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를 위한 전시회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 극장

뛰어다니고 말하며 즐길 수 있는, 아이를 위한 전시회
글 입력 2019.07.29 18: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이의 책과 어른의 책은 차이가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글이 적고 대신 그림이 가득하다. 아직 한글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천천히 글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능력을 키우게 도와준다. 앤소니 브라운의 그림책에는 아이들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갖가지 이야기와 단서가 숨어있다.


이런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앤서니 브라운의 기존 원화와 영상, 그림 속 배경을 현실로 옮긴 공간뿐 아니라 한국 작가와 협업한 작품까지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앤서니브라운의 행복극장展] 포스터_웹용최종.jpg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은 곳곳에서 초현실주의 작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의 그림은 일상을 뒤집어 낯설게 하기, 무궁무진한 상상을 유도하기, 정상과 비정상을 뒤엎어 편견 없애기 등을 주요 방식으로 사용한다.


<거울 속으로> 관에 가면, 악어의 이가 바나나로 변해있거나, 건물 하나가 엄청나게 커다란 고릴라의 집으로 변해있거나, 밥통이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 속이나 책 속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보고 있자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는지 신기하고 웃음이 나온다.


동화책 작가의 전시회다 보니 아이들의 비중이 높았는데, 대부분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대화하며 즐거워 보였다. 전시회장 중앙에서는 대놓고 다른 그림 찾는 공간도 있어 아이와 어른이 경기하듯 찾아내고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달라질거야_Changes_1990.jpg
 


<행복 미술관>에는 앤서니 브라운이 다양한 미술 작품을 고릴라로 변형해 그린 작품을 전시한다. 고릴라를 싫어하지 않는 아이라면 고릴라로 변한 작품을 보면서 웃고, 즐기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구경하러 갔을 때, 같은 관에 있던 아이는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과 뭉크의 절규를 합쳐 그린 작품을 보고 ‘절규하는 원숭이 윌리가 결혼하는 원숭이 밀리를 사랑했는데 결혼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왜 뭉크와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합쳐두었나 했더니. <행복 미술관>에 있는 패러디 작품 대다수를 이런 식으로 가벼우며 재미있게 표현한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표현된 미술 작품을 보면서 유명한 그림이나 화가에 친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나아가 예술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 안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래 봤자 어린아이들을 위한 전시회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다. 뭐가 그렇게 길겠어. 자신만만했지만 나올 때는 녹초였다. 생각보다 전시회장이 넓고, 그림과 영상, 설치 미술이 많아서 돌아다니다 보면 금세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팠다. 다행히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정중앙에 벤치가 있다. 대체 왜 있는지 궁금했는데 30분쯤 지나자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체력이 좋지 않지만 어른인 나도 금방 지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물론 내 생각과 다르게, 의자에 앉은 아이는 한 명도 없고 대부분이 열심히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놀았지만.



전시전경 (2).JPG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 <행복 도서관>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빈백 소파 여러 개가 편안한 독서를 유도한다. 전시회장 속 작품이 그려진 그림책 대부분이 도서관에 있다. 전시회를 보면서 흥미 있게 본 작품의 책을 전시회장 내에서 읽을 수 있다.


단순히 그림만 봐서는 그림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 빈백에 눕고 싶은 충동에 잠시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어른이 읽기에도 괜찮은 내용의 책이 꽤 많았다.


<거울 속으로> 관에 전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림 중 ‘어떡하지?’라는 책은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아이의 두려움을 초현실적이 그림으로 표현한다. 아이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모험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어른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일어나는 비슷한 불안에 공감한다.


‘윌리와 휴’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약점이 있으며 진정한 친구는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하여 강점만 남게 해준다는 교훈을 준다. ‘축구 선수 윌리’ 역시 괜찮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정에게 받은 행운의 축구화 덕에 자신이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윌리는, 다른 축구화를 신고도 키가 두 배는 되는 고릴라를 모두 제치고 골인한다. 책은 아이들에게 노력은 배반하지 않으며 징크스 역시 깰 수 있다고 말한다.


아쉬운 점은 1관 <리틀 뷰티> 뒤쪽에 있는 영상이었다. 영화 ‘킹콩’에 감명을 받아 만화로 재해석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은 영화 속과 다르게 마릴린 먼로의 외관을 하고 있다. 영화 속의 배우에게 무례한 짓이라는 생각도 슬쩍 스쳐 지나가지만,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걱정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영화고, 원작 캐릭터가 그렇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여아도 관람하러 오는 2019년 전시회에 굳이 이 작품을 설치한 사실은 이해할 수 없다. 어릴 적에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매번 누군가에게 캐릭터만 보아오며 자란 나이기에 더 신경이 쓰인다.



킹콩_ King Kong_1994.jpg
 


윌리가 주인공인 동화책에 나오는 여주인공 원숭이 ‘밀리’의 외관도 편견을 심어주기 좋다. 원숭이인데 붉은 립스틱과 마스카라를 하고, 항상 예쁜 꽃무늬 원피스만 입고 다닌다. 원숭이이기에 굳이, 부득이하게 성별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림책에서 밀리가 하는 일은 윌리에게 구해지기, 데이트를 하기 두 가지뿐이다.


특히 ‘겁쟁이 윌리’라는 책에서는 겁쟁이였던 윌리가 더는 무시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구해지고, 넌 내 영웅이라고 말하는 게 다다. 이 책도 ‘킹콩’ 영화처럼 190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밀리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된 게 아닐까.


‘겁쟁이 윌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겁이 많고 사소한 것에도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는 윌리는 어느 날 만화책에서 언제까지 겁쟁이로 살 거냐는 문구를 보고 운동을 시작한다. 마침내 엄청나게 몸집이 커다랗고 힘이 센 원숭이가 된다. 운동을 통해 다시는 무시 받지 않은 이야기는 제법 좋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을 해도 몸집을 불릴 수 없거나 혹은 여러 사정상 운동을 할 수 없는 아이의 경우 괴롭힘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약하고 사과를 잘 하므로 놀림당하던 아이가 강해지자 놀림을 받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모든 그림책이 한 가지 주제만 따라간다면 그만큼 재미없고 낡은 세상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강해지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제는 어딘가 위화감이 든다.



겁쟁이 윌리_ Willy the Wimp_ 1984.jpg
 


‘윌리와 휴’에서 윌리는 비록 강인한 친구의 도움으로 괴롭힘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반대로 덩치가 크고 위협적인 휴가 두려워하는 건 작고 겁 많은 윌리가 없애준다. 책은 진정한 강함은 힘과 덩치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두 작품에서 드러내는 강함에 관한 이야기는 제법 차이가 난다.


그림책이나 ‘킹콩’ 영상 자체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고, 그 당시에는 이러한 점이 문제점으로 지목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지금 와서 그림책 내용을 뜯어고치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더 어불성설이다. 아예 읽지 못하게 하기에는 좋은 그림과 내용이 많다. 전시회가 어떤 방식으로 기획되어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킹콩’ 영상의 경우 전시회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한 번 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회를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차별적인 부분은 과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꼭 여성이라고 도와줄 누군가를 무작정 기다릴 필요가 없고, 놀림 받는 남성이라고 해서 몸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전시회를 온 목적이 생각의 폭을 넓히고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함이니만큼, 관람 시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김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