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02. 독신주의가 아니라 비혼주의입니다

4인 가족의 정형성이 내게 남긴 것 (제도)
글 입력 2019.07.2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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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독신주의가 아니라 비혼주의입니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서 친구와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의 그 깊은 이야기는 곧 각자의 가정사로 이어졌다. 사회가 정한 가족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 가정환경을 살았던 우리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되어 가정적인 남편과 함께 대략 두 명의 자식을 키우는, 그 이상향을 비밀스럽게 공유했다.

 

가족들과 번듯한 외식 한 번, 여행 한 번 다녀본 적 없었던 사춘기 시절의 나는 모범적인 가족이라는 것을 정말 많이 부러워했었다. 미디어에서, 길거리에서, 관광지에서 등등 도처에서 보이는 그 가족들은 내 눈에는 항상 밝은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 대해 상상할 때 안정적인 가정은 항상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 그때의 나는 결혼을 대입, 취업과 같이 당연히 넘어야 할 인생의 관문으로 인식했었던 것 같다.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기혼자일 것이라는 예상만은 확고했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졌다. 내가 함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던 그들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고 함부로 불행하다고 단정 지었던 우리 가족도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토록 우리 집의 가정환경을 비관했지만, 나는 그 가정환경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덕분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물론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는 없었다.

 

몇 년 뒤의 나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전형적인 구성원의 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성장했다. 또한, 페미니즘을 접한 뒤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정은 행복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거대한 억압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의 형태도 조금 바뀌었다. 더 이상 막연하기만 한 안정적인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회는 결혼을 의무로 여기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항상 ‘저렇게 말하는 애가 제일 먼저 결혼한다.’라거나 ‘네가 아직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 뒤따라왔다.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의 얼굴엔 항상 웃음기가 가득했고 악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과정에 익숙해져 있던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요즘 여자애들은 어떤 남자랑 결혼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 질문에 나는 ‘요즘 결혼을 아예 안 하려는 애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원래 하던 일에 다시 몰두했다. 그리고 내가 그 대화를 나눴는지도 까먹을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미래는 생각 안 하는 거야? 누구의 보살핌도 안 받고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나는 분명 결혼을 안 하려는 애들이 많다고 했지, 혼자 사려는 애들이 많다고는 안 했다. 내가 말한 것은 비혼주의였고 그가 받아들인 것은 독신주의였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비혼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가 너무 소중해서 내 인생에 더 많은 선택지를 부여해주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그의 말처럼 결혼하지 않으면, 보살펴줄 가족 없이 혼자 살면 분명히 그것대로 사는 데에 불편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가부장제에 편입할 수는 없었다. 그가 던진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그에게 나의 웃음은 동의의 의미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온전히 나의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에 왜 이렇게 많은 제동이 걸려오는 걸까? 정말 결혼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찰나의 대화였지만, 혼란은 길었다. 나의 그 혼란은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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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황선우의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실제로 같이 사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동거라이프를 담아낸 책으로, 4인 가족이 기준인 사회에서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구의 형태를 제시한다. 40대의 능력 있는 두 여성이 함께 사는 그 일상은 지금의 내게 새로운 이상향이었다. 10년 넘게 지속했던 혼자 사는 생활에 지친 두 사람은 같이 사는 상대방을 만남으로써 전혀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함께여서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함께여서 버틸 수 있는 동거를 유쾌한 문체로 풀어내서 가벼운 마음으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장에 다다르자 그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글을 읽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은 병원에서 아픈 동거인과의 관계를 기재할 때, 또 다른 가족과 같은 관계인 자신을 그저 ‘지인’이라고만 표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내용이었다. 병원에서 가족의 동의를 받는 절차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가족의 정의는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의 제도 아래에서의 가족은 오로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족이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라면? 그보다 더 가까운 동거인이 가족이지 않을까? 사회는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단호하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혈연이 가족이라고 답한다.

 

책에 아주 인상적인 문장이 등장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같이 산다는 건 단순히 한집에서 지낸다는 것을 넘어서 내 삶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 책의 저자들은 내 곁에서 나와 삶을 공유하는 동거인의 존재를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도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세상은 달라졌고 그만큼 새로운 형태의 가족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이성애 중심적인 전형적인 4인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와 우리 5자매는 다행히 피로 맺어진 관계로, 법적으로 인정받는 가족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가족의 형성은 애초에 엄마가 아빠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분명히 이성과의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족은 책처럼 마음 맞는 친구일 수도 있고 동성 연인일 수도 있다.

 

책장을 덮고 나를 혼란스럽게 한 그 한 마디에 대해 생각했다. 그 한 마디 안에 담긴 건 단순히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건 오로지 남녀의 결혼으로서만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한국 사회의 편협한 가족 제도였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이 험난한 세상을 같이 헤쳐나갈 수 있는 동반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 많은 사람이 원하는 저마다의 가족의 형태가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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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비의세상
    • 잘 읽었습니다 '나는 분명 결혼을 안 하려는 애들이 많다고 했지, 혼자 사려는 애들이 많다고는 안 했다. ' 이 문장이 띵하네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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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금미
    • 비의세상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 그대로 결혼을 안 하는 것과 혼자 사는 건 다른 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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