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뉴필로소퍼 New Philosopher 2019 7호 :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

글 입력 2019.08.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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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어릴 적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들의 집에 대한 집착이 이해가 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주거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으로 와닿는지는 작게는 대학생 때 타지생활을 시작하며, 크게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느끼게 된 것 같다. 혹시 내년엔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삶에서, 2년 후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월세로 전환하자고 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삶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은, 부동산은,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과업처럼 남아있다.


이번 뉴필로소퍼 7호에서 부동산을 다룬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뉴필로소퍼가 지향하는 바를 담기엔 부동산 하나만을 다루는 것은 스코프가 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는 기우였다. 뉴필로소퍼는 독자들의 기대에 맞춰 부동산이라는, 현대인의 삶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담론을 확장시키고 시야를 넓혀나갔다.


다양한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점들을 시사하고 있어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 중에서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번 호의 제목인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번 뉴필로소퍼 7호에서 바라보는 부동산은 부동산 그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물질주의, 나아가 물질적 대상에 대한 현대인의 갈망과 추구 그 자체였다.





차 례


10  News from Nowhere
18  Feature  당신은 집주인이 아니다  롭 셀저
22  Feature  하우징 게임  안토니아 케이스
28  Feature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부동산  톰 챗필드
36  Comic  모노폴리 게임하는 철학자들  코리 몰러
38  Feature  철학자의 개집  데이먼 영
46  Feature  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플로라 S. 마이클스
52  Interview  조용한 혁명이 필요하다  토마 피케티
64  Feature  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  앙드레 다오
66  Feature  배설물과 재산권  러셀 블랙퍼드
74  Column  일상으로서의 영토성  제사 갬블
80  Feature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앤드루 R. 핼로런
82  Feature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자유  폴 비글러
86  6 thinkers 소유Property
88  Special issue  사생활은 존엄성의 문제이다  아니타 L. 알렌
96  Special issue  열어둔 창문 너머의 사생활  아르네 스벤슨
110  Feature  누가 마지막 과자를 먹을 것인가  나이젤 워버튼
116  Feature  당신의 재산 윤리는 어떤 유형인가?  티모시 올즈
122  Feature  나 자신을 노예로 팔기  패트릭 스톡스
130  Feature  물건의 저주  올리버 버크먼
138  고전 읽기  재산이라는 신에게 인류가 희생당하고 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142  고전 읽기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레프 톨스토이
152  Our Library
154  Essay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사랑  DBC 피에르
164  Interview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앤드류 업톤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토지자원을 사유재산으로 삼고 싶어하는 현대. 고대 농경사회에선 이것이 말 그대로 토지 그 자체에 국한되었다면 이미 선사시대 이후부터 인류는 토지를 넘어선 부동산을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삼고자 노력해왔다. 잉여 생산물을 축적하며 한 몸 누일 수 있는 부동산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였던 것이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일관되었던 이 명제는, 특히 이미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현대에는 아예 부의 상징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당장 철학자 데이먼 영이 말하는 것처럼, 할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개인이 근면성실하게 절약하여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지만 현 세대는 상속재산 없이 근로소득만으로는 자가를 보유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이는 상속재산 없이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다. 이는 토마 피케티의 표현을 빌자면, '재산권이 영속적'이게 된 듯한 양상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상속세를 부여하여 재산권의 영속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문제는, 제한된 자원 즉 부동산을 분배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곧 정치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정치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의를 빌어 말하자면) 희소한 자원과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려 하는 경우, 이미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희소자원을 둘러싼 투쟁이 개인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당연히 기득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공공, 즉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단순히 부동산 정책을 쓴다는 단순한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과 재산권에 대한 거시적인 틀에의 개입을 의미한다.


이러한 거시적인 틀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다. 소유권, 재산권이라는 큰 틀을 이해하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정책이 근시안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게 될 수 있고 이 경우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보아왔던 부동산 정책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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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물론 자원의 희소성에도 기인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물질을 바라보는 인류의 욕망 그 자체에 있다. '물건의 저주' 챕터에서 올리버 버크만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집착하지 않고 물질을 물질 그 자체로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욕망을 안고 물질을 바라보는 게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 간에, 개인 간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타인이 아닌 자신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부터 비롯된 일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욕망의 발로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현재의 미중 무역전쟁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물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패권까지도 얽혀 있지만, 패권이 희소하고 가치 있는 물질과 비물질 모두를 아우르고 주도할 수 있는 키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의 소유욕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수반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올리버 버크만의 표현이 참 적절하다. 사실 돈만큼 돈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질이 드물기 때문이다. 돈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미치는 힘으로 그 쓰임새를 증명해야 비로소 가치가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통해 이루거나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욕망의 렌즈를 가지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본다면, 우리는 무의식 중에서도 사로잡혀 있는 물질만능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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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뉴필로소퍼 7호를 통해 물질을 바라보는 우리의 욕망을 계속적으로 짚어보는 이유는, 현대인들의 삶이 대부분 주객전도된 상태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처럼, 살아가며 물질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질을 획득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전도되어 있다.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나 자신이 그렇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정말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삶에 몰두해왔다. 그렇게 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말한 것처럼 '재산이라는 신에게 무자비하게 희생당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진정한 완성은 그가 소유한 재산이 아니라 그의 사람 됨됨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롭 셀저의 표현과 같이 이미 '우리의 재산이 우리를 소유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토지 소유의 불평등, 상속재산으로 인한 불평등이 이미 만연하여 애당초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기를 시작할 수 없은 이 삶 가운데 소유만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이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였다.


소설 속 인물 파홈은 바시키르족의 땅을 사고자 했다. 얼마만큼의 땅을 살 수 있냐고 물은 파홈에게 바시키르족의 족장은 시작지점에서부터 하루동안 걸어서 최대로 갔다가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오는 만큼의 땅을 하루에 천 루블로 쳐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욕심이 난 파홈은 시작지점에서 아주 멀리까지 무리해서 걸어갔다. 욕심을 부린 탓에 그는 돌아오는 길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해버렸고 결국 도착지점에 닿자마자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다.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그의 시신을 뉘일 1.8m 깊이의 땅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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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7호를 읽으며 궁극적으로 떠오른 것은, 결국 소유냐 존재냐 하는, 에리히 프롬의 질문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이 다소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기억 속에 명확히 남아 있다. 바로 사는 것(Buy)이 아니라 사는 것(Live)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바와 같이 사물의 소유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맥락이 다소 다르지만 과잉공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제공하는 아니타 알렌의 글에서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사물을 사고 소유하는 것에 골몰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신체와 감정 등 자신의 물적 정보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둔감하게도 SNS를 통해 너무 많이 공유하며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설령 그것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편린이라 치부해 버리더라도, 그것은 분명 SNS 계정주 본인 그 자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패트릭 스톡스가 '나 자신을 노예로 팔기' 챕터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의 신체나 감정, 생각 등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면서도 나의 소유물 중 하나일 뿐인 것처럼 이원화하기도 한다. 거기서 오는 괴리로 인해 순간의 감정을 하찮은 소유물로 여기고 배설해 버리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부지불식 간에 본인을 위험에 노출시킬 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물적 정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일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부동산이라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를 가지고 부동산 그 자체에서부터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 나아가 물질적 대상으로서의 인간까지를 살펴보는 길고도 넓은 여정이 이번 뉴필로소퍼 7호 속에 담겨 있었다. 이미 은행을 모시고 전세집에서 사는 세입자의 입장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보니 아찔했다. 이 철학적인 여정을 끝내고 나니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관념적인 답은 나왔으나 실재적인 방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아직도 물질에 압도된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아직까지 물질과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이번 뉴필로소퍼 7호에 담긴 다양한 관점들이 나에게 준 추상적인 답은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은 나에게는 아주 큰 자극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이 끝없는 철학적인 질문에 삶으로 답하는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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