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벗어나, 자유롭게 춤을 춰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공연]

글 입력 2019.08.0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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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뭔데?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 공동체 속에 존재해야만 부여받은 생명을 영위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가진 국가도, 제도도 개인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에 발생한 ‘형식’일뿐이다.


그렇다면 공동체 속의 한 사람을 정의해보자.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다, 리더십이 있다, 부유하다. 이와 같은 성질은 지구상에 딱 한 명의 사람만 존재한다면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는 인내심이 강하고, 팔로워의 성향을 지니며, 재산이 적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존재하기에 반대되는 이와 상대적인 비교가 이루어지고, 속성 정의가 일어나고, 그 후 개인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공동체 속에서 ‘상대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그것이 나의 특징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제 ‘美’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어떤 존재에게 우리는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 ‘예쁘다’ 혹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기준 말이다.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다른 이보다 눈이 작고 금발이다. 허리는 가늘고, 코가 높고, 피부는 까맣다. 자, 이 사람은 당신에게 아름다운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 눈이 작다거나 코가 높다는 것 따위의 ‘특징’은 앞서 본 것처럼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그 사람의 속성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사실로 상대적인 비교가 이뤄지니까.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모호하다. 아름다움엔 정확한 기준이 없다. 정확한 수치도 없다. 상대적인 비교를 통한 정의도 불가능하다. 어떤 이의 아름다움도, 어떤 이에게는 추한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관념적 태도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획일화된 이상적 모습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가꾼다. 마치 그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고 사회가 타박이나 할 것처럼. 이러한 사회적 강박과 의연 중에 나타나는 강요는 여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몸’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체감하며 살아가지만 대중적인 소재로 잘 다뤄지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때론 부조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여성이 살아가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누구나 해봤을 법한 고민을 풍자적으로 풀어낸 블랙 코미디 연극이 바로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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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의 자유



연극을 관람하며 ‘시선’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연극이 시작되며 두 명의 여성이 각각의 조명 아래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감시당하는 듯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그 두 명은 옷을 몇 번이나 바꿔 입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더욱 살핀다. 몸이 더 부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되는 표정으로 몸을 툭툭 만져보기도 한다. 결국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으로 바꿔 입고 외출을 한다. 그들은 계속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듯 행동한다.


‘하이드비하인드’라는 사건이 발생했음을 관객은 알게 된다. 도시의 미의 기준에 따르지 않는 여성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유행이 지나간 ‘일자 눈썹’을 한 여성은 모두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새뷰티운동’이 일어난다. 하이드비하인드에 맞서 모든 여성이 ‘무조건적으로’ 예뻐져야 한다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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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이드비하인드’와 그에 맞선 ‘새뷰티운동’의 내용과 형태는 연극의 시사점을 나타낸다. ‘새뷰티운동’은 절대적인 미의 기준을 대놓고 제시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처럼. 몸을 망치는 다이어트라도 그저 살을 뺐다면 ‘새뷰티운동’ 모토 아래 그녀의 역량은 뛰어난 것이다. 며칠을 굶더라도 날씬하면 아름다운 것이고, 화려한 화장 기술은 그녀들에게 필수다.


'하이드비하인드' 사건에서 뷰티 유행에 따르지 않아 사라지는 여성을 ‘일자 눈썹을 그린 여성’으로 표현한 것이 굉장히 재치 있었다. 아주 현실적인 소재다. 눈썹 하나로 미가 판별되는 것이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도 여성들은 너무나 세부적인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눈썹의 모양, 펌의 형태, 아이라인의 모양마저 유행이 생기곤 하니까. 이런 현실의 상징적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극적 표현을 통해 과장되어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


‘새뷰티운동’의 프로그램 중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식으로 한 여성이 죽음에 이른다. 이후 이 운동이 사회적인 새 바람이 아니라, 뷰티 회사와 짜고 전개된 영리적인 목적의 운동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여성들은 자괴감과 박탈감에 사로잡힌다. ‘새뷰티운동’에 푹 빠져있던 여성들이 자신의 절대적인 기준과 방향성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연극의 마지막, 조명 아래 시선을 두려워하며 서 있던 두 명의 여성은 그 조명 밖을 벗어나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아마 그녀들을 내리쬐듯 비추던 조명은 사회적인 감시와 시선과 강박의 표현이었을 것이리라.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녀들은 아름다움과 내면의 자유를 찾고 조명 즉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몸을 누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꾸미라고,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이런 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제는 그 강박적인 목소리와 검열의 시선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발을 내디뎌 사회로 나서면 어디서든 여성의 미를 강요하는 풍조가 당연하다. 매스컴에서는 미에 대한 이상적 기준이 터무니없고 만연하다. 그렇기에 극의 마지막, 그녀들이 내리쬐는 조명에서 벗어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은 내게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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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좀 더 예쁘고 멋진 것을 선택하고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이고 획일화된 미의 기준과, 타인에 대한 사회적 강요 그리고 많은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검열의 목소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회가 변했다. 프리 사이즈의 마네킹이 이슈가 되기도 하고, 66사이즈의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점점 유행의 형태가 다양해지며, 개인의 특징을 살려 퍼스널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사회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성 중 한 명도 똑같이 생긴 여성은 없다. 개인은 저마다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여성들이 다르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큰 바람을 일으키기에 아직은 약하다. 여성들은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 더 날씬해지기 위해서 건강을 해친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회 곳곳에서 들려온다. 폭식증과 거식증으로 생긴 삶의 불균형은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다. 매스컴에서 많은 여성 모델과 연예인들은 강박으로 생긴 정신의 병을 고백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습관적으로 다이어트를 한다. 다이어트 식품 시장은 활기를 친다. 매일같이 뷰티 유튜버들의 추천 제품이 화제가 된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따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내몰아 극단적인 생활을 하는 행태가 잘못된 것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해방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는 만큼 개인 고유의 특징과 다양한 미의 기준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만연해진다면, 여성은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고유의 삶을 가꾸기 쉬워질 것이다. 또한 획일화된 기준에서 벗어나 사회 역시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여성은 지금껏 몸에 대한 평가로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왔다. 누가 나서기도 전에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평가하기도 한다.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상적이고 터무니없는 수치, 세부적인 미의 기준, 만연한 유행 스타일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자. 그리고 그 방식대로 살아가라. 결국 아름다움은 당신의 존재에 자연스럽게 풍겨올 것이다.




본문 사진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공연 사진
c 황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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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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