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때, 변홍례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 그때, 변홍례 [공연]

글 입력 2019.07.2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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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때, 변홍례>를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특했고, 좀 더 길게 말하자면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에 많이 감탄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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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변홍례>는 시작 전부터 ‘연극’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낯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배우 분들이 분장실이 아닌 관람객들이 대기하고 있던 로비에서 분장을 하고 있었다. 로비를 울리고 있던 악사분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아코디언 연주가 그때서야 귀에 확 꽂히는 것 같았다.

 

공연장 안의 무대는 단순했다. 한가운데 스크린과 양옆의 마이크가 끝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무대에 로비에서 봤던 배우들이 부산스럽게 올라갔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모두 신발을 벗었다는 것. 과장스러운 억양과 몸짓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며, 실제 일제강점기 때 일어났던 변홍례 사건을 재현한다고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공연장 밖에서부터 이들이 보여준 모든 행동은 이제부터 ‘쇼’를 할 거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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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 분장하는 극단 배우분들



전반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변홍례는 일제강점기 때 귀족층의 부산 철도대교집 조선인 시녀였다. 당시 대교사장과 그의 부인의 내연남 정상은 예쁘장한 외모의 그녀를 탐하고자 했다. 변홍례는 일본이이 되고자 갈망했고, 대교사장의 첩이 되면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누군가로부터 살해를 당하고,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지만 결국 아무도 붙잡히지 않은 채 이야기는 막이 내린다.


스토리 자체만 보면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한건 스토리 하나뿐이었다.




빛, 소리, 사람으로 극대화된 새로움



주목하고 싶은 건 연출이었다. 무대에 선 배우들은 목소리를 내뱉지 않는다. 목소리는 양 옆 구석에 선 배우들이 냈다. 연기하는 배우와 목소리를 내는 배우의 합이 얼마나 절묘한지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모든 효과음도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지 않는다. 그 역시 양 옆 구석에 서있는 다른 배우들이 직접 소리를 재현했다.


무대에 선 배우가 걸을 때마다, 다른 배우들이 마이크 앞에서 구두에 마찰음을 일으켜 소리를 낸다. 펄럭거리는 소리, 그릇 부딫치는 소리, 차를 따르는 소리, 때리는 소리, 달리는 소리 모든 소리가 직접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현장에서 재현되었다. 무성영화기법이었지만 오히려 마이크를 통해 재현된 소리는 극대화되어 더욱 날카롭고 생생하게 귀에 꽂혔다.


반면 무대 한 가운데에서는 어떠한 소품도 등장하지 않으며,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무성영화기법을 사용했으면서 청각적 요소가 극대화되는 이 아이러니가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다른 의미의 몰입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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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극에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목소리는 더빙으로 처리가 된다고 했다. 다만 변홍례는 아니었다. 그녀만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다가, 자신이 모시는 대교사장의 첩이 되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 역시 타인의 목소리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 이야기가 단순히 ‘변홍례’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욕망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은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화한 인물로도 볼 수 있었다. 중요한건 그것이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극의 연출과 맞물리자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빛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때, 변홍례>는 탁월했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스크린에 비춰진 그림자의 크기가 달라졌다. 제한된 공간인 무대에서 표현하기 힘든 자동차 추격씬이나 성관계씬 등 역시도 빛과 소리를 활용해서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표현했다. 놀라운 건 이 역시 배우들이 직접 조명을 들고 다니거나 몸을 움직여서 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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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발함과 배우들이 쏟았을 노력을 생각하며 내내 감탄했던 것 같다. 어느 장면도 실험적이지 않은 장면이 없었고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




<그때 변홍례>는 연극입니다



작품은 변홍례가 누구에게 죽음을 당했는지,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픽션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실화를 재현한 작품인데, 정작 작품의 연출은 허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이 모든 것은 연극입니다! 허구입니다!’를 외쳤다. 그렇다면 그 의도가 궁금해진다.


결국 재현에 있어서 예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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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끝나고 운 좋게도 진행된 관객과의 시간에 참여하면서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연출가 윤시중님은 예술에 있어서 완벽한 재현은 없으며, 예술의 한계를 인정했다고 하셨다. 인정하자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때서야 <그때 변홍례>를 보면서 기발함과 유쾌함에 감탄했으면서 한편으로 찝찝함과 불쾌감을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극에서 부각된 허구성이 변홍례의 이야기와 관객들을 완벽히 분리시킴으로써 변홍례를 단순히 과거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희생자가 아닌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끌고 왔던 것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변홍례의 기사는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자극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변홍례가 매일같이 우리들의 입으로, 손으로 옮겨지고, 왜곡되고, 사라지고 있었다. 너무도 쉽게 진실은 허구가 되고 허구는 진실이 되고 있었다, <그때 변홍례>는 말한다. 그때, 변홍례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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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변홍례>는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뛰는 배우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연극이어서 가능한 방법으로 말이다. 새삼 예술이라는 것 연극이라는것이 굉장히 가치 있게 느껴졌다. 연극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연극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그때, 변홍례>와 같은 작품들을 더 많이 찾고 싶다.




극단 하땅세



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

극단 하땅세는 <그때, 변홍례> ,<위대한 놀이>, <파우스트l+ll>, <파리대왕> 과 같은 개성 있는 작품을 창작하며,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로부터 호평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극단이다. 처음에 간직한 '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는 강한 정신과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핀다.'는 공동체 작업을 통해 터득한 사유의 정신으로 창작하는 극단이다.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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