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서가의 독서, 전자책과 종이책 사이에서 방황하기 [도서]

글 입력 2019.07.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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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장서가가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에 읽지 못한 책은 넘쳐나는데 훌륭한 신간은 끝도 없이 출간된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 ‘언젠가는 읽겠지’ 목록에 넣어 둔 책도 한가득이다. 그 뿐인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책들은 꼭 번쩍번쩍한 리커버판으로 출간되어 나를 유혹하고, 독립서점에 방문하면 주인장의 소신이 담긴 큐레이션이 또 나의 주머니를 자극한다. 정말이지 책 살 이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렇게 한 권 두 권(알라딘 굿즈를 받기 위해서라면, 네 권이 되기도 한다) 사 모은 책들이 쌓여갈 때면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힌다. 하나는 돈의 부족이고, 또 하나는 공간의 부족이다.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나의 귀차니즘이라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존재한다. 게다가 대출기한 내에 완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져 돈과 공간 절약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주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아니다.

돈 부족을 해결하려면 다른 길도 존재한다. 중고서점을 애용하는 방법이다. 한때 나는 중고서점에 꽂혀서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그래서 전혀 돈 절약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신중하게 새 책을 소량 구매하던 때보다 더 방탕한(?) 책 소비라는 결과를 낳았다. 책장이 미어터지자 나는 보부상처럼 책을 이고 지고 가서 서점에 되팔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눈을 돌리게 되는 매체, 바로 전자책이다. 종이책보다 저렴한 가격, 손 안에 몇 권이고 담을 수 있는 용량. 이보다 매력적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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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자책을 구매했던 날.


전자책 리더기를 큰 맘 먹고 구매하고 나서 한동안은 신이 났다. 스마트폰에 비해 눈도 한결 편안했고, 새로워진 독서 환경 덕분에 책 읽을 맛이 난다고 할까. 두꺼운 책들도 작은 공책만한 이 기기에 들어가면 이동 중에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종이책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책장 정리에 목맬 필요도 없겠다며 희망에 부풀었다. 돈 절약은… 사실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몇 달쯤 지나니 종이책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책을 넘길 때의 감촉이 그리운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괴로움은 서점에 들릴 때마다 수많은 종이책들이 나에게 러브콜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괜시리 책 커버만 만지작거리고 휙휙 넘겨보다 서점을 나설 때면 우울했다.

손에 남은 책의 느낌과 서점의 향기, 흥미로워 보였던 목차와 서문이 자꾸만 떠올라서 결국 나는 종이책으로 반쯤 돌아오게 되었다. 독립서점에 들리면 꼭 한 권씩 손에 쥐고 나오게 되었고, 맘에 드는 신간들은 기억해 뒀다가 한 달에 한 번씩은 알라딘에서 한 번에 주문하는 습관도 복귀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을 묵혀두는 것은 아니다. 전자책과 종이책, 두 매체를 전부 경험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책 구매 규칙’ 비슷한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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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Vs. 종이책?


일단 전자책은 압도적인 실용성이 장점이다. 한 권이 넘어가는 장편소설은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힘든데 전자책은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 합격이다. 게다가 밤에 스탠드 하나 켜두고 침대에 엎드려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밝기 조절이 가능해 부담스럽지도 않다. 시력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뭔가 대단히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 소설을 읽을 때는 전자책이 더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이다. 책의 물리적인 요소를 다 없애고 콘텐츠에만 집중하도록 한 전자책의 구성이 효과를 발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서점에서 파격적인 대여가로 행사를 여는 시기에는 리더기가 없으면 아쉽다. 한 번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여유가 되지 않았던 책들이 행사를 하면 나는 꼭 참여하고는 한다. 계획에 없던 책을 접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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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종이책으로


반면 종이책은 그 강렬한 소장욕이 큰 장점이 된다. 실물 책, 특히 새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은 읽으려고 산다기보다는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 라는 누군가의 말도 있지 않나. 물론 돈과 공간이라는 문제를 잘 고려해서 적당히 소비한다면 장서 그 자체가 충분한 만족이 된다.

그리고 두꺼운 교양서의 경우에는 가능한 실물 책으로 읽는 게 좋다. 밑줄을 치면서 읽기 좋고, 앞장으로 돌아가서 복습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공책이나 노트북에 따로 필기를 하면서 읽는 방법도 선호해서 전자책 또한 애용하지만, 책에 직접 필기하는 걸 좋아하거나 중고로 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종이책이 더 맞을 것이다.

가벼운 에세이집 같은 책이나 시집류도 종이책이 좋다. 왜냐면 나는 에세이는 신간 중에 고르는 경우가 많은데, 열에 아홉은 서점에서 보고 바로 구매할 때가 많아서 그렇다. 또 무게도 내용도 무겁지 않아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시집 역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찬찬히 음미하는 편이 낫다.

*

이렇게 쓰고 보니 어째 종이책을 더 강력하게 옹호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달린 문제다. 둘 중 하나를 고집하기보다 (그렇게 하기도 어렵겠지만) 나처럼 나름대로의 패턴을 만들어 두면 고민을 덜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상, 돈이든 공간이든 절약하기란 아무래도 틀린 일인가 보다. 종이책을 포기할 각오가 아니라면, 가난한 통장 잔고와 가득 찬 책장은 감수해야 할 듯싶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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