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맴도는 발걸음으로 추는 춤 –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글 입력 2019.08.0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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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딛고 살아가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그 사실은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


모든 국민이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국가에서 자란 사람들은 차별과 불평등의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기울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줄곧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빗겨 나갔던 사건과 어느 날 갑자기 정면으로 들이받는 순간, 그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딛고 살아온 땅과 내가 가진 목소리가 얼마나 그늘진 곳에 위치해 있는지.




젠더와 펜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네마프 2019)이 오는 8월 15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다. 매년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영화와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뉴미디어아트를 선보여온 네마프는 올해의 슬로건을 ‘젠더x국가’로 선정했다.



사진_NeMaF Poster.jpg

 


‘젠더x국가’라는 테마에 걸맞는 공식포스터는 젠더, 가족, 이주민 등 다양한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온 심혜정 작가가 맡았다.


심혜정 작가와 조병희 작가가 공동 작업한 ‘카니발 (2016)’의 한 장면에서 따온 네마프 2019 공식 포스터 이미지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가 혹은 자본이 정한 기간 동안 허락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던 ‘카니발’이라는 축제에서 카니발에 참여할 수 없는 펜스 바깥의 사람들의 시선을 조명하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맴도는 신체와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네마프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 주로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 그간 비주류로 치부되어 온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았을 때 심혜정 작가의 공식포스터 이미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스터 왼편에 위치한 흑백의 부녀는 아이를 목마 태우고 틈새에 바짝 다가가고 나서야 높고 거대한 펜스 너머로 펼쳐지는 카니발의 총천연색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의 넘실대는 욕망을 등에 업고 펼쳐지는 화려한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자들은 어떤 형식과 위치도 가지지 못한 채 까치발을 들고 그저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은 펜스 내부에서 이들을 내다 보는 것이 아닌, 바로 등 뒤에서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욕망과 신체를 조명한다.



1. 바깥은 존재한다.jpg

 


여성,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비주류로 통칭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펜스 내부 사람들로부터 함부로 분류되고, 묘사되고, 한데 묶여 뭉뚱그려져 온 존재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일방적인 잣대를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이분법이라는 선 안에서 피구 경기처럼 아슬아슬한 게임을 이어가지만 결국 그 폭력성을 피해가지 못하고 선 밖으로 내쫓긴다. 즉 절대다수가 비주류로 전락하기 쉬운 게임에서 표현할 수 있는 권력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소수에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나 또한 소위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이야기를 ‘그들’의 이야기로 분리해버리고 마냥 속 편하게 관망할 수는 없는 위치에 있다. 나는 여성이고, 동양인이고, 비혼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이다. 나는 스스로가 이렇게 간편하게 분류된다는 사실을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때때로 미디어 속에서, 예술계 안에서 내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며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중 아무도 나와 닮은 외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드라마 속에서 나와 비슷한 인물에게는 늘 주변적인 역할만이 주어진다는 것, 단 한 번도 내 위치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멋대로 사실을 왜곡해버린 작품을 만들어내고도 박수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만든 예술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



침묵에대한의문_스틸컷1.jpeg

 


내가 펜스 바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울 앞에서, 펜스 앞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펜스 뒤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 없는 욕망이 있다. 카니발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함부로 묘사되어 온 사람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감정이 존재한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젠더x국가’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약 10일 동안 수많은 아트워크들을 통해 줄곧 시선의 대상이 되어 온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올 여름, 네마프 2019에서 자본의 수사학이 아닌 가감 없는 날 것의 눈으로 담아낸 펜스 바깥의 영상들을 기대해본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 네마프(NeMaf) 2019 -


일자 : 2019.08.15 ~ 2019.08.24

프로그램
주제전: 젠더X국가
글로컬 구애전 (국제 경쟁프로그램)
한국 구애전 (한국 경쟁프로그램)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
마를린 호리스 회고전
심혜정 특별전
글로컬 파노라마 (비경쟁프로그램)
뉴미디어대안영화 (작가신작전)
뉴미디어대안영화제작지원
등 다수

*
28개국 140편
국내/해외 영화, 뉴미디어 영상
영상 퍼포먼스 작품 등

**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홈페이지 참고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아트스페이스오

티켓가격
상영 1회권 7,000원
전시통합 1일권 7,000원

주최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마포구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서교예술실험센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스페이스오



이현지.jpg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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