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동화 같은 이야기, ‘리틀잭’ [공연]

Review / 뮤지컬 <리틀잭> / 2019년 7월 13일~9월 8일 / 대학로 TOM씨어터
글 입력 2019.07.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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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틀잭’은 황순원 작가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모티프로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줄거리를 용감무쌍하게 차용한 이 작품은 극의 배경을 1960년대의 영국 음악밴드로 가져와 새로운 볼거리, 들을거리의 선사를 시도한다.

 

익숙한 서사와 기술적 차별화(CG, 연출기법 등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력, 장르 간의 독특한 조합 등 모든 새로운 테크닉을 지칭)의 조합을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찬성한다. 예술과 콘텐츠는 다르니까.


예술에 비해 콘텐츠는 훨씬 더 상업적일 필요가 있고,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 콘텐츠의 과업이니까. 해서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익숙한 서사 위에, 이익의 최대화를 위한 기술적 차별화를 얹는 것은 대다수의 ‘콘텐츠’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니까. 나는 이 조합에 적극 찬성이다.

 

하지만 다만 궁금해진다. 왜 모두가 ‘새로운 익숙함’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색다르다고 평해지고, 누구는 뻔하다고 평해질까.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리틀잭’은 후자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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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나의 기괴한 취향을 감안한다면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이 작품은 나의 취향과 딱 들어맞아야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컸던 이유에 대해 생각했고, 그 결과 알게 되었다. 내가 이뤄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리틀잭’은 정말 동화같다. 이 ‘동화같다’는 표현에는 칭찬의 뜻도, 비난의 뜻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동화’같다. 혹자는 그렇게 말했다.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모양새로 온다고.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때문에 사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다르고, 때문에 사랑의 모양은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즉 장애물은 사랑의 모습을 결정한다.

 

둘의 사랑에 있어서 방해물은 두 주인공의 경제적 상황의 차이, 그로 인한 부모의 반대, 그리고 여주인공의 병환이다. ‘소나기’의 그것과 다소 유사하고, 나에게는 이러한 장애물의 반복이 새롭지 못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장애물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만큼 나에게는 이야기가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까지 주위에서 불치병으로 이별을 맞이한 커플을 본 적이 없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가상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나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리틀잭’의 동화같음이 나에게는 약간 아쉽게 느껴졌다. 만약 말랑말랑하고 정말 ‘이야기’스러운, 디즈니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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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단편적으로 그려졌다는 점 역시 다소 아쉬웠다. 특히 여주인공 앨리의 캐릭터가 그러했다. 앨리가 어쩌다가 잭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해 4년이나 같이 살게 된 건지, 그 내막이 밝혀지지 않아 앨리의 상황에 감정이입 할 수 없었다.


더불어 앨리가 자신의 병환을 잭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단지 편지 한 장이었다는 점 역시 아쉽다. 관객들이 두 주인공의 양쪽의 심정에 모두 공감하고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가슴 아파해야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완성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관객이 앨리의 감정에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은 듯하다.

 

답답한 상황 역시 종종 등장했다. 아무리 1960년대가 이야기의 배경이라고 한들 아버지가 딸을 자신의 소유처럼 쥐고 흔드는 상황이 그려지는 것이 2019년의 시선에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빠르게 소비되는 스낵 컬쳐만이 만연하는 2019년의 세상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깊은 감정이 베어 나오는 작품을 각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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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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