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사랑은 ‘변주곡’이었음을 -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수수께끼 변주곡> 리뷰
글 입력 2019.08.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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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다섯 가지 색 사랑 변주곡

 


뉴욕 매거진이 선정한 ‘21세기 가장 흥미로운 신소설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어른이 되어서도 늘 소년 같은 사랑을 탐하는 화자(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광장〉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각기 다른 독특한 문체로 마치 변주곡을 연주하듯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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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생동안 몇 번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랑들 중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아니, 애초에 사랑이라는 단어에 ‘들’이라는 복수형 접미사를 붙이는 게 가당키나 할까? 어쩌면 수많은 로맨스 영화, 드라마에서 말하듯이 애가 타고 욕망이 들끓는 진짜 사랑은 생애 단 한 번만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그해, 여름 손님>의 작가로 유명한 안드레 애치먼은 신작 <수수께끼 변주곡>을 통해 다섯 가지 색을 지닌 사랑의 변주를 풀어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를 떠올리게 하는 <첫사랑> 속 파올로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읽을수록 의문스러워진다. 이거, 혹시 한 사람의 이야기인가? 하지만 화자의 말투나 드러나는 성격이 너무 다른 것 같은걸.

 

제목 그대로 ‘수수께끼’다. 새로운 단편을 읽는 느낌으로 두 번째, 세 번째를 거쳐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를 읽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의문을 해소시키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직접적으로 화자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그의 이름조차 파올로, 폴, 폴리 등 다양하게 불리기 때문이다.

 

그의 감정선 또한 마찬가지다. 바람을 피운 여자친구와 그 상대방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듯하다가도 뜬금없이 테니스 파트너를 생각하고, 한 남자에게 열렬히 빠져버렸다고 고백했음에도 그 다음 이야기에서는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여자사람친구와 미묘한 대화를 나눈다.


그는 동성애자일까, 아니면 이성애자일까. 아니, 양성애자인 건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사랑에 있어서, 감정에 있어서 애초에 그런 것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당신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난니. 어디를 가든, 누구를 보고 갈망하든, 결국은 당신의 반짝이는 빛을 잣대로 재게 되죠. … 아버지가 그러는데 사람은 살면서 딱 한 번 사랑을 한 대요, 때로는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찾아올 수 있으며 나머지는 전부 의도적인 거래요.


- p.78


   

아버지의 남자를 사랑했던 어린 소년. 10년이 지나 진실을 알았을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난니가 옳았음을.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음을.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사랑과 욕망이라는 감정에 있어 뜻대로 되는 일이 있을까?

 


난 여기 앉은 모두보다 운이 좋아요. 난 사랑에, 지독한 사랑에 빠졌거든요. 정말 괴로워 죽겠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도움이 전혀 안 되네요. 얼굴들을 보아하니 사랑의 ‘사’ 자도 모르는 게 분명하니까요.


- p.212


   

2년을 맴돈 후에야 가질 수 있었던, ‘사랑에 빠졌다’고 당당하게 인정한 그와 함께한 시간들. 그것이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사랑이었다면 평생 동안 그와 함께하는 것이 옳았을 텐데.

 


난 그녀를 사랑했다. 비통함과 억울함으로 사랑했다. 우리가 너무도 긴 세월을 낭비했기에, 욕망과 소심함과 패배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기에, 생각하면 할수록 갈기갈기 찢어졌다. 우린 오랜 세월을 허비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 p.253


   

그의 사랑, 즉 우리 모두의 사랑은 ‘변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초에 진짜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다섯 개의 단편으로 엮인 폴의 이야기가,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문체와 감정선이 마치 하나의 수수께끼 같듯이 진정한 ‘삶의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모든 감정 속에 ‘후회’가 섞여들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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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결말은 꽤 충격적이다. 그의 사랑에 있어 고려할 가치조차 없어 보이던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을 마지막에 알려준다는 건 무슨 의도일까. 그의 사랑이 새드엔딩이라는 말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데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그의 삶 속 존재했던 많은 사랑의 변주 중 의미가 없었던 것은 없다. 끊임없는 변주를 거치면 언젠가는 원곡을 찾아낼 수 있을까. 글쎄, 그 수수께끼의 정답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줄거리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폴. 어느 날 별장을 찾아온 목공 조반니(난니)를 만난다. 어머니가 앤티크 책상과 액자 두 개를 복원하기 위해 부른 터였다. 그 후 가족의 눈을 피해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수수께끼 변주곡

(원제: Enigma Variations)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정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7월 17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336쪽

정가: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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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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