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5가지 사랑을 담아,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안드레 애치먼이 노래한 사랑에 관한 장편소설
글 입력 2019.07.3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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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변주곡'은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으로 유명세를 얻은 안드레 애치먼이 20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총 다섯 편의 사랑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폴'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이 사랑 이야기들에는 어린 시절의 날카로운 첫사랑, 사랑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 짝사랑, 향수에 가까운 젊은 날의 사랑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래도 사랑이라는 사람과 사람 간의 깊은 관계를 그린 작품이라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타인과의 진실된 사랑, 혹은 '삶의 포도주'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공감하기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릭터의 생각이나 심리, 혹은 행동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그냥 작 중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전개나 인물의 양상이 좀 더 흥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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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인 첫사랑은 화자인 '폴'의 어린 시절의 첫사랑에 대한 것이다.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유명한 전작인 '그해, 여름 손님 (Call me by your name)'을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본 적은 있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첫 번째 단편 '첫사랑'을 읽을 때 왠지 'Call me by your name'이 많이 떠올랐다.

첫사랑만이 가진 특유의 꿈같은 아름다움, 불안감, 풋풋함, 봄날의 환상이자 단꿈 같은 느낌이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마다 마치 무더운 여름날 분홍빛 복숭아의 솜털처럼 손끝으로 눈으로 코끝으로까지 감정들이 모두 전해지는 듯했다. 작가의 작 중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와 표현은 놀랍도록 예리했다. 폴의 첫사랑인 목공 조반니도, 만프레드도, 모드도 클로이도, 실제로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사실감 넘치고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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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찌 된 일인지 계속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름이 거의 언급만 되던 수준인 만프레드라는 인물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짝사랑 상대로 나오거나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화자와 또 다른 인물과의 아련한 과거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 해마다 계절이 돌아오듯이, 시계의 침이 돌고 돌아 언제나 12를 지나치듯 말이다.

화자의 사랑도 그렇게 계속 돌아오는 듯했다. 여기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랐다. 인간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또다시 만들어지는 거대한 흐름이자 사상인 존재의 무거움이 떠올랐고, 폴이 많은 연인들을 만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인간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여유 넘치고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것.

특히나 읽으면서 가장 호흡이 길었다고 생각한 '별의 사랑' 챕터에서 폴과 클로이의 이야기에서 이 '가벼움'이 많이 느껴졌다. 이들의 관계는 현실 도피, 혹은 회피에 가깝다. 이들은 끊임없이 과거 대학생 시절 함께 고전문학을 번역하던 그 풋풋했던 젊은 날들을 떠올리며 남편과 아이가 있음에도, 혹은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이상적인 파트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4년마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다.

폴이 클로이이고, 클로이가 폴이기 때문에 서로가 하는 생각과 심리가 똑같다고. 본디 둘이 한 사람이라고. 클로이라는 인물의 심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들을 툭툭 내뱉는 클로이가 인상적이기까지 했다.


'그것들은 한 여정에 속하고 난 다른 여정을 얘기하는 거야. 우리가 4년마다 발을 헛디뎌 들어갔다가 나오는 인생. 주변이 온통 어두울 때 너와 내가 멀리서 엿보는 흐릿한 불이 켜진 삶.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그림자보다도 우리에게 가까운 삶. 별의 삶. 내 삶과 함께인 너의 삶. 누군가 저녁 테이블에서 한 말인데 모든 사람에게는 아홉 가지 버전의 삶이 주어진대. 그중에 진탕 마시는 삶도 있고, 살짝 맛만 보는 삶도 있고, 또 입도 대지 않는 삶도 있대.'



그리고 '아홉 가지 버전의 삶'이라는 표현을 보니, 또다시 내가 가장 좋아해 마지않는 영화인 '미스터 노바디'가 떠올랐다.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역시 3개의 서로 다른 삶을 상상하고 꿈꾸며, 과거의 자신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펼쳐나가는 씬이 눈앞에 그려졌다.

'머리에 불을 밝힌 아홉 개 볼링핀, 내 아홉 개 삶, 자신도 초대받을지, 자신을 위한 시간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태어나지도 않고 살지도 않은 아홉 개 미완의 자아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쩌면 폴과 클로이의 이야기도 이 둘의 'What if'로 시작하는 달콤한 상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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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마치 폴이라는 중심인물을 둘러싼 인물들의 끊임없는 스핀 오프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제목이 가지는 의미를 깨달았다.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타이틀이 포괄하는 것들을. 우리의 삶도 변주곡이다. 항상 같은 중심 멜로디가 있지만, 실은 자세히 들어보면 조금씩 다 다른 멜로디다. 퍼즐처럼 맞추어나가는 폴의 변주곡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안타깝고 먹먹하고 한편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어쩌면 한편으로는 가슴 한편이 미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딱 지금 무더운 한여름날, 간이의자 하나를 가지고 나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읽거나, 푸른 녹음이 우거진 숲속 오두막에서 혹은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수수께끼 변주곡
- Enigma Variations -


지은이 :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36쪽

발행일
2019년 07월 17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 André Aciman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출생. 뉴욕대학에서 작문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며 가족과 함께 맨해튼에 살고 있다. 1995년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로 화이팅 어워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1997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해, 여름 손님》으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는 《아웃 오브 이집트(Out of Egypt)》 《폴스 페이퍼스(False Papers: Essays on Exile and Memory)》 《프루스트 프로젝트(The Proust Project)》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여덟 개의 하얀 밤(Eight White Nights)》 《알리바이(Alibis: Essays on Elsewhere)》 《하버드광장(Harvard Square)》이 있다.


옮긴이 정지현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거주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소설과 아동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스위밍 레슨》 《셰이프 오브 워터(공역)》 《에이번리의 앤: 빨간 머리 앤 두 번째 이야기》 《피터 팬》 《오페라의 유령》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호두까기 인형》 《비밀의 화원》 《하이디》 《핑크 리본: 세계적인 유방암퇴치재단 코멘 설립자의 감동 실화》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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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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