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동하는 여자 : 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 [도서]

대상화된 몸을 향한 사랑, 그 종류가 달라졌을 뿐
글 입력 2019.06.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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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모두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건 끔찍해. 하지만 극단적으로 마른 것도 끔찍하지. 모두 건강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친구들이여, 우리의 건강 집착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몸매는 걱정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 써.” 표현만 달라졌다뿐이지, 우리의 신체는 전과 똑같이 억압당하고 있다.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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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모두가 운동이라는 것은 자기관리의 일종이라고 말하고, 삐쩍 마르는 것이 아니라 근육을 기르는 모습은 누가 봐도 건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민영 씨는 <운동하는 여자>에서 그것 역시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한 코르셋 중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건강이라는 자기 관리의 핑계를 대며, 사실은 사회가 강요한 이미지에 들어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좀 더 큰 영향력을 가지려고 사회가 부여한 메시지에 휘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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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한혜진 BAZZAR 화보


생각해보면 건강한 여성의 몸이라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보디빌더의 그것이고, 비키니 선수, 또는 운동을 많이 하면서도 체지방은 별로 없는 몸이다. 또는 체지방의 유무와 관계없이 골반과 허리의 비율이 적절해서 S라인을 만드는 몸이다. 물론 여성들은 그런 몸매를 원한다. 비쩍 마른 몸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적당히 건강한 몸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허리와 골반의 라인이 놀라운 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자발적인 것일 수도, 누군가에 의한 강요일 수도 있다.

필요 때문에, 또는 욕구라는 동기에 의해 시작된 자기 관리는 비난받아서는 안되며, 개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강력한 규칙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과해져 자기 검열이 될 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는 이유는 운동하지 않는 여성, 몸매가 ‘완벽하지 않은’ 여성에게 엄격한 규제를 던진다는 것에 있다. 인터넷 댓글만 흔히 봐도 페미니스트 여성을 대상으로 ‘82킬로 김지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몸매와 몸무게를 연관 지어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추구해야 하는가? 다소 뚱뚱해 보여도 충분히 건강에 이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왜 모두에게 몸매와 몸무게라는 자기 관리의 틀을 강요하는 것인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약간 과격한 (조건 없는 미러링과 같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주장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과격함이 세상을 좀 더 빠르게 바꿀 거로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삐딱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을 미러링 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에게 한 번쯤 멈춰 서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주고받겠지만, 언젠가는 타협점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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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자지만 평소 너무 당연하게 넘어갔던 것들에서, 가끔 그들의 말에 생각해볼 만한 점을 찾아볼 때가 많다. 판사가 성폭행범에 대한 판결을 잘못 내리는 뉴스 기사에서 예전에는 당연하게 ‘판사의 딸도 그런 일을 당해봐야 한다’는 글이 공감률이 무척 높았는데, 지금은 그 댓글에 왜 판사의 딸이 당해야 하느냐고, 왜 언제나 피해자는 여성이냐고, 판사가 직접 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는 대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아주 강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원글의 ‘판사의 딸이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요지는 판사의 공감능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겠지만, 이제 그 예시를 다르게 들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예시에서마저 여성이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은 언제까지고 남성이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고, 소비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녀린 몸을 선호하던 데서 자리만 옮겨온 이러한 경향은 여성의 몸에 대한 색다른 기호를 반영할 뿐이며 대상화의 방식은 전보다 더욱 집요하고 교묘해졌다.”

“그 사랑은, 대상화된 몸을 향한 사랑이었다. 날씬한 몸, 말라보이기도 하는 몸, 아무 옷이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몸. 미국의 언론인이자 법조인인 엘리자베스 위첼은 저서 [비치]에서 여성은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으로 우상화된다고 했다. 모든 여성은 나이, 인종, 지위, 계급과 상관없이 얼굴과 몸매, 인상을 평가받으며 일괄적으로 대상화된다.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예쁜가, 날씬한가, 매력이 있는가를 따지는 집요한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을 눈요기로 소비할 때마다 등장시키는 단골 소재는 정해져 있다시피 하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 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성, 운동복 차림으로 운동하는 여성이 그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소재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몸을 드러낸 채 가슴이나 엉덩이가 부각되는 동작을 취한다는 것이다."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아직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배우나 가수 등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외모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되지, 외모가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 나는 할 말이 없긴 하다.


배역에 맞춰 증량할 때도 있고, 다이어트를 해야 할 때도 있는데 무조건 그 말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배역에 따라 성형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외모를 평가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인가. 정말 문제는 상업화된 영화, 획일화된 배역, 늘 똑같이 날씬하고 멋진 배우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비슷비슷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대본과 감독의 탓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디어에 의해 정보나 메시지를 잘못 전달받은 대중은 평범한 일반인을 비판하는 단계까지 가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또 하나, 더욱 확실한 것은 미디어는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메시지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메시지를 전달받은 게 무조건 잘못될 리는 없다면, 평범한 일반인이 다이어트를 하고, 건강한 몸매를 추구해서 이익을 창출할 기업의 속임수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당신이 다이어트의 늪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할 때, 당신의 시간, 당신의 돈을 활용해서 배를 불리고 있을 기업이 반드시 어딘가 존재한다.


“쿨한 여자는 섹시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축구와 포커, 지저분한 농담, 트림을 좋아하고 비디오게임을 하며, 싸구려 맥주를 마시고 지상 최대의 음식 윤간 쇼라도 주최하는 것처럼 핫도그와 햄버거를 입속에 쑤셔 넣으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사이즈 2를 유지하는 여자다.”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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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의 성폭력과 남성 스포츠맨의 권위에 대해서.


운동에 대한 주제답게, 양민영 씨는 각국의 스포츠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도 다룬다. 추석, 설날에 올림픽 시즌에 여자 선수에게 가해지는 엄격한 평가들부터 시작해서, 한번 잘못하면 끝까지 들먹이는 그 세계. 양민영 씨는 그 선수들의 잘못을 옹호해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면 남성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이 있어야 하고, 그 꿈을 향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 말은 사람들이 잘 듣지 않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에, 저는 최고가 돼야 했습니다."


빌리 진 킹​


그리고 놀라웠던 것 또 하나는 올림픽 최초로 성폭력 상담센터에서 접수된 사건은 36건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중에게 알려진 사건은 전혀 없다. 어쩌면 심석희 선수가 국가 대표의 자리에서, 가장 잘 나갈 때 성적 학대에 대한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최고가 되어야만 누군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을 알았기 때문일 거로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어딘가의 대표가 되지 않으면,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도 지켜지지 못한다는 것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참고 견디고 힘들었을까. 겪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송할 일인데, 막상 가해자는 어떨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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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해도 이 나라는 어찌 된 일인지 증거가 없다며 풀려나가고, 집행유예를 받고 무죄 판결을 받는다. 동영상을 찍어도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한마디에 감형을 해주고, 동영상을 퍼뜨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착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초등학생을 성폭행해도 합의된 일이라고 하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나라다. 누군가 그러더라. 나중에 고위직들이 그런 짓이 걸렸을 때 빠져나갈 선례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피해자는 알아도, 가해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라다.


“이들은 일반인, 그중에서도 주로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까지도 저질렀다. 물론 이들 역시 죗값을 치르고 명예가 실추되긴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선수가 아닌 악인으로 박제되거나 오늘날까지 집요하게 미움받지는 않는다.”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뭐랄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 음주 운전, 미성년자 성범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이 다시 TV에 나오는 이유는 그들을 소비하는 제작진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남자 편을 든다기보다는 대중들이 보기 싫어하는데도 굳이 몇 년간의 자숙을 거쳐서 그 사람을 다시 미디어에 노출한다. 연예인과의 뒷거래 등 속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방송, 미디어에서도 분명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할 곳이 방송뿐만은 아니지만.. 분명히 혐의를 가진 사람들도 무혐의로 풀려나니 오히려 범죄를 촉진하는 나라가 여긴가 싶다)

어느 날은 문득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그만 살면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는 결국 또다시 묻힌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현실을 비관한 20대 여성이 될테고, 나라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소중한 가족들에게 더한 상처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냥 힘들고 더러운 세상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며 살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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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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