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걷는 사람, 하정우 [도서]

글 입력 2019.07.3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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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훌쩍 떠나 걷고 싶어지는 책을 읽었다. 배우 하정우씨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이다. 나만 해도 굳이 찾아본 것도 아닌데도 하정우씨가 출연한 영화를 꽤나 많이 봤다. 장르 불문하고 어떠한 역할이든 잘 어울리는 그의 연기를 좋아한다.


예술가로서의 하정우 역시 좋아한다. 그의 괴상하고 무표정한 얼굴들은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무명에서 유명 영화배우로,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내는 작가로, 영화를 직접 만드는 감독까지 거침없는 그의 도전의 바탕에 어떤 동력이 있었을까 했더니 바로 걷기가 있었다.

 

그는 걸어서 출근을 한다. 매일 보통 1만보를 걷는 다고 한다. 운동하는 날에는 2만보, 심지어 걷기 위해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면 하루 종일 걷는다고 한다. 그냥 형용사구가 아니라 정말로 걷는 사람이다. 나도 간혹 많이 걸을 때 핸드폰에 저절로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어플로 확인해보면 2만보 정도를 걷는 편이다. 그럴 때면 집에 와서 그대로 방전이다. 그런데 하정우씨는 일상이 이정도이다.

 


영화 <아가씨>를 찍을 때는 영화사가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쯤에 있었는데, 나는 강남에서부터 마포까지 거의 매일 걸어다녔다. 출근길 편도 1만 6천 보. 이 정도면 상쾌하다.



그의 국토대장정에 대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분 ‘남자 최우수상’ 후보로 올라있었던 그는 작년에도 같은 상을 받았기에 별 생각 없이 공약으로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말을 했다. 결과는 두둥 수상.


배우 공효진씨도 동참한 그의 국토대장정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577 킬로미터를 완주하고 난 후 뿌듯함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지만 그는 오히려 허무함을 느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생각났다. 등산이 그랬고, 친구들과 떠난 걷기 여행이 그랬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길 끝에서 허무함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걷기가 주는 선물은 길 끝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먹먹해지는 말이기도 했다. 이 길의 끝에 있을 특별함을 기대하며 나는 하루하루 버티며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를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는 그의 삶의 자세를 따라 나도 매일 웃으며 걷고 싶어졌다.

 

예술가로써의 하정우의 이야기도 임팩트 있었다. 요즘 심심치 않게 인터넷에 마약과 성폭력으로 얼룩진 연예인들의 실상을 담은 기사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는 하정우씨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정우씨는 의외로 바른 생활을 하는 분 같네요?”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좋은 작품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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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삶에 나쁜 것은, 내 작품에도 좋지 않다. 부정적인 충동은 절대 예술가의 원료가 될 수 없다. 예술가의 삶은 단 한순간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이를 통해 인간적으로도 예술적으로 한 걸음씩 진보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중간 생략) 단순한 비유이지만 나는 예술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때로는 두렵고 또 때론 지루한 이 모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걷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저것 도전하는 그의 삶에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이렇지 않을까 싶다. 멋있다와 질투어린 시선의 왜 저래. 한 가지에 진득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그의 성격에 관해서 그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능력’이라는 멋있는 말로 표현했다. 가장 어린아이다운 본능을 가진 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어른들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며 멋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시선을 닮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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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는 노력에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을 한다. 가끔 휴일에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뒹굴어도 개운해지지 못하는 기분과 함께 시간만 날린 거 같은 찝찝함이 들어서 아쉬웠는데 나의 휴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한 것처럼 일단 행동으로 이끄는 습관적인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내가 해온 노력이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도 한다. 늘 새로운 강도로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주 뜨끔하게, 적당히 움직이며 자기 합리화하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해준 말이었다.

 


아 힘들다... 걸어야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삶은 생각보다는 심심했지만 단단함이 느껴진다. 혼잣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하며, 매일을 걷고 또 걷는 그의 삶의 자세를 내 삶에 적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독서 모임 때 읽은 책으로 소개되었던 <운을 읽는 변호사>와 <걷기 예찬>이라는 책도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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