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에서 만난 세상 [도서]

글 입력 2019.07.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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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을 아주 가끔 읽는데, 이마저도 에세이 관련 책들만 사서 읽는 정도이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책을 샀다는 이유로, 재미도 없는데 억지로 끝까지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영화도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나온다. 책을 억지로 읽는 시간, 영화를 억지로 보는 시간이 더 아깝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으로 따졌을 때, 돈보다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서 읽기는 꽤 읽었는데 읽다 보니 내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라서, 혹은 흥미가 떨어져서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았던 적이 훨씬 많은 까닭에. 2019년, 아직 내 책장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인 <길에서 만난 세상>은 내가 10대 후반 때 접한 책이다. 어리지만, 마냥 어리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




#. 길에서 만난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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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이다. 10년도 더 된. 06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2010년 2월이었다. 해당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으로, 대한민국에 있는 소수 계층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원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의 꼭지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어린 미혼모, 탈학교 청소년, 코시안과 그의 엄마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아시아 여성, 도시의 노인들, 광부, 보안 관찰처분대상자들, 무슬림인, 0.3평(가판대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 저인망(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깊은 바닷속의 물고기를 잡는 그물) 관련 직업,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 농촌 청소년, 소록도, 일명 ‘일본인 처’라 불리는 사람들(일제 시절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광복 후에도 한국에 정착한 일본 여자), 창신동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미싱)



이게 이 책의 목차이다. 목차만 봐도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러 다니셨을지 눈에 훤하다. 이 책은 인터뷰를 마친 후 개인적으로 드는 작가의 생각도 적혀있고, 인터뷰한 사람들의 사진들도 많이 담겨있다. 3명의 작가가 쓴 이 책은, 당시 내게 ‘인권’이 뭔지 처음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인권’. 난 책을 통해서 학교 밖에 있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배웠다. 인권을 떠올리면, 장애인 문제와 미혼모 정도였던 당시의 내게 이 책은 신기한 세상이고, 놀라운 세상이었다. 이런 사람이 일상 속에 있었는데도, 소외 이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내가 지나쳤던 사람들을, 이 책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잊고 있다가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다시금 떠오른 사람들도 있다. 탈학교 청소년, 보안 관찰처분대상자, 저인망을 직업으로 가지고 계신 분들, 일본인 처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을 당시가 책이 출간된 지 4년이 흐른 뒤였는데, 난 책을 읽으면서 전혀 그 어떤 조금의 어색함도 느끼지 못했다. 즉, 4년간 인권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19년이 흐른 지금도, 과연 이 사람들의 인권이 나아졌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사람 말고도 소수 계층 사람들은 더 많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세상2> 도(보이지 않는 사람들) 발간이 되었고. 하지만, 여기에 나온 사람들만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인권은 많이 높아질 거로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다시 생각해보게끔 한다.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해서 ‘틀렸다’라고 지적받는 사람들, 민족주의 때문에 ‘일본인 처’ 분들이 당하는 부당함, 저인망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지만 저인망 선장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그들의 입장, 한국에서 당하는 외국인들의 설움 등등.


미처 자신이 생각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하게 되며, 쉽게 동정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면, 보호관찰법 편에서 이런 인터뷰가 나온다.

 

 


#. 책 내용 중…




“보안관찰법은 덫이고 늪이거든. 살아 보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기 십상이지. 그래. 덫이 아니고 늪이 아니라면 고무줄일 거야. 언제든 늘려 줬다가 때가 되면 잡아당길 수 있는. 그러니 별수 있겠어. 당기면 따라가야지. 가만 생각해 보면 끔찍해. 암보다 더 무서운 것 같아. 암에 걸리면 치료해 주는 의사라도 곁에 있을 것 아냐!”


- 보안관찰법 인터뷰 中



“몸에 새겨진 문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있을 때나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타인 앞에 섰을 땐 달라지잖아요. 나는 변하고 싶은데 경관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 마찰을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보안관찰법 인터뷰 中


 

3년 이상의 선고를 받고 수감 생활을 마친 뒤 출소했으나 여전히 감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감옥에서 3년을 살고 나온 만큼 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게 순서인데도, 현실은 바쁜 시간을 쪼개 3개월마다 써야 하는 정기 신고서. 물론 죄질이 나빠, 감찰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소 후 새로운 삶을 살려는 사람도 많고 애초에 죄질이 나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령, 국민학교란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로잡은 인물인, 박창희 씨는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친형 문제로 국가보안법에 걸려서 보안 관찰처분대상자가 됐다. 이렇게 되면 여권 발급이나 이사를 할 때마다, 혹은 경관이 바뀔 때마다 재조사가 시작된다. 자신 몰래 상사나 이웃들에게 뒤를 캐묻기도 한다. 이게 사람 사는 인생인가?

 

 


#. 이 책의 묘미는…


 

우선, 책의 표지나 종이의 촉감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들 것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표지가 마음에 들면 작가의 말과 목차를 본다. 그리고도 마음에 들면 내용은 읽지 않고 우선 사고 본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빛바랜 색에, 길에서 세상을 만난다는 제목. 그리고 이 제목은 자극적인 빨간색. 게다가 바스락거리는 종이 고유의 질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묘미는 따로 있다. 바로, 직접 취재한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쓴 것이라는 점. 생생하면서 거짓 없는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저 주욱 서술한 글이 아닌, 내가 진짜 인터뷰를 구경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글이 술술 읽힌다.


전해 듣는 이야기가 아닌, 직접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얘기는,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인데, TV를 시청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단 말이다.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책이다. 그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게 이 책의 진정한 묘미.

 


“세상의 초점이 학생이냐 아니냐에 맞춰져 있다 보니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겁이 났어요. 그날은 슬리퍼를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재수없게 순찰 중이던 경찰관과 마주쳤어요. 그 경찰관도 그랬어요. 다른 어른들처럼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나이를 묻더니 어느 학교 다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학교에 안 다닌다고 하자 ‘쯩’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가출 소녀로 단정해 버렸어요. 이런 일은 아마 탈학교 청소년으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거예요.”


- 탈학교 청소년 인터뷰 中



“집 나온 아이쯤으로 보는 건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어요. 학교를 안 다닌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 눈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세요? 대번에 내가 천박한 사람으로 변하고 몸 파는 아이 취급을 당하고 말아요. 그뿐인 줄 아세요. 우리나라는 쯩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다닐 수 없어요.”


- 탈학교 청소년 인터뷰 中


 


 

#. 책을 읽고 나서…


 

난 동정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읽은 다음 해에, 실제로 소록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소록도는 ‘여전히 세상의 끝에 있는 섬’이라고 책에 소개된다. 소록도란 곳은 수용소였다. 일명 ‘한센병(문둥병 혹은 나병)’이란 병에 걸린 사람들의 한이 서린 곳.


한센병은 나균 또는 나종균에 의해 발병하는 만성감염병으로 오랜 잠복기를 거쳐서 증상이 발현되면, 신경계, 기도, 피부, 눈 등에 염증이 발생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신체 말단부터 썩고 문드러지면서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신체 부분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은 증상이 심한 환자와의 직접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전염력은 강하지 않다고 한다. 치료받고 있거나 회복된 환자에게서 전염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과거엔 왜 이 병이 발병하는지 알지 못했고, 치유할 수도 없었으며 발병하면 겉으로 발현되는 그 증상이 너무나 참혹해서 오래도록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하늘의 형벌이라 해서 천형(天刑)이라고까지 했을까. 소록도에서는 치유를 목적으로 이들을 감금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강제 노역부터 감금, 폭행에 낙태와 단종수술까지 온갖 인권침해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며, 소록도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게다가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당시인 2010년도엔 오해가 풀렸음에도 겉모습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간신히 외출증을 끊어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서 밥을 먹을라치면, 같은 한국인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까지도 외면받았다.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고 싶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 말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뎅-뎅-하고 울렸던 말이다. 그래, 죽는 것도 자신이 사람임을 알려주는 한 방법 중에 하나지. 얼마나 사람이고 싶었으면….

 


“여기는 아무라도 사람을 정하고 살아. 엄마를 정하고 아버지를 정하고 누나를 정하고 동생을 정하고 그래.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거든. 그런데도 미쳐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이고 싶어 하다 보니 그럴 거야.


- 소록도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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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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