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은 끝없이 변주된다 -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첫사랑, 추억, 그리고 욕망
글 입력 2019.08.0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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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짝사랑, 끝사랑. ‘사랑’, 이 단어가 가진 맥락은 단순한 로맨스뿐은 아닌 듯하다. 그 시절과 그 계절, 그날과 그 순간까지 한 번에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단초와도 같다. 로맨스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사랑 이야기의 은은함은 좋아한다. 마치 향초처럼 서서히 독자를 그 시간 속으로 인도해 매료시켜버리는 게 바로 로맨스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인 ‘그해, 여름 손님’으로 유명한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수수께끼 변주곡’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수수께끼 변주곡’.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는데, 책 소개를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서로 다른 듯 같은 사랑 이야기 다섯 편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다. 열정과 욕정이 앞섰던 첫사랑, 독자까지 두근거리게 만드는 현재진행형 사랑,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그 시절만의 욕망이 가득 담겨 있던 과거의 사랑까지 ‘수수께끼 변주곡’의 사랑은 말 그대로 수수께끼처럼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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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 ‘첫사랑’은 파올로의 앳된 처음을 그린다. 서툴게 상대를 애정하고 욕망하면서 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머뭇거리는 파올로의 모습에선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 조금쯤 담겨 있다. 처음이라 풋풋하고, 처음이라 멋쩍고, 처음이라 설레던 단 한 번의 애정은 쉽게 잊힐 리 없는 상처이자 고운 추억과도 같다.

파올로 역시 과거의 첫사랑을 더듬으며 그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공간을 방문한다. 애정이 잔뜩 묻어 있을 공간을 걷던 파올로가 느꼈을 감정은 단순한 향수만은 아니었을 테다.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린 모든 것들, 자신을 비롯한 모든 변화를 감지하고 어느 정도의 씁쓸함도 느꼈을 것이다.

동시에 그 첫 애정의 대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했을 테고, 결국 자신을 이쪽으로 걸음하게 만든 동력이 그 첫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사랑을 했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사랑했다’는 감정 하나만 선명하게 자리했을 뿐이다.

첫 번째 단편 ‘첫사랑’의 묘미는 이것이다. 절대 달콤하기만 할 수는 없는 기억이지만 처음이라는 이유로, 강렬하다는 이유로 달콤하게 포장된 채 추억으로 사장되었던 첫사랑을 아주 적나라한 문장으로 파헤친다. 그렇게 파올로는 서툴기만 했던 첫 번째 사랑과 마주하고, 그 과정 역시 마냥 로맨틱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단편 ‘첫사랑’은 첫사랑의 달콤함보다는 씁쓸함에, 그 순간의 강렬함보다는 시간이 지난 후 희석된 기억에 주목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하지만 그 적나라한 문장들이 나와 맞지는 않았나보다. 사람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파올로가 난니를 향해 품는 거대한 욕망이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실상 파올로의 서툰 ‘감정’보다는 육체적 ‘욕망’에 더 집중한 느낌이 없지 않아, 몰입하기가 힘들었던 것도 같다. 철저히 취향의 문제지만 나는 섬세한 감정의 변화에 더욱 주목하는 편이기에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욕망 섞인 언어들이 독서 진도를 방해했다.

‘봄날의 열병’과 ‘만프레드’는 ‘첫사랑’보다는 성숙한 성인의 사랑을 그린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까닭에 한층 더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봄날의 열병’은 성숙한 사랑의 미성숙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어른스럽고 완숙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린 마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테니스공과 같다는 것. ‘만프레드’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욕망처럼 말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욕망, 감정, 완성되든 완성되지 못하든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랑 그 자체. 결국 ‘수수께끼 변주곡’의 피네(Fine)는 처음 시작점에 이미 찍혀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이 ‘수수께끼 협주곡’이나 ‘수수께끼 교향곡’이 아니라 ‘변주곡’인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사랑은 수없이 변주되기에 완벽이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실패와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했다는 추억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성숙한 욕망이나 열렬한 사랑의 갈증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이 책이 크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수없이 변주되는 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조금은 벅찼던 것 같다. 하지만 짧고 짧은 여름밤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은 사랑의 기억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우리의 사랑은 또 한 번 변주될 테니 말이다.



도서 정보

제목: 수수께끼 변주곡(원제: Enigma Variations)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정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7월 17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336쪽
정가: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책 소개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다섯 가지 색 사랑 변주곡

사랑에 대한 섬세한 통찰로 탄생한 《수수께끼 변주곡》
‘첫사랑의 마스터피스’에서 ‘현대 문학의 마스터 스타일리스트’로 자리하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폴. 어느 날 별장을 찾아온 목공 조반니(난니)를 만난다. 어머니가 앤티크 책상과 액자 두 개를 복원하기 위해 부른 터였다. 그 후 가족의 눈을 피해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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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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