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잔잔한 단상, 마음의 변주 - 수수께끼 변주곡

노을 지는 하늘이 생각나는, 수채화 같은 사랑에 대한 단상이다.
글 입력 2019.08.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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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늘 나에게 고역의 계절이다. 뜨거운 열기가 몸을 데우면 공식처럼 끈적함이 뒤따라 몸을 뒤덮는다. 열기에 둔해지는 몸과 멍해지는 머리, 그저 더위를 견디는 것만으로 체력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일은 매해 겪지만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예민하던 감각이 무더위에 치여 둔해지는 느낌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7월에는 도통 글을 쓰지 못 했다. 사실 이 말은 6월에도 했었고, 그 전 달에도 했었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나의 평균 글의 양이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하겠지만, 7월엔 공개적인 곳에 업로드하는 글이 아니고서도 일기도, 메모도, 다이어리도 도통 쓰지 않았다. 머리를 스쳐가는 감상들을 언어로 풀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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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묶여 엉켜버린 글줄들을 시원하게 잘라내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면 평소보다 더 시원하고 거침없는 콘텐츠들만 찾아다녔다. 생각을 끊고 그저 즐길 수 있는 것들. 글의 감각을 예민하게 세워 주기보다 즐거움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들 말이다.

평소의 나는 지극히 잔잔하고 여운이 돌고, 마음 가장자리 어딘가를 어루만져 주는 섬세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요 근래의 나는 시원하게 웃고 잊어버릴 수 있는 현재에 머무는 것들을 더 선호했다. 덕분에 이 책,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읽는 건 평소보다 꽤 힘이 들었다. 그의 글은 지극히 섬세하게 짜인 언어의 그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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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글의 작품보다 영화로 먼저 알게 된 작가다. <Call Me by Your Name>. 여름과 성장기 소년, 사랑을 섬세하게 풀어낸 영화. 이 영화를 보면 앞의 단어들이 늘 떠오른다.

영화와 가장 닮은 소설은 <첫 사랑>, 책의 첫 소설이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어린 날의 사랑은 그 형태와 감각이 너무나 생경해서 (모든 것이 낯설기에) 화자를 뒤흔들곤 한다.

그것이 사랑인지, 동경인지, 그저 우정의 또 다른 표현인지, 수많은 궁금증을 가진 채로 하루 하루를 딛는 과정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설렘, 들키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규정되지 않은 열망은 한 여름의 무더운 폭염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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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앞에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외의 감각이 굳어지고 그저 더위만이 깊숙하게 각인된다. 여름 날의 사랑도 그와 비슷하다. 애치먼이 그리는 사랑이야기는 인생의 여름날, 갑자기 찾아와 혼을 빼놓는 무더위와 같다.

그 더위에 에너지를 몽땅 빼앗긴 채 흔들리다 보면, 어느 샌가 더위는 훌쩍 떠나고 가을이 찾아와 감각의 문을 두드린다. 이제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세요, 하고. 그제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그 여름날 우리를 붙잡았던 여름 날의 열병에 대해.

가을이 되면 우리는 그제서야 선선해진 감각과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름날을 뒤돌아본다. 떨어지지 않던 끈적임과 열기가 몸에 남긴 흔적을 조금 더 차분해진 눈으로, 받아들인다. 파울로가 자신의 첫 사랑이자, 아버지의 연인 난니를 조용히 되뇌이듯이.


나는 그를 원했고 열두 살의 내가 아니라 좀 더 컸다면 그도 나를 원했을 것이다. 내 열정이 물려받은 것이고, 따라서 운명이라는 사실이 즐겁기까지 했다. 운명은 언제나 표시를 남긴다.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그 표시를 알아보고 읽을 줄 안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전부를 주었을 것이다.


- 97.P



이 책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첫 사랑>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색을 아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는 기법이다.

책의 제목인 ‘수수께끼 변주곡’은 사랑이란 모호한 수수께끼 같은 감정이 다양한 화자에 의해 변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연인을 두고서도 다른 이에 대한 열망을 끊지 못하는 남자, 분신과도 같은 서로에게 끌리는 남녀, 사랑 앞에 망설이는 마음. 이 다양한 변주 속엔 끊임없이 앞장에서 본 인물들의 이름이 굴러다닌다.

전혀 다른 이들 같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사랑이라는 그물에 쫀쫀하게 얽힌 이야기들, 나는 오히려 여름 날이 아닌 가을에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내고 싶다. 가을의 노을 지는 하늘이 생각나는 수채화 같은 사랑에 대한 단상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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