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고 싶던 달랑 한 줄, 건들면 뒤진다

왜 안 되는지 1도 모르겠기 때문에 싸운다.
글 입력 2019.07.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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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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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이렇게 시작한다. 붉은 티와 얼굴을 가린 검은 마스크. 명확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자리잡힌다.


혜화의 시위를 기억한다. 건실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던 한 남배우가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의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또 다른 가해자에 대한 증언이 나오면서 미투 운동이 퍼졌다. 공연 및 뮤지컬의 관객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펼쳤다. 성범죄자의 공연을 보지 않겠다는 보이콧 운동도 확산되었다. 결국 배우 이명행은 출연 작품에서 하차하고 1심에서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로 시작했던 집회는 여성 대상 불법촬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2018년, 대규모의 집단 시위로 번져갔다. 그동안 성희롱과 성폭행 등 일상적으로 행해지며 권력에 기반을 둔 범죄를 참고, 무시하고, 모르는 척 숨어있던 사람들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부끄럽게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혜화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랬던 것이 몇 년이 지난 지금, 혜화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자 감회가 새롭다.



그녀는 겁에 질렸다.

그녀는 매우 나약했다.

어쩔 수 없는 여성이기에.


그녀는 겁에 질렸다.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극은 번역가 일을 하는 명희가 책에 적힌 성차별적인 문구를 바꾸려다 잘린 뒤 항의 시위를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과정에서 유쾌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나와 무겁게 풀어가지만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왜 투쟁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두 선명하게 보인다. 그들의 두려움은 나의 두려움이라 더욱 와 닿는다.


부모님이 말하는 성차별적인 말과 학교의 지나친 규제, 성추행 문제와 오히려 이를 고발한 피해자를 덮어버리려고 하는 회사, 그리고 과거에 쓰던 숙어를 시대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고리타분한 글. 하란다면 해야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말, 이런다고 뭐가 바뀌느냐는 말, 모두 우리를 못 움직이게 묶던 말이다. 어느 때에는 그 말을 그대로 하는 내가 있다. 이들은 어쩌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데 왜 너만 그러냐는 말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달랑 한 줄에 적힌 작은 불편



솔직하게 말하자면, 극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공연을 보러 온 사람 중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주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공연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달랑 한 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가 늘 들었던 편견에 가득 찬 말을 뱉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초반 시간 대부분이 캐릭터 각자가 받았던 편견을 읊는 데 사용하는 건 다소 과하게 느껴진다. 달랑 한 줄의 의미도, ‘페미니즘 연극제’의 의의도 아는 사람들을 관객으로 두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공연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어도 공연이다. 기승전결 속에 주제를 잘 드러내야만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달랑 한 줄’의 초반은 주제의식이 가득해서 내용 진행이 미미했다.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좋은데, 집중력을 높여야 할 초반에 사건으로 넘어가지 않으니 인내심이 바닥난 관객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려는 걸 알면서도 지치고 만다.


두 번째, 왜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하는 여성은 유독 예민하고 깔끔한 체하는 성격으로 나올까? 간단한 단어를 영어로 쓰는 행동은 명희가 번역가라는 사실을 드러낸다기보다, 전문적인 일을 하는 여성 캐릭터의 일반적인 습관을 답습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영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아니었어도 번역을 하는 장면에서 충분히 그녀가 번역가라는 느낌을 알 수 있다. 결벽증에 가까운 깔끔한 성격은 후에 성폭행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익숙하게 보아오던 피해자의 모습이 아닐까.


반대로 남편과 다툰 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남편이 하도 말을 못되게 해서 두 딸과 친구의 집으로 찾아온 연실은 초반에 꼭 철이 없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친구의 일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도와주다가도 자기가 보고 싶은 드라마가 하면 바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버린다. 모든 캐릭터는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 성격과 성향을 엿볼 수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흔히 나오는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해 캐릭터를 철없고 드라마나 좋아하는 ‘흔히 생각하는’ 아줌마로 그려낸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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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불편했던 것은 딸 은주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다. 극 초반과 중반에, 엄마는 계속해서 너희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불편한 말을 한다. 여자가 알아서 조심해야지, 여자가 위험하게, 언니를 닮아서 얌전하게 좀 굴어 같은 말들. 그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될뿐더러 답답하고, 여성을 옭아매며, 가끔은 2차 가해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당시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이를 애써 삭히기만 하던 은주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건 결과적으로 네 행동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연실의 말이 더욱 불편하게 들렸을 것이다.


더군다나 현주가 사고를 칠 때마다 은주를 들먹이며 착한 딸, 바른 딸이라 말했으니 은주가 가지는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은주가 화를 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에게, 성희롱하는 직원에게는 단 한 번도 화내지 못하면서 연실에게만 ‘난 엄마가 그래, 날 답답하고 불편하게 해’ 하고 소리치고 제대로 된 사과도 없는 건 결국 비교적 만만한 상대에게 화풀이하는 행동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왜 진짜 권력자는 누구에게도 나쁜 소리 듣지 않고 집 안에서 편히 쉬는데 가해자지만 피해자이기도 한 엄마는 미안해하는 걸까. 왜 결국, 여자만 미안함을 느낄까. 공연에 나오지 않은 어딘가에서 제대로 사과를 했을 거라 믿고 있으나, 관객은 캐릭터가 최소한의 언질이라도 해주지 않는 일은 없는 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불편한 점에 대해 잔뜩 나열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이 극이 나쁜 극이거나, 주제와 정반대로 가는 극은 아니다. 오히려 눈물이 날 만큼 공감되고 이해되고 뭉클했다.




누구 엄마가 아니라, 연실



공연을 즐겨보는 내가 최근 가장 놀란 날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라는 뮤지컬을 봤을 때다. 혼자 사는 중년 여성 엠마에게 정부에서 노인 복지를 위해 지급한 로봇 스톤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는 공연 속 대부분의 이야기가 스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스톤은 로봇이지만, 외형이 20대인 남성 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은 엠마를 중점으로 진행되었다.


무대에서 솔로 넘버를 부르는 캐릭터도 엠마고, 닫혔던 마음을 열면서 성장하는 캐릭터도 50세가 넘은, 엠마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엠마다. 그동안 보아온 공연이 그리 다양하지는 않지만, 나이 많은 여성 캐릭터가 성범죄와 전혀 무관한 서사 속에서 주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 공연을 본 기억은 잘 없다. 관극을 하면서 다른 공연이라면 남성 노인이 여성형 로봇을 만나 변화하는 모습이 나왔겠지, 쓸쓸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달랑 한 줄’을 보면서 느낀 감정도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보면서 느낌 감정과 유사하다. 공연이 막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 극이 딸인 은주와 현주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될 거로 생각했다. 극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 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러니까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져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는 바로 연실이다. 아까 전 불편하다고 말한, 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철없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 캐릭터도 여기서는 장점이 된다. 성장하는 모습이 누구보다 크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딸에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둥 차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엄마 연실이, 나중에는 ‘걱정된다’는 이유로 시위에 같이 참여한다. ‘여자가 기 세보이게 시위는 왜 해’, ‘그러다가 누가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가만히 있어.’ 같은 말로 도움 안 되는 걱정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곁을 지켜준다. 마지막에 가서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다. 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남편에게 이혼을 간접적으로 선포하고, 마이크를 잡았을 땐 전업주부나 ‘누구 엄마’가 아닌 ‘연실’이 되어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사상과 교육, 문화에 누구보다 익숙해진 사람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주변 어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동안 공연계에서 주인공을 걱정하거나, 죽음으로써 주인공이 고통받는 ‘수단’으로 사용되던 50대 중년 여성이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표현되는 장면은 그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가 편견에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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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10대와 2·30대, 50대, 학생과 회사원과 주부와 프리랜서 모두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담는다. 오직 50대가 된 엄마의 이야기뿐 아니라 10대인 현주도 주도적으로 성차별을 인지하고 불만을 표하며 해결책을 찾아다닌다. 학교 교복 안에 입은 ‘왜 그런지 1도 모르겠는 것’이라는 티셔츠는 교칙에 반발하는 작은 시위다.


대학교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에 청소년의 권리는 대부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묻힌다. 그 때문에 청소년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현주가 겪은 일처럼 교복 블라우스 안에 색이 비치는 티셔츠를 입었다고 혼나는 것도 부당한 일이고, 똥머리를 묶는 게 야하다며 언어로 성희롱하는 선생님을 처벌할 수 없는 것도 부당한 일이다. 청소년,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네가 뭘 알겠느냐고 무시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극에서 현주는 시위를 주장하고 푯말을 만들며 이끌어 나간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걸 막는 일은 흔하다. 축구나 칼싸움 같은 걸 하지 못하게 하고, 짧은 옷과 파인 옷을 못 입게 하고, 크게 웃는 입을 손으로 가리게 하는 둥. 그런 사소한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모든 게 겁이 나서 나를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누군가 시위하는 나를 욕하거나 비웃을까 봐 무섭고, 이걸 회사에서 보고 날 자를까 봐 두렵고, 이혼하게 될까 봐 숨긴다.


하지만 정체를 숨기는 와중에도 결국 그 자리에 선 것만으로, 은주는 바뀌었다. 적어도 바뀌려고 노력한다. 어떤 심정으로, 어떤 불안과 걱정을 이기고 왔는지 모를 수 없다. 은주의 바뀌려는 노력은 관객에게 돌아가 큰 용기를 준다. 겁 많고 착해야 했던 장녀 은주가 바뀐다면 나도 바뀔 수 있겠다는 용기.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이 되고 세 명은 네 명이 되며 이내 수많은 청자 앞에서 ‘달랑 한 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아진다. 그중 많은 사람이 이런다고 뭐가 바뀌느냐며 회의적이던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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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도, 가치관도, 나이도 다른 네 여성은 이내 자신에게 불편했던 한 마디를 바꾼다.


전업주부, 은주와 현주 엄마라는 단어는 연실로 바뀐다. 색이 있는 속옷이나 티셔츠를 입지 말라는 말은 왜 그런지 1도 모르겠는 것이라는 티셔츠로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여성이라 나약하다는 한 줄은 그녀는 사람이기에 나약하다는 말로 변화한다. 잘리기 싫으면 가만히 얌전히 있어야 한다던 목소리는 건들면 죽인다는 문자로 대체된다. 무엇보다, 이런다고 뭐가 바뀌느냐는 질문이 이런다고 뭐가 바뀐다는 대답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던 달랑 한 줄은 서로가 있기에 용감해지는 우리의 달랑 한 줄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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