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무성영화 X 추리연극 - '그 때, 변홍례'

글 입력 2019.07.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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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때는 1931년 7월 31일 오전 세시 경 부산 초량철도대교 집 하녀 침실. 변홍례가 잠든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무엇을 하려고 처녀가 잠든 방의 문을 열었는가?


그것은 마리아의 방문을 연 자만 알 것이다. 경찰은 증거 하나 없는 이 사건을 '괴이하다.' 생각했다. 직접적 사망 사인은 질식사. 질식사 외에도 가슴과 입술에 물린 자국이 선명했고 복부에 석 차례 뾰족한 무언가에 찔린 자상이..


근데 도대체 과연 누가 죽였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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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시대에 뒤틀린 인간의 모습



예전에 우리 안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운 거였고 적당한 주의와 절제가 기본이었다. 그것이 육체적 욕망이든 돈이나 권력을 향한 욕망이든 주변 눈치를 보았고 자신의 욕망에 상대를 배려하는 주의까지 곁들여야 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젠 자신있게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을 채운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중략) 일제시대라는 배경만 있을 뿐, 이건 오늘 우리 세상이야기였다. 철도회사 사장남자든 그 아내든, 아내의 정부든 그리고 변홍례에게 집착하는 한국청년도 모두 뻔뻔했고 도덕적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변홍례의 죽음에 창피해하고 죄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 민낯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어쩌면 홍례는 빵 한 조각이 그리웠는지, 아니 한 남자의 사랑이 필요 했는지 모른다. 진실은 이미 묻혔다.


- 선욱현



일제강점기 시대의 친일파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만약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친일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모두들 아니라고 답할지 모르나, 그 시대는 이렇게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였다.


어느 도덕적인 기준도 잔인한 폭력성 앞에서 무력화되는 시기가 바로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가 아니었던가. 일본인의 삐뚤어진 욕망을 바라보며, 조선인이라고 안 가졌을까. 무수히 많은 친일파 목록이 말해주듯, 자신의 욕망대로 시대를 사는 사람이 있었을 테다.


그 욕망이 꼭 더러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한 사랑일 수도, 희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사회가 온통 지배의 논리로 뒤덮이면,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적인 일들 또한 정당화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뻔뻔하게 나타난다.


변홍례에 얽힌 사건 또한 그렇지 않을까. 부잣집 하녀로 사는 어린 홍례에게 욕망이 없었으며, 그 시대를 살던 주위 사람들에게 욕망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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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영화 X 연극


연극 '그때, 변홍례'는 당시 대중문화 영역에 속한 무성영화를 연극으로 끌어들였다. 연출가 윤시중은 아트인사이트 인터뷰에서 무성영화 표현법으로 무대를 구성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성영화나 오래된 더빙 영화를 보면 지금의 시점으로는 촌스러움과 이질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번 변홍례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 사건의 신문기사들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사건에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어요. 그걸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과장되었고 촌스럽다고 느끼겠지만요.


결국, 31년도 사건을 그 시대의 영화라는 매체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고민했어요. 무성영화의 표현법이 그 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진정성 있는 표현법이었겠구나 판단했습니다.



연출가는 시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를 고민하던 중, 그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예술형식을 빌려오는 것을 택했다. 이는 흔히 지나간 과거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당시의 신문, 책, 영화, 음악, 유행스타일 등을 차용하여 재현함으로써 시대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무성영화들을 참고하여, 소리와 빛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고 지금보면 과장처럼 보이는 연기로 신파스럽게 풀어냈다고 한다. 사진 속 배우들의 제스처 또한 매우 크고, 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에 의해 또 한 번 강조된다. 이는 '욕망'이라는 주제를 더욱 극단적으로 재현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테다.





실제 극단 하땅세에서 올린 영상 속 배우들은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며, 옛날 흑백-무성영화 속 배우들의 만화같은 행동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큰 목소리와 풍부한 표정은 배우들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보통 범죄를 소재로 한 연극들은 너무나도 진지하기에, 사실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때 변홍례'는 이를 과감히 깨고 비극을 희극화 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재현과 결국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결말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살인사건을 너무 어둡게 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시놉시스에서 느껴지는 기묘함과, 흑과 백이라는 고전스럽고도 재치있는 반전느낌을 가미시킨 연극이 기대 된다.






그때, 변홍례

- 2019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

 

 

일자 : 2019.07.13 ~ 07.21

 

시간

평일 20시

토 15시, 19시

일 15시

월 쉼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하땅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5세이상

 

공연시간

80분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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