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외모에 대해서 [사람]

글 입력 2019.07.1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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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대해서 처음 생각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오히려 어릴 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10년 전 옷을 입는 우리 집 가족들은 애시 당초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말은 딱히 없었고 그에 따라 나도 딱히 외모에 대한 것 생각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 생활의 시작인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그 무렵부터였겠지. 외모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때가.

 

나는 못생겼다는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확실하게는 몰라도. 같은 반 아이들은 다 줄리엣 역할을 나눠서 하는데, 혼자 수다쟁이 유모 역할을 했었다. 물론 나한테 그 역할이 악몽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그 기억때문에 전공을 선택하는 계기가 될정도로 오히려 좋은 기억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나 혼자 예쁜 옷도 못입고, 혼자서 그 많은 대사를 영어로 외우는 것이 퍽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부터 였나. 내가 못생겼다. 라고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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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금 커서 이야기해보니 다른 것 때문에 그렇다고는 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쌍커풀이 없는 눈에, 안경 도수까지 높아서 그런지 나의 별명은 여자 김제동 이었다. 그 때, 울면서 아빠에게 아빠가 이런 유전자를 줬으니 쌍수 해줘. 하면서 그 때부터 나는 늘 거울을 보면서 나의 눈과 쌍커풀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옷이나 다른 것에는 그렇게 까지 원한은 없었는데, 뭔가 쌍커풀 이라는 것에 한이 맺힐 정도로 집착했던 것 같다. 그것만 없어지면, 나의 외모에 대한 평가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엄청 심하게 외모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머리를 반삭에 가까운 스타일을 유지할 정도로 스타일이나 외모꾸미기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정작 내 컴플렉스가 심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꾸미기 시작할 때였다, 고등학교 때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심화반이었을 정도로 상위권 성적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연기를 한다고 선언하자, 몇몇 선생님들은 말렸다. 나의 외모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면서 너 같은 아이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등, 한 때의 꿈이다.


너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진로에 대한 평가는 결국 외모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 뒤로 굳이 연기하는 것을 잘 밝히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나의 외모로 연기를 한다는 것이 비웃음이 대상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외모 콤플렉스가 쌓여서 고3이 되었다. 고3때 입시라는 좋은 구실로 쌍수를 하고 거의 반 강요로 화장을 하고, 두꺼운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꾸미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이를테면, 남자 들의 친절 이라던지, 학교 친구들의 외모 평가의 반응 이라던지.


그 때 느꼈던 것 같다. 예쁜 사람한테는 세상은 참 친절하구나. 즉, 나한테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못생겨서겠지? 라는 바보 같은 생각. 그 생각은 20살이 되어, 대학에 그것도 예쁘다는 사람이 모였다는 방송연예과에 진학하면서 더욱 더 심화되었다. 거기에는 정말 전국에서 늘 예쁘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온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난 어릴 때부터 외모 칭찬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라 그런가.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 이라던지. 누군가가 외모가 좋다는 이유로 보여주는 친절에 익숙한 태도들이 너무나 낯설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사람들이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그들과 비교하며, 또 나에대한 외모 평가를 하기 시작하였다. 너는 방송연예과에 연출로 들어왔니 등 그렇게 한 개씩 두 개씩 쌓이자, 나는 엄청나게 예뻐지고 싶었다. 세상은 외모가 전부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업에서도 외모 이야기는 빼놓지가 않지. 밖에 나가면 내 전공을 이유로 내 외모를 평가하지. 뭐 전공이 아니라도 외모 평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혜화가 두려웠다. 쟤는 방송연예과에 다니는데 나보다 못생겼어. 라는 말을 들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누가 전공을 물어보면, 다른 전공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내 외모가 부끄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때보다 훨씬 더 잘 꾸미고 외모에 객관적 지수는 없다고 하지만, 나의 외모가 더 업그레이드 된 것도 사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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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은 늘 변한다.
과거 미의 기준이었던 고대 아프로디테.


오히려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는 꾸미기 시작한 그 때 더 많이 받았었다. 모든 것이 내가 연기를 시작해서 일까? 아니면 이 사회 때문일까? 확실히는 모르겠다. 이 때 하나 알게 된 것은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평가’를 하기 시작하면, 그 평가에 신경 쓰게 된다. 왜 사람들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좋은 말이잖아. 그리고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요즘 들어 더 깨달았다. 뭐든 평가를 하게 되면 그 것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다는 것을. 나도 그랬다. 그 전으로 돌아 가고 싶다. 나의 외모가 예쁘던 못생겼던. 그냥 아무것도 모르던 그 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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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처음 받는 질문이나 평가는 외모에 대한 것이었다. 이쪽 일을 하면서도 칭찬을 하더라도 외모에 대한 것을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것을 읽는지. 나에 대한 평가는 점점 줄어들더라. 어릴 때는 공부 잘 하고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많은 지가 나의 자랑거리였는데,(물론 이 조차도 외부의 기준이긴 하다.) 지금 나를 봐주는 것이 외모밖에 없으니. 나는 점점 더 집착을 하게 되었다.


화장을 할 일이 있으면,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서 남기고, 그 모습을 인스타에 올려서 전시하고. 그런 나에 도취되고 또 나보다 예쁜 사람이 있으면 절망하고 그런 것을 많이, 솔직히 많이 반복했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보면서 나를 더 낮추고 집에서 몰래 울고,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완전하게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다 나보다 예뻐 보여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때도 있다. 물론 그러는 것이 예전보다 줄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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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같으면 이런 나를 보면서, 왜 나는 그런 사소한 기준에 신경쓸까? 하면서 슬퍼하고, 나를 자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나다. 나를 사회의 피해자라고 사회 탓만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제 뭘 하든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넘어지는 인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는 인간이다. 외모도 뭐도 결국은 나라는 것을. 나에게서 출발한 다는 것을 안다. 나는 결국 ‘나’ 뭐라고 규정지어서 볼 수 없는 그저 나라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한 나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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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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