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의 시선이 닿은 것들은 예술이 되었다. 전시 "베르나르 뷔페"

글 입력 2019.06.2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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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의 시선이 닿은 것들은 예술이 되었다.
베르나르 뷔페 展


사람들은 내게 거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캔버스를 한 번 보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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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전시관 내 사진촬영이 불가합니다.)



이제는 잊지 않을 그의 이름, 베르나르 뷔페

본 전시를 가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이전 글에 적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너무나도 궁금하다고. 본 전시를 다녀오고 나니 또 하나의 인상적인 전시가 됐다.

오랜만에 마주한 오리지널 회화전이어서 더욱 감명 깊었던 것도 있지만 그의 작품들은 1시간 30분 동안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베르나르 뷔페는 자신의 그린 그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내 아나벨 뷔페의 말에 따르면, 그림이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야기를 한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 끝까지 자신의 그림으로만 전달하고자 했던 신념, 그것이 그렇게나 멋져 보였다.

사실 예술이라고 함은 이제는 그 경계가 꽤나 불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예술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춤을 추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분야에 경계가 낮아진 만큼,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시선도 분명하게 존재하게 됐다. '그것은 예술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거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와 같은 그런 시선들에 베르나르 뷔페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라고 답한다.

어쩌면 각진 선에 어떠한 사람을 똑같이 그리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고 이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지 모른다. 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만큼, 모두의 작품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작품에는 작가만의 시선이 굳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자신의 시선을 담아낸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해보면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자신의 시선을 뚜렷하게 자신만의 화풍으로, 말보다 그림 자체로, 담아내는 신념 그리고 그가 담아놓은 우울함과 불안함은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사실 그의 그림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의 시대와 다르며, 그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시선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의 작품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공부하고 갔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그림도 있다. 그렇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는 것, 그것이 '전시'의 존재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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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La mort 10, 1999, huile sur toile, 195x114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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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Les folles, le repas II, 1970, huile sur toile, 200x195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당신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었지만 당신은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싫어했다. 당신은 그림이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야기를 한다고 단언했다.

- 아나벨 뷔페




불안함과 우울함, 그리고 인간의 죽음.

베르나르 뷔페, 그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가 겪은 일에 대해 한 번은 짚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그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겪었던 가장 불안하며 우울하던 시기가 아닐까. 그는 초창기 정물화를 통해 과거 순간, 추억 한 조각들을 캔버스에 옮겨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거친 질감이지만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는 노란색과 황토색의 조화를 <테이블과 의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전쟁 이후, 정물화를 그리며 향수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물화 시기를 지나면 그는 인간들을 그렸다. 자기 자신을 그리기도 했으며, 밥을 먹는 사람들, 장례식을 가는 사람들, 해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가 그린 인간은 하나같이 눈빛에 공허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생명의 활달함이 떨어진다. <생선 장수>라는 작품을 보면 신선한 생선을 팔아야 할 공간이지만 그러한 생동감은 없다. 더불어 <해변>이라는 작품에서는 해변에 있어야 할 것들이 다 있다.

배, 가오리, 불가사리, 비치볼,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그렇지만 하나같이 파괴되어 있다. 파괴된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듯 모여있기만 한다. 전쟁이라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대한 악을 그만의 시선으로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전쟁 이후, 누군가를 잃었을 사람들을 그려내며 말이다.

그리고 그는 '광대' 시리즈를 그렸으며, 광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그린 <광대>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그들의 눈빛에는 뿌듯함이 없다. 다만 해야 할 일이기에 할 뿐인 모양새다. 광대라는 직업은 그 시절 누군가에게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것이 사명감이 될 수 있지만, 그 당시 광대는 가난과 수치심에 지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년에 그린 <음악 광대>는 상당히 재기 발랄한 모습을 보이지만 미쳐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파킨슨병으로 인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던 뷔페는 다시 한 번 광대들을 가져와 자기 자신을 투영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화가로서의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시기에 그는 다시금 광대를 캔버스에 데려와 공연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미친 듯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기에 그들이 그렇게 열성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피하려 하는 키워드 중 하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매 순간 죽음을 겪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 또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파킨슨병으로 인해 화가로서의 삶이 죽어가자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남긴 <죽음> 시리즈에는 해골 등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그들의 모습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심장, 장기가 남아있다. 이는 그가 죽음 속에서도 발견한 하나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혜성처럼 등장했던 천재 화가인 그는 여느 다른 날들과 똑같았던 하루의 끝,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작품만이 남아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메시지를 단지 느끼고 싶은 분들께 본 전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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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Table et chaise, 1950, huile sur toile, 97x146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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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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