제 현실로 돌아오자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을 할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축적하여 그것이 사회적으로 순환되지 않고 올바른 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축적한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과 소득 불균형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문제이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논점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인간의 욕망인 ‘소유욕’에 대한 이야기를 부동산이라는 물질적 ‘재산’을 다루며 빼놓을 수가 없었다. 뉴필로소퍼는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 역시 읽을 수 있게 했다. 또 ‘집’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소유권’을 둘러싼 난제의 한 가지 해결책은 사유재산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사회적 실험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늘날 소련, 공산주의 등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커뮤니티 가든이 좋은 타협안이지만, 훌륭한 계획에도 선망과 속임수가 성행할 수 있다. 이처럼 집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환상이고 많은 불일치를 초래한다. 하지만 집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내적인 따뜻함을 주는 경향만은 부정할 수 없다. 집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물리적 소유보다 의미의 문제에 더 가깝기 때문에 좋은 느낌을 준다. p20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인간의 감정과도 연결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부의 문제에 해결 방안으로 삼기 쉽지 않다. 또한 과거에 개인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국가의 재산을 재분배하여 사회를 이루었던 국가 체제들은 내리막을 걸었던 전례가 있다. 덧붙여 플로라 S. 마이클스 작가는 현재의 집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서적 유대감을 발생시키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한 자아를 실현하고 표현하는 수단이 바로 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집의 의미 앞에서, 우리의 소유권에 대한 주장과 욕망은 더욱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내세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적 합일점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소유에 대한 의견은 서로 대립한다. 기원전부터 지속되어 온 소유에 대한 이야기는 2000년이 훌쩍 넘어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뉴필로소퍼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글을 책 뒤쪽에 제시하였는데 이 잡지를 읽고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잡지의 구성 자체가 생각의 흐름과 일치하도록 짜여져 있다. 앞에는 부동산과 소유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 다양한 의견과 스토리들을 쏟아내며 철학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뒤쪽으로 향할수록 해결 방향성과 관련된 교훈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생각을 직접 정리하고 매듭짓도록 도울만한 글들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물건들이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는 생각은 틀렸다. 하지만 그 물건을 몽땅 내버리는 행위가 행복으로 연결되리라는 생각 또한 똑같이 잘못됐다. 두 가지 생각은 모두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불교의 가르침인 ‘무집착’에 뿌리를 둔, 보다 대안적인 접근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곤 한다. 무집착은 불교 철학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통찰 중 하나로, 혐오 또한 결국에는 또 다른 형태의 집착일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략) 더 큰 TV를 갖고 싶다는 욕구나 물건이 없는 삶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욕망은 이를 대신할 새로운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일상에 존재하던 또 다른 불만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결국 당신의 삶은 이전에 비해 조금도 평온해지지 않을 것이다. p134



사유 재산으로 인해 개인주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개인주의는 성장이 아니라 이익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짜 중요한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의 진정한 완성은 그가 소유한 재산이 아니라 그의 사람 됨됨이에 달려 있다. - 오스카 와일드



또한 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소개한다. 파홈이라는 인물은 촌장으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듣는다. 지금 출발점 표시에서 시작하여 한 바퀴를 걸어온 전부 파홈의 땅이 된다는 것이다. 땅을 넓게 가지고 싶던 그는 끊임없이 멀리 향한다. 계속 걷던 그는 멀리 온 나머지 빨리 돌아가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가야만 했기에 헐레벌떡 출발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을 하였지만 욕심을 부려 걸어왔던 나머지 몸에 무리가 오고 결국 죽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에 대해 잘 보여주는 우화이다.


이렇게 잡지는 뒤로 향할수록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우리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도록 돕는다.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라는 이번 호의 주제는 집과 소유에 대한 깊은 관점과 다양한 이야기들로 현시대가 가지고 있는 부, 재산, 소유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철학적 시선들은 삶을 좀 더 깊게 바라보도록 돕는다.




당신도 함께 철학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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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잡지의 한 섹션은 <생활철학자>라고 제목이 지어져있다. 이 페이지에는 사회의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 좋아하는 철학자, 좋아하는 명언 등이 소개되며 철학에 대한 생각을 묻고 답하는 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70쪽에서 71쪽 사이의 네 명의 생활 철학자들은 철학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했다.



인간은 관습에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관습은 썩어 있다.

-이치카와 젠킨스-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면,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지침과 위로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이 로프그렌-


철학은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일리야 레르마-


철학은 사회의 억압적인 규범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통찰력을 준다.

-베스 매튜스-



이렇듯 철학은 사람들에게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찰력과 지침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뉴필로소퍼라는 잡지를 출간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잡지란 대중에게 친숙하고 진입 장벽이 낮은 매체다. 그리고 다양성 또한 보편적으로 존중이 되는 분위기다. 이런 매체 특수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상을 철학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던 기존의 방식을 비틀기도 하고 깨보기도 하면서 삶과 주변의 현상들을 새롭게, 깊게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다. 뉴필로소퍼를 읽으며 단순히 내게 재산의 성질에 불과했던 부동산과 사회적 문제인 부의 불균형 현상에 대해 여러 시각을 접할 수 있었고,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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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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