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살아갈 집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공연예술]

아파트에 대한 연극을 보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글 입력 2019.07.0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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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대학로 거리는 밝고 어지럽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 가는 저 사람들은 아파트가 있을까, 소중한 사람과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생각하다 우리가 살았던 집 그리고 지금 내가 잠시 간 빌려 지내는 방을 떠올렸다.


대학 생활을 함께한 K와 T 그리고 나는 한때 한 지붕 아래 살았다. 사실상 각자의 방에서 지내야 했기에 따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일부러 자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사는 기분을 느꼈다. 집 안에는 공유할 만한 공간이 없었던 탓에 근처 놀이터가 거실 대신이었고, 과학대학 건물이 단골 야식 장소였다. 일단 만나면 밤늦게까지 그네를 타거나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시종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그래서 다소 멀게 느껴졌던 이 연극은 생각해보니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아파트에 대한 문제로 시작했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일, 삶 자체로까지 확장되어가는 이야기, 결국 우리가 살아온 공간의 속성이 우리 삶의 형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우리의 선택들이 이것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

놀이터를 거실로 공유했던 K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집을 떠난 후 나는 그 놀이터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렇게 거실 없이 사는 것, 오롯이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가까이에 살면서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밥을 먹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함께하고자 했으나 그럴 만한 시간적, 공간적, 심적 여유(어쩌면 이 셋을 좌우하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흩어졌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공간 안에 각자의 방 이외의 여유분이 없다는 사실과도 조응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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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을 타고서 지금 사는 ‘방’과 미래의 ‘집’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머물게 되는 그 방이 나중에는 거실이 있는 아파트로 바뀌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 일찍이 이런 현실을 깨달은 주변의 친구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나설 때 우리는 왜인지 쉽게 발을 뗄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며 지금껏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들에 물음표를 붙여보았다.


우리는 왜 거실을 가질 수 없을까? 우리는 왜 함께할 수 없을까? ‘자기만의 방’을 넘어 ‘우리만의 집’은 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가?

함께 살아갈 집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어쩌면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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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나와 길을 걸으며 연극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극이 시작될 때 다 같이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던 이들은 아파트에서 자라온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천막 안에서 부대끼기도 하고 갑자기 공놀이를 시작하더니 춤도 추고, 서로의 몸을 벽처럼 이어 붙이며 즐거워하는 등 굉장히 열정적으로 모여 논다. 그런데 현재로 돌아오는 시점과 맞닿으면서부터 이들이 함께하던 공간성이 깨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무대 옆 대기실에 앉아 술을 마시며 탄식하고, 누군가는 객석 뒤편에서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무대 한쪽에서 요가를 한다.


한 사람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겹겹이 놓인 의자들 사이를 걷는다. 여기저기 부딪혀 넘어지면서 혼자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불안하고 막막해 보인다. 그를 비추던 밝은 빛이 이내 멀어지고 암전이 되었을 때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불이 꺼졌지만, 눈을 가린 그에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계속해서 의자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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