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공적인 삶의 터전, 도시의 빛과 색 [시각예술]

세화미술관의 두 번째 도시 주제 기획전 <팬텀시티>
글 입력 2019.07.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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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의 경제 성장 시기와 함께, 우리나라는 그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도시화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도시화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우리들은 도시 안에서 모든 필요를 해결하고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도시에 미감적 가치보다는 수단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예술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도시의 흔하디흔한 모습들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 새롭게 해석했다. 그리고 태광그룹 세화미술관은 작년의 <원더시티>전에 이어 올해에도 <팬텀시티>전을 개최해 도시 주제 기획전을 연례전으로 굳히며 ‘도심 속 미술관’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팬텀시티>전은 올해 4월 3일부터 월 21일까지 진행되었으며 권용래, 러봇랩, 이창원, 이희준, 정정주, 최성록, 최은정, 혜자, 홍성우 작가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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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들어서면 최은정 작가의 회화들이 마치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도시는 화려한 색감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무성한 식물들이 도시를 점령하듯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최은정 작가는 식물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하게 변해가는 모습에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해 탄생시킨 풍경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심 속 빌딩들을 에워싸고 있는 식물들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결국 찾을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모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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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정정주 작가의 <Grand Figure>에 대해 전시 소개문에서는 ‘경계가 불분명한 미약한 존재로 가득한 도시의 환영’을 표상한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백색의 빛을 내뿜으며 전시장의 기둥처럼 우뚝 서 있다. ‘경계가 불분명한 존재’란 많은 타인들,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바삐 움직이는 우리들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들은 거대한 도시에 비하면 미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결국 그 도시를 구성하는 것 또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존재성은 잊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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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작가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다. 흔들려 찍힌 사진처럼 형체가 뭉뚱그려진 도시의 스펙터클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바삐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림 속 광경은 기계적으로 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가치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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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작가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암울한 현대사를 품고 있는 네 도시를 연결한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소식까지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무리 잔혹한 사건이 벌어져도 지금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창원 작가의 <네 도시: 바그다드, 평양, 서울, 후쿠시마>는 멀게만 느껴졌던 도시들을 하나의 도시처럼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각기 다른 도시들은 유연한 환영과도 같은 빛으로 이어져 새로운 형상를 만들지만 결국에는 영구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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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러봇랩은 <AVENUE 1>을 통해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빛으로 재탄생시켰다. 복도처럼 좁고 긴 전시실의 천장에서 수평과 수직으로 매달린 조명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색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가변성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롭게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 아래를 걸어가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변하는 것은 도시와 긴밀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의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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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 작가는 공중에서 바라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 감상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이전에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으로 도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영상 속에 등장하는 풍경이 우리에게 익숙한 실제 지역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들은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의 배경이 되어 계속해서 사라지고 등장하면서 왜인지 모를 어색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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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 작가는 극사실적인 디지털 작업으로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을 담는다. 미술관에서 마주한 흔하디흔한 아파트의 전경, 그림자가 드리운 아파트의 흰 벽면들은 우리에게 도시의 필수 요소인 아파트라는 건축물 속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가 지닌 일정하고 곧은 직선들, 그리고 획일적이라는 단어로만 받아들여졌던 반복되는 이미지들이 미적인 무언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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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작가는 도시풍경을 기하학적인 사각형 형태로 추상화한다. 부드러운 색감으로 일정하게 칠해진 사각형들은 평면 그 자체처럼 보이지만, 비스듬히 보면 구역별로 두텁게 칠해져 나름의 입체감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시실에 트인 커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 한복판의 풍경은 정제되고 말끔히 정리된 그의 작업과 어우러져 다채롭게 도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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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권용래 작가는 스테인리스로 하나하나 제작된 유닛들을 흰 벽에 설치한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유닛들은 전시실의 조명 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이 아프도록 번쩍이는 도시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피로가 아닌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


도시 외적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이미지는 지금까지 아름답다기보다는 어지럽고 기계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세화미술관의 <팬텀시티>전 속 작품들은 도시와 빛이 만나 탄생하는, 오늘의 우리들만이 지각할 수 있는 새로운 효과에 집중했다.


참여 작가들은 인공적인 우리의 터전의 이미지를 재해석하거나 환상을 더하면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세화미술관의 도시 주제 기획전이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다시 찾아올까 기대하게 만든 전시였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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