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없어, 정말?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공연]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아름다움을 버리기로 했다
글 입력 2019.08.0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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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외모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에서 시작해서,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자기 관리, 그리고 마지막은 탈 코르셋으로 끝이 난다.


스포츠 브래지어와 레깅스 차림의 두 여성이 등장한다. 외출하기 직전에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살이 조금이라도 튀어나왔는지 자기검열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찌나 많은 옷을 입고 벗는지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든 옷을 입어본 것 같다. 크롭티를 입으면 뱃살이 튀어나온 것을 걱정하고, 달라붙는 옷을 입으면 겨드랑이 살이 툭 튀어나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결국 노출을 포기하고 콤플렉스가 되는 신체 부분을 가리는 옷을 선택해서 외출한다. 두 배우의 역동적인 동작과 함께, 귀로는 어떤 이름 모를 여성들이 외모 평가를 받았던 경험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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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은 길거리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의 몸을 남몰래 관찰하고 숨기려 한다. 그러다 둘이 눈을 마주치고, ‘하이드비하인드’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납치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뱃살이 튀어나온 것을 숨겨야 하고, 유행 지난 일자 눈썹을 버려야 하고,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명 지르듯 조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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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꽤 당황스러웠던 것은 연극이 한창 진행될 때까지도 두 명의 배우가 말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 명은 그냥 평범했고, 다른 한 명은 뱃살이 조금 많지만 흔적이 남아있는 몸이었다. 사실 지금도 헷갈린다. 그 사람들이 마른 건가, 날씬한 건가, 표준 정도의 체형인가? 하지만 계속 생각해봐도 분명 평균보다 저체중에 해당하는 몸은 맞는 것 같다.


S사이즈를 입는 몸은 마르지 않았으며 날씬하지 않고, XS 사이즈, 그리고 XXS 사이즈, 시중에 있는 옷들이 모두 헐렁해져야 마른다고 생각했다. 평균적인 사이즈 미만이 되어야 한다고 강박을 가졌다. 옷이 커서 입을 수 있는 게 없다고 불평하며 은근히 마른 계열에 들어간 것이 행복했던 적도 있다. 아마 그래서 내 눈에는 그토록 마른 몸이 여성이 되어야 하는 평균치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만 가해지는 학대에 가까운 자기검열이 아니라, 모두에게 통용되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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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여성은 하이드비하인드 괴물에 납치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 관리를 시작한다. 화장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누워있기엔 좀 죄책감 드니까 중둔근 운동인 다리 옆으로 들어 올리기를 한다. 앉았을 때 접히는 뱃살을 쭈물거리고 때리며 줄어들기를 바란다. 초코파이를 먹고 싶어 하지만 하나에 엄청난 열량을 보고 봉지만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집 안에서 그렇게 자기 관리를 오래 하면 할수록 바깥에 나가서 당당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좀 더 예쁜 핏의 옷이 잘 어울리고, 다른 사람 앞에 서도 부끄럽지 않다. 남들보다 더욱더 자신에게 가혹할수록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그리고 먹은 것을 제거하기 위해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어 구토하기도 한다.


좀 더 잘 꾸미기 위해 파산할 뻔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굶으며 운동하다가 죽을 뻔했다는 농담을 하는데,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종종 배우들의 행동을 보며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것은 진짜 그 사람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닌 과거의 자신 행동이 떠올라 공감하는 의미의 웃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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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다이어트의 트라우마가 나에겐 남아있어, 고구마가 먹고 싶어도 고구마를 먹지 않는다. 닭가슴살은 냉동실에 20덩어리 정도는 있지만, 아무리 돈이 없어도 스팸이나 미트볼과 같은 레토르트 식품은 먹을 수 있어도 닭가슴살은 먹을 수가 없다.


방울토마토와 오이, 양상추를 안 먹은 지도 꽤 오래됐고, 이제 그 음식들에 남은 감정은 두려움이다. 나를 다시 강박을 가진 사람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과거의 일을 다시 한 번 반복할 거라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회피. 그것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라 트라우마로 남아 아주 강렬한 공포로 기억된다.


스트레스,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폭식했던 것의 근본적인 기전에는 다이어트로 인한 음식과 열량 제한에서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폭식했던 것이 있다. 음식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면, 뇌는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서도 같은 행동을 취하려고 하고, 그 상황은 점차 확장된다.


누군가 길을 지나가다가 툭 치는 상황에서도 짜증을 느끼기도 전에 음식 섭취에 대한 욕구를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인식하고 행동을 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다른 대체 행동으로 감정을 인식하지도 않은 채 습관적으로 폭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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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모습에 별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멈출지 모르지만,(물론 다음번에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다이어트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은 음식으로 풀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제거 행동에 빠진다. 그것은 음식물을 토해내는 구토가 될 수도 있고, 하루에 몇 시간 이상을 운동하는 운동 강박증, 설사를 유도하는 약물 복용 등이 있다.


운동이 좋아서, 다음번에는 다른 운동도 도전해보고 그러는 것과 관계없이 오로지 열량 소모를 위해 하체 근력 운동을 한다든가, 유산소 운동을 몇 시간 동안 하는 것이 운동 강박증이다. 소위 ‘헬창’들이 순수하게 근육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몇 시간씩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헬창들의 근력 운동은 무언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함이고, 운동 강박증들의 운동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고의로 손실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헬창들이 무엇보다 운동하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과 다르게, 운동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건강을 챙기지 않고 몸을 가능한 최대로 혹사한다. 그래야 음식을 마음껏 먹은 자신에게 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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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의 두 주인공은 결국 자기를 옭아맨 외모강박증을 버리고 편한 옷을 입고,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쬐는 불빛 밖으로 이동하려고 노력한다. 두 개의 빛나는 조명 아래에 선 두 명의 여자.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은지 그들은 꽤 망설이고, 다시 안전한 불빛 아래로 돌아오려고 한다. 그러다 마침내 어두운 곳이든 밝은 곳이든 개의치 않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극이 막을 내린다.


요즘은 종종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그 시절의 강박증에 대해 의문을 가지곤 한다. 나는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왜 날씬하려고 했을까? 왜 말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왜 평균 몸매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아무리 살이 쪘을 때도 S 사이즈, M 사이즈의 옷이 들어갔으니 입을 옷이 없어서라는 말은 핑계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오히려 다이어트를 했을 때가 더 몸이 아팠으니 건강을 위해서 살을 뺀다는 것도 눈속임이다.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날씬해지고 싶다는 것은 전혀 욕을 들을 일이 아닌데도 그 말 한마디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 오랜 기간 변명을 하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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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짜장면은 건강한 음식이 아닌 걸까? 수많은 미디어가 그렇게 말해서 닭가슴살, 고구마, 채소가 가장 건강한 건 줄 알았지만 채식주의자들은 닭가슴살을 먹는 것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죽느냐, 차에 치여 죽느냐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즉, 내가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 음식을 챙겨 먹었던 것은 거짓말인 셈이다. 열량이 낮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불만족스러워하는 자신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건강하게 살자, 고 했던 변명이다.


그렇다면 채식을 한답시고 과일 몇십 개를 폭식하듯 먹는 식습관은 과연 건강한 것인가? 위가 너무 늘어나 위하수증에 걸린 사람도 있는 걸 보면 꼭 그게 올바른 방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한계지점에 이르기까지는 분명 인류는 효율적인 식습관을 가지도록 진화했을 테니 말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로 온갖 건강한 음식의 종류를 나열하며, 다이어트를 하라고 강요하지만 내가 또 충격받은 것은 친구 블로그에서 봤던 “왜 배가 터지게 먹어야 하느냐”는 말이었다. 그렇다, 왜 나는 1년 반 동안 배터지게 먹으려 했을까? 그렇게 먹으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몸을 바랐을까? 배 터지게 먹고 제거를 해버리는 동안은 살이 찌지 않았지만, 제거를 그만둔 순간 한 달  반만에 급격하게 15KG 가까이 쪘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가 있을까.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는 나를 정말 완벽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연극이었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아무도 너에게 관심 없다”고 하지만, 튀어나올 뱃살과 겨드랑이 살, 덜렁거리는 허벅지 안쪽 살은 자기 관리를 성실하지 않음에 대한 비난의 증거가 된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쁘고 날씬한데, 나만 못생기고 뚱뚱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모두가 연예인이 될 수는 없고, 각자 삶에서 해야 할 일과 집안일 등등이 있는데 몸매 관리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에도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서 하루의 1/4 가까이 운동과 식단 관리에 투자하고 있다면 너무나 자기 발전에 큰 제약이 생기는 것 아닐까. 물론 점점 더 아름다워지겠지만, 정말 당신의 삶에서 아름다움이란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몸매 관리를 버릴 수 있었고, 참 신기하게도 두 달 만에 5㎏ 정도가 빠졌다. 나는 원래 음식에 이끌리는 타입의 식욕이 많은 사람이 아니며, 기초대사량이 높지 않아 음식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 몸인데도 억지로 많은 열량을 채워 비정상적인 무게가 되었었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을 내려놓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아름다움만이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이 있고, 다이어트만 하며 좁은 세상에 갇혀있기에는 삶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진다.


모두가 각자 잘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각자의 유전자에 따라서 생긴 얼굴과 몸매가 있는데 왜 모든 사람이 정형화된 하나의 미를 위해 강박을 가져야 하는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에게 양보하기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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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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